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얼마 전 입주민의 인격모독에 항의해 분신을 시도했던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만수 씨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단체에서는 입주자 대표회의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반성하고 정부는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과 ‘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 이만수 씨의 분향소가 차려진 입주자대표회의 사무실엔 조문객의 발길도 뜸했다고 한다. 도리어 주민 한 명이 와서는 “경비원 필요 없다. 경비원 없애버려”라고 소리쳤단다. 고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세상과 영결했다.

물론 아파트 입주민 모두가 저처럼 몰상식하진 않을 것이다.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명복을 빌며, 경비원한테 혹 실수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분들도 계실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이 아파트 입주민의 태도를 대표한다고 감히 단언하고자 한다. 내가 사는 동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동안 경비원을 잘 대해줬다고 하더라도 입주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근무하다 죽은 사람에게 최소한의 ‘조의’조차 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망은 정말 안타까워요……왜 그런 생명을 그런 데다 걸었는지. 우리 주민들을 너무 매도하지 마세요.”(아파트 입주민 인터뷰 내용 중)

주민들을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분명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왜 생명을 그런 데다 걸었는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우리 주민들을 매도하지 마라’는 말은 나올 수가 없다. 고인은 ‘우리 주민’ 중 한 사람의 인격모독에 분노가 일어나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생명을 걸었다. 그것이 ‘왜’에 대한 대답이다. 그토록 억울하게 사람이 죽었으면 ‘매도’를 운운하기보다 가해자를 성토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한다. ‘사망은 정말 안타깝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말 속에는 매우 절망적인 이기주의가 들어 있다.

이런 태도는 이 죽음을 바라보는 아파트 주민 이외의 사람들한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조금만 참지…….”

“그래봐야 자기만 손해야. 식구들을 생각했어야지.”

물론 저 말 속엔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고인한테 돌리며 고인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가깝게는 고인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사람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이런 일은 그저 복잡한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고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버려서 그렇다. ‘나는 안 그래’ 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지니고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견제하는 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슬퍼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초상집에 부의금을 내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하며 급히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 아니다. 이 일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를 약자로 대접한 결과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다. 정치인들한테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아주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관심을 두고,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사회적 강자들에게 분노서린 항의를 해야 하겠다.

고 이만수 씨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이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려면 ‘나는 안 그래’하면서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불합리한 일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정부는 당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라.”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고인의 영전에 진심으로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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