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기 영제(靈帝) 시절에 활동했던 열 명의 내시들이다. 이들은 영제의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고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황제의 일상생활을 보살피는 일만 해야 할 내시들이 국정에까지 관여하자 뜻있는 신하들은 황제에게 여러 차례 십상시를 물리쳐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럴 때마다 황제는 ‘십상시는 충신들이다’고 하면서 대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전국엔 황건적이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영제는 신하들을 놔두고 십상시한테 의견을 물었다.

“황건적은 소규모의 도적떼일 뿐입니다. 폐하의 은혜 덕분에 이 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괘념치 마시고 즐기십시오.”

영제는 십상시의 우두머리 격인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이들을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이럴 정도니 십상들한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십상시들은 자신들을 반대하는 신하가 보이면 어떻게든 그를 죽이거나 조정에서 내쫓았고, 황제의 조서까지 멋대로 꾸몄으며, 뇌물을 받고 벼슬자리를 팔기도 했다. 소설『삼국지』에는 유비가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우고도 십상시한테 뇌물을 쓰지 않아 벼슬자리 하나를 얻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은 나중에 난리를 일으켜 대장군 하진(何進)을 죽였지만, 하진의 부하였던 원소와 조조의 손에 모조리 참살 당했다. 이렇듯 십상시라는 말은 ‘매관매직’, ‘탐관오리’를 대변하는 뜻으로 쓰인지 오래되었다.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십상시가 우리 사회에 나타났다. 십상시로 지목된 사람들은 정윤회 씨를 비롯한 청와대의 일부 비서진, 외부인사 들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은 십상시들이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정에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번 문체부 직원을 경질하는 일에 십상시의 입김이 작용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친정부 성향을 띄는 동아일보에서 조차 1면에 ‘정윤회, 이정현 쫓아내라 지시 담겨’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중앙과 조선에서도 십상시의 존재를 기정사실화 하는 뉘앙스의 기사를 냈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 양진영 모두가 대통령을 둘러싼 이른바 ‘비선’을 둘러싼 의혹에 큰 우려를 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관여했다고 하는 일이 다름 아닌 ‘인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와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박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마시고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2014. 12. 7. 뷰스앤뉴스 기사 인용>

그 ‘찌라시’는 청와대의 문건이었음이 이미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나라 전체를 흔든 건 ‘청와대에서 생산한 찌라시’이지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마땅할 일이 아닌가 한다. 청와대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했으면 비서들이 찌라시를 생산하고, 그걸 외부에 유출까지 하는 사고를 낼 수 있는가.

한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박대통령의 저 말에 화답하면서 ‘언론보도를 보면 박근혜 정권의 일대 위기가 온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잘못된 것을 시정을 하고, 잘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에게 속 시원히 잘 알려서 오해가 풀릴 수 있도록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긍이 가는 말이라 하겠다. 이번 일을 해결함에 있어 김무성 대표가 십상시를 베려고 했던 대장군 하진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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