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지난 9월 12일 ‘송담’이라는 법명을 쓰는 스님 한 분이 조계종에서 탈퇴하겠다는 ‘탈종’ 선언을 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승려 하나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종파에서 탈퇴한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 안에서 송담의 탈종은 그 여파가 매우 크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주요 인사가 송담과의 면담을 시도하는 등 불교계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했다는 사실이 이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 언론사에서는 불교계의 이러한 모습을 ‘우왕좌왕’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것은 송담이 우리나라 불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송담은 인천 용화선원 원장이자, 재단법인 법보선원의 이사장이다. 그런데 송담은 이러한 사회적 위치 이외에도 불교 교리와 불교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송담은 전강선사의 상수제자이다. 이것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선불교 법맥을 이어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라는 의미다. 대한불교조계종이 그 정통성을 선불교에서 찾고 있다. 선불교의 법맥은 석가세존을 제1대로 시작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유명한 마하가섭을 비롯하여, 중국 선불교의 시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 ?-528)를 비롯한 육조(六祖) 선사, 선의 검객(劍客)이라고 일컬어지는 임제 선사 등으로 이어진다. 조계종에서는 이러한 선불교의 법맥이 우리나라로 이어져서, 경허, 만공, 전강, 그리고 송담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송담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석가세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어지는 정통성과 정체성의 상징인 것이다. 그리고 송담이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탈종을 선언한 것은 석가세존으로부터 이어지는 불교의 정통성의 상징이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이탈했다는 것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의 권위가 실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담이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탈종한 이유는 조계종이 기존에 가졌던 수행자 집단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고,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예상된다. 『오마이뉴스』의 2014년 9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단에서는 사찰 주지 선거에서의 돈 결탁, 총무원장 선거로 불거진 파벌 싸움, 이권과 패권으로 얼룩진 종단 비리 등이 수년간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조계종 사찰 법인화 압력 문제가 불거졌다.’고 한다. 또한 2012년에는 승려들이 불법 도박판을 벌였다가 발각되고, 심지어 한 주지가 조계종 산하 천년고찰의 토지를 마음대로 팔았다가 발각되기도 하였다. 특히 승려들의 불법 도박을 폭로한 승려에 대하여 조계종 재심호계원은 오히려 '사미(불교교단에 처음 입문에 수행중인 스님)' 신분으로 종단 비리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제적 결정을 내기리도 했다.

10년간의 묵언 수행 등 수행에만 몰두했던 노승(老僧)이 조계종의 이러한 행태를 보고, 조계종이 더 이상 수행자 집단이 아닌, 타락한 종교인 집단으로 본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불교 관련 칼럼니스트인 하태경 박사의 기고를 인용해서 송담의 탈종이 ‘조계종에 대한 말기암 선고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송담의 탈종 선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뜻있는 불교 신자들은 송담의 탈종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불교계의 자성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대한불교조계종 내부는 이러한 신도들과 노승의 충언(忠言)에 대하여 ‘조계종 중앙종회(조계종에서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 지난 11월 11일에 개최)에서의 파행과 막말’로 화답(?)하고 있다.

얼마 전 기독교는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개신교의 탄생과 천주교의 자성분위기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특정 종교의 쇄신과 개혁의 요구와 시행은 종교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종교는 쇠망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그런데 특정 종교에 대한 우려를 그 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논한다면, 그것은 그 종교가 강도 높은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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