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 ⓒ뉴시스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 “나는 정치적 희생양이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호소문에 정면 반박
성희롱·인사 전횡 의혹 등 전면 부인
정명훈 예술감독 방만 운영 폭로로 ‘맞불’

【투데이신문 차재용 기자】성희롱·인사 전횡 의혹을 받고 있는 박현정(52)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는 이번 사태가 정명훈(61)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배후에 있으며 자신은 정치적인 희생양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성희롱·인사 전횡 의혹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보다는 정 예술감독의 과도한 권한과 서울시향의 방만 운영을 문제 삼아 맞불을 놓고 있다.

방만-비효율적 문화 드러나

박 대표는 지난 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내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예술감독이) 사조직으로 운영하는 회사에서 시스템을 갖추고 공조직처럼 운영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처음 왔을 때 방만하고 비효율적이고 나태한 ‘동호회적’인 문화에 놀랐다.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고 덧붙였다.

서울시향은 재단법인이지만 서울시 출연기관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향에 110억원을 지원했다.

박 대표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장으로서, 더욱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고 이미지가 중요한 공연 단체의 장으로서 좋지 않은 일로 우리를 지원해주는 협찬사, 후원자, 세금을 기꺼이 내주시는 시민들, 서울시향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박 대표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의 업무 미숙과 정 예술감독 의혹 들추기에 몰두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여름 서울시향 대표 제안을 받았다는 박 대표는 한 차례 고사했으나 그 해 연말 서울시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와 맡기로 했다고 했다. 그녀가 오기 전까지 서울시향 대표직은 1년간 공석이었다. 박 대표는 “전 대표(김주홀 전 롯데홀 대표)가 연임을 제안 받았는데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나태한 조직 문화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박 대표는 “공사구분 못 하는 문화에 익숙하던 분들을 체계화, 시스템화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향 대졸 취임 초봉이 3000만원인데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6,7년 차(사무국 직원이)가 엑셀을 못했다. 엑셀 등 실력을 다 갖추고 있는 취업 준비생도 많다. 서울시향 8년간 연주한 곡목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리를 시켰더니 (사무국 직원이) 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을 시켜서 정리했다. 이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행정업무 처리 미숙으로 오디션 지원자들의 단원 계약 여부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문제가 있던 서울시향의 임금 체계도 자신이 개편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연봉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직급을 만들어 자격을 충족해야 연봉이 올라가도록 고쳤다. 정년문제도 손봤다”고 말했다.

   
▲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뉴시스

정명훈 손아귀서 놀아났나

그러면서 정 예술감독에 대한 비리를 폭로했다. 박 대표는 “와보니 나이가 69세인 분이 계셨다. 정명훈 예술감독 처형의 친구라고 하더라. 그분은 5700만원을 받고 있었다. 정년제도를 도입해서 그 분의 채용을 거부한다고 정 감독에게 말했다. 작년에 6개월 치 위로금을 받고 퇴직했다. 그런데 올해 6월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정 감독이 다시 데리고 왔으면 한다고 이야기하더라. 그 분이 서울시향에 이바지한 부분이 있지만, 정 감독의 개인 재단인 미라클오브뮤직(MoM)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작년에 정 감독의 아내가 집수리를 하는 동안 머물 호텔비를 사무실에서 대줄 수 있겠냐고 (정 예술감독의) 비서가 내게 물어오더라”고 폭로했다.

공연기획자로 서울시향 공연기획 자문을 맡은 마이클 파인에 대한 불만도 터뜨렸다. 그는 정 예술감독과 절친한 사이다. 박 대표는 “9년이 지나도록 기획을 마이클에게만 의지하고 있다. 정 감독은 9년째 서울시향에 있지만 대표는 3년마다 바뀐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것은 정 감독님 위주로 결정한다. 초기에는 시스템이 안 돼 있어 예술감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내년이 재단법인 10년 차다. 예술감독, 마이클 파인이 떠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올해 8월 120년 역사의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에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을 받았을 당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대표는 “10만원짜리 소액 후원자 제도를 만들었다. 400명이 제 주변 사람이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 파티에서 우리 단원들이 중심이 됐으면 했다. 그런데 정 감독과 아내, 정 감독의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 대표 부부, 로드 매니저, 외국 투어 매니저 도이체 그라모폰 이사장, 마이클 파인이 중심이 된 파티가 됐다. 후원금은 서울시향을 위해 써야지 정명훈 개인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정 예술감독와 같은) 그런 분을 다시 (서울시향이) 가지기는 쉽지 않다. 지휘자는 성장하기 힘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조차 사적인 네트워크를 지닌 사람들과 BBC 프롬스의 성공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실망했다. 정 예술감독과 지인들이 모여서 그 돈을 쓰라고 만들지 않았다. 저를 믿고 (시민들이) 세금을 맡겨주시고 돈 벌기 힘든 기업들이 후원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행정감사에서 드러난 바 있던 사실을 재차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정 감독이 10년간 140억원을 가져가고 지휘 한번에 49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 감독의 연주를 위해 마이클 파인이 유럽에서 피아노를 구매해왔는데 두 대였다. 한대는 예술감독 집으로 갔다고 했다. (서울시향) 돈으로 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정된 금액으로 두 대는 살 수 없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살 때 유사한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적인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사조직으로 운영하려 하는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서울시향에 회의를 느낀 박 대표는 시의회가 끝나는 이달 안에 사퇴하려고 했는데 지난 1일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로 사퇴를 요구했다고 박 대표는 주장했다. 이에 회기 중에 사퇴하라는 것은 이상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자 서울시향 사무국이 터뜨린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는 것. 회기를 마치고 나간다고 또 다시 이야기했더니 왜 이렇게 억지를 쓰냐고 했고 그날 오후부터 자신에 대한 성희롱·인사 전횡 의혹이 보도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서울시가 전날 밝힌 사실과 배치된다. 서울시는 박 대표가 지난 10월, 한차례 사의를 표명했다가 입장을 바꿨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지난 10월 중순경 박 대표에 대한 서울시향 사무국 일부 직원들의 탄원을 접수했다고도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 사의 표명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성희롱-막말 해명은 미적지근

박 대표는 이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먼저 해명하기보다 정 예술감독에 대한 의혹 제기에 몰두했다. 그는 “조사, 검사, 수사를 피하지 않겠다”면서 “감사원 감사 역시 적극적으로 받을 생각이다. 삼자대면도 하겠다. 그 과정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은 지난 2일 호소문을 내고 “박 대표가 취임한 이후 직원들에게 폭언과 욕설, 성희롱하고 지인의 자녀나 제자를 채용하는 등 인사 전횡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욕설을 했는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직원들의 행태를 바꾸기 어려워 조금 말투가 거칠었을지 몰라도 욕은 안 했다”고 해명했다.

막말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평소의 정신이 아니었다. 여기(서울시향)에 왜 왔는지, 정말 후회하고 고민을 할 때였다”고 설명했다.

“회사 손해가 발생하면 너희 장기라도 팔아라”, “너는 미니스커트 입고, 다리로 음반을 팔면 좋겠다”, “(술집)마담을 하면 잘할 것 같다” 등 폭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몇 개 단어들을 나열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맥락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음 뒤 남자직원의 넥타이를 당기면서 손으로 남자직원의 주요 부위를 만지려고 하는 등 성추행을 하려 했다는 주장 역시 부인했다.

인사 전횡 의혹에 대해서는 “서울시향에 무료로 조언을 해주는 위원의 고등학생 딸을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무료로 인턴으로 채용한 적이 있다”면서도 “지인의 제자인 건 면접하다가 알게 됐다. 알고 누굴 찍어서 했던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 ⓒ뉴시스

정치적 권력의 희생자?

직원들의 호소문의 배후에 정 감독이 있느냐고 생각하는지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저는 그렇게 느낀다”고 주장했다. 호소문 작성 자체를 정 감독이 지시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그건 모르겠다. 감사원에서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적인 권력의 희생양이라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하버드 인맥’으로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재작년 11월 처음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 예술감독을 배임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할 지에 대해 묻자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르겠다.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호소문을 낸 사무국 직원에 대해 “17명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17명이 진짜 17명인지, 한 명인지, 170명인지 모를 일이다. 구체적인 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일로 서울시향이 9년 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성과에 마이너스가 됐는데 이런 제 희생이 서울시향의 재도약과 발전이 된다면 최근의 여러 일이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소문을 낸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은 의견을 정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0일 박 대표와 정 감독을 나란히 출석시켜 업무보고를 받기로 했다. 외국에 머물고 있는 정 감독인 10일 귀국한다. 정 감독 측은 아직까지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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