▲ 김유찬 칼럼니스트
▸한국의정발전연구소 대표
▸서울IBC홀딩스㈜ 대표이사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역사는 끊임없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를 통해 가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세간에 끝없는 뉴스거리와 장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권력형부패의 주인공 전직대통령 전두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검찰이 전담 TF TEAM을 구성해 미납추징금을 강제로라도 납부케하기 위해 불을 켜고 찾는다는 씁쓸한 소식이 들려온다. 박근혜정부 들어서서 보다 강력해진 이 추징금 환수 조치로 결국 그의 장남과 처남 소유로 위장돼 있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게 되었다는 때늦은 숨바꼭질 이야기도 뉴스를 장식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나마 상당액의 추징액을 자진납부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온도차가 있는 듯하다. 전두환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 또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질 못해 와병중이라는 소식이 가끔 전해지기도 해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절대권력자로서 서슬이 시퍼럴 때 긁어모았던 불법통치자금을 토해내야 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본인들도 참 권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는 것이로구나 새삼 절감할 듯싶다. 집권기간 중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법논리로 방어막을 쳐주던 검찰에게 이렇듯 능욕을 당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회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한 강력한 친정체제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화시킨 유신체제는 결국 10.26 사태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권력의 속성이란 늘 그런 것이었다. 18년 장기집권이 가져온 폐해는 더 이상 그의 최고권력유지를 정당화시키질 못했다.

더욱이 점증하는 국민들, 특히 그 중에서도 깨어있는 국민들의 불만은 억압적인 권력기관을 앞세운 강압적인 정권이 버텨 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연일 계속되던 유신정권 퇴진운동은 결국 전국적으로 확산될 기미마저 보였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은 걷잡을 수 없는 비등점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다.

박정희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사람 중 한사람이었던 측근 중의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10.26사건은 권력의 패러독스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김재규 자신 나중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지만 정치판에서는 결국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깨워준 사건이기도 했다.

우리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늘상 그렇듯이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국가원수 시해사태라는 초미의 어수선한 권력 공백 상황에서 재빠르게 그 권력의 공백을 치고 나온 이른바 신군부세력들의 등장은 어쩌면 권력의 속성상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혼돈과 염려 속에 이 기회를 용의주도하게 이용한 인물이 다름아닌 육군 소장이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그가 웬 뜬금없이 역사의 중앙무대에 등장해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는가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이 칼럼의 논제를 벗어나므로 생략한다.

다만 그는 혼돈을 기회로 활용한 영악한 인물이었고 천운을 자신에게 잘 이용한 당시로는 개인적으로 매우 복받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 복이 화가 되고 말았지만…

궁정 쿠테타로 최고권좌에 오르다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수사총책임자를 맡고 있던 전두환은 그가 그동안 유심히 보아왔던 권력의 허와 실을 꿰뚫고 있었고 그는 바로 이것을 자신의 권력장악에 십분 활용했다.

12.12 사태로 알려진 친위쿠데타는 호사가들이 평가하는 대로 하극상이니 뭐니 많은 부정적 평가가 있지만 군내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졌던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서는 자신의 권력장악을 위해서는 ‘물실호기’의 기회요 권력찬탈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기도 했다.

12.12 사태 이후 권력의 최고 실세로 등장한 전두환 보안사령관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신군부세력들에 의해 치밀하게 전개된 권력장악 시나리오는 권력의 외곽에서 정상적인 방법을 통한 정권인수를 계획하고 희망해 오던 문민정치 세력들에게는 한마디로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기’식의 황당한 사태의 전개였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이들 문민정치 세력들이 그 당시 군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집단이며, 체제유지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는 집단이다. 이른바 ‘관성의 법칙’에 의해 체제와 자신들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성, ‘국민과 역사’라는 명분에 의해 죽고 사는 ‘합법적인 무력집단’이라는 기본적 속성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 이들 신군부세력의 권력찬탈과정은 철저히 실제적인 무력을 앞세운 권력의 강제적 찬탈과정이기는 하나 늘 명분은 ‘국가적 위기상황으로부터 국민을 지킨다’라는 명분론이 그 중심을 차지하였다. 때로는 그 명분이 조작돼 문제가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민족의 영원한 어두운 과거로 기억될 5.18 광주민주화운동 또한 그 발생과정과 전개과정 모두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들 신군부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권력찬탈을 위해 폭넓게 악용된 부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최근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게릴라부대가 침투해 무장폭동을 선동했다든지 하는 소설 같은 시나리오는 그 당시 신군부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정당성과 명분을 제공해주기에 다시없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부 사실일 수도 아니면 아예 신군부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것인지 아직까지도 국민들 입장에선 혼란스럽기만 하지만…

당시 최규화정부는 단지 ‘꼭두각시’정부에 불과했고 실제적인 모든 권력은 신군부세력들에 의해 장악돼 있었기에 현대판 ‘무신의 난’속에 결국 역사의 주인공은 철저히 실세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세력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구 권력은 총구앞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급속히 신군부세력들에게로 옮겨간다.

전두환의 권력은 바로 이 총구로부터 나왔다. 국민을 겨냥한 그 총구로부터. 전두환의 등장, 그것은 이 땅에 세 번째 군부정권이 탄생하는 신호탄이었다.

<다음 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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