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 헤쳐가는 과정 속에 드라마가 있다”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진 작품을 해야”

윤태호-이재문 PD, ‘미생’에 대해 말하다
‘미생 시즌2’ 기획 중…내년 3월부터 연재 계획

【투데이신문 김소정 기자】“‘미생’을 하면서 들었던 확신 한 가지가 있다. 드라마는 힘든 일을 헤쳐나갈 때 나온다는 거다. 샐러리맨들이 일 끝나고 술 마시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상사욕 하지 않느냐. 이런 것들이 모두 일을 잘하기 위해서 헤쳐나가는 과정이니까 그 속에는 드라마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윤태호(45) 작가는 11월 27일 정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창조경제박람회’ 좌담회에서 ‘미생’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 1월 20일 웹툰 ‘미생’이 처음 세상에 공개됐을 때, 윤태호라는 인기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직장인의 일상을 다룬 평범한 이야기가 이렇게 큰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생’은 누적 조회수 10억뷰를 돌파하고 단행본은 나온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200만부가 팔리는 등 각종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특히 ‘미생’은 최근 케이블 채널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 윤태호 작가 ⓒ뉴시스

지난 5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정윤정 극본, 김원석 연출) 15회는 평균 시청률 7.2%에 최고 시청률 9.4%를 기록해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고 시청률이 낮은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방송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대단한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미생’이 웹툰으로써 최고치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드라마로 제작했을 때도 과연 재미와 완성도를 웹툰 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비범하지만 평범한 이야기에 소위 ‘막장 드라마’의 자극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가 하는 점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tvN은 ‘미생’을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드라마가 방영된 뒤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다.

“전 사실 처음에 반대했다. ‘미생’이 좋은 작품이라는 건 알았지만 한국 드라마 스타일로 만들면 매력이 반감될 거라고 봤다. 욕만 먹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로 반드시 ‘미생’을 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철저한 공감 때문이었다.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그래서 윤태호 작가님을 찾아갔다”

이재문(37) PD의 말처럼 ‘공감’은 ‘미생’의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다. ‘미생’을 본 모두가 한목소리로 “정말 내 이야기 같다”고 한다. 비단 주인공 장그래에게만 감정이입을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김 대리에게 또 다른 누군가는 오 차장에게, 어떤 이는 김 부장 또 다른 이는 장백기를 자신을 대입한다.

이러한 공감은 우연이 아니다. 윤태호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담으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인간형을 그리는가, 그리고 그 인간이 어떤 보편성을 가진 인간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것. 그렇게 탄생한 것이 ‘미생’의 인물들이다.

“보편성이라는 건 어떤 표준화된 타입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만의 개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누구나 아는 것을 뻔하게 보여주는 건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윤태호 작가가 미생을 기획하고 연재를 종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년 7개월이다. 바둑을 공부하고, 기원 연구생을 만나고, 무역상사를 취재하고, 취합한 정보로 드라마를 만든 뒤 다시 웹툰화하는 과정을 걸쳤다. 전작인 ‘이끼’도 기획에서 연재 종료까지 5년이 걸렸다. 이런 세밀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격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모두 성공하지 않는다. 인기작가 강풀의 웹툰은 여러 차례 영화화됐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 이재문 PD ⓒ뉴시스

“사실 저희가 윤태호 작가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윤 작가님이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어서 바쁘셨다. 저희도 윤태호 작가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바둑 기사를 찾아다니고, 무역상사 직원을 만났다. 보조 작가 2명을 상사 인턴으로 취직시켜 취재를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 시작하니까 디테일이 달라졌다”

이재문 PD 이하 제작진은 취재하면서 많이 놀랐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윤 작가가 어디까지 취재를 해나갔는지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윤태호 작가는 “힘들었을 거다. 제가 도움을 드린 게 전혀 없다”며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완전히 또 다른 작업”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 제작진에게도 목표가 있었다. 두 세 명의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보편적인 드라마 형식이 아닌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대기업 자체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었다. 이 PD는 “웹툰 ‘미생’에는 등장했다 사라지는 캐릭터가 많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 그러면 시청자들이 불편해한다”며 이런 점을 보완했다. 바로 캐릭터를 키우는 일이었다.

“캐릭터의 질감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 수 있는 정윤정 작가를 영입했다. 원작에서 한석률이나 장백기, 안영이는 드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지는 않다. 하지만 인물의 크기를 키움으로써 그들이 저절로 성장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끼리의 오해나 갈등을 소소하게 깔았다”

이제 ‘미생’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웹툰과 출판물, 드라마, 캐릭터 상품, 광고협찬사까지 모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윤태호 작가는 “내 작품이 다른 식으로 소비된다는 것을 경계하거나 터부시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단순히 어떤 결과를 바라고 접근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우연에 기대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이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세계에서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문 PD 또한 “웹툰이 드라마화나 영화화를 의도하는 순간 티가 나고 그런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기 어렵다”며 “콘텐츠가 매력 있고 충실하다면 자연스럽게 드라마화되고 영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좌담회에서 윤태호 작가는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가진 작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생’은 해외 각국에 판매될 예정이다. 이재문 PD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면서도 “중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판권 판매나 리메이크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윤태호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이 감격스럽다”며 “시청자에게 감사하고, 제 작품을 위해 뛰어준 모든 분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재문 PD는 “저희처럼 다르게 가보려는 시도가 용인되고, 이런 의지를 용인하는 풍토가 자리 잡는다면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태호 작가는 현재 ‘미생 시즌2’를 기획 중에 있으며, 내년 3월부터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재문 PD는 시즌2 또한 드라마로 만들 것을 계획하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