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선희는 조심스레 마트 안으로 들어선다. 함께 만나기로 한 옛 동료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계산대 근처로 간다. 평생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해보지 못했기에 입을 떼기가 쉽지 않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여러분’을 불러 본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자, 선희는 어디에서 용기가 생겼는지 안내데스크에 꽂혀 있는 마이크를 집어 들고 소리 지른다.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사람으로 대접해 주세요.”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가 상영관 축소를 언급할 만큼 흥행이 되지 않고 있는가 보다. 비정규직 문제는 영화로 감상하면서 ‘그땐 그랬지’하며 넘겨 버릴 문제가 아닌 여전히 현재에 해결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조차 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당장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내 일이 될 수 있는 ‘부당해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시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보자는 게 영화의 제작의도 중 하나일 것인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항상 함께 하는 고용불안과 비인간적 대접은 마트에서 바코드 찍는 아줌마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다. 업종이 다를 뿐 대학의 시간강사, 중고등학교의 임시교사, 기업체의 사원, 심지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겪고 있는, 이 사회에서 지금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아도 해결의 길이 요원할 지경인데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 너무나 조용하다. “카트”의 상영관 축소는 이와 같은 국민의 무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해고는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려 복직만을 기다리며 겨우 버티고 있던 해고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양심 있는 법조인들과 국민들은 ‘사법부의 사망’을 선언했고, 양심 없는 소수의 기업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음을 보며 같은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만수 씨가 투병 중에 끝내 사망하자 이 분의 영전에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입주민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멀쩡히 일하고 있던 아파트 경비원 106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했음에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정치인과 기업가들에게 우선 책임이 있겠지만, 국민의 무관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반드시 머리띠 매고, 천막을 치고 농성하며, 구호를 외치다가 물대포를 맞지 않더라도 알고 보면 내 현실이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극소수의 가진 자가 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를 노예처럼 부리다가 결국은 숫자로 처리해 버리는 몰상식한 세상에 산다. 무식한 아줌마보다 더 배웠다고, 좋은 아파트에서 자가용 굴리며 산다고 해서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게 도대체 무엇인가. 오히려 그들보다 못났다. 불합리한 사회문제에 적극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무관심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외국영화 “인터스텔라”는 현재까지 무려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였다고 한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주보다 사람을 봐야할 때가 아닐까 한다. 영화 “카트”에,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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