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땅콩만도 못한 인권
[칼럼] 땅콩만도 못한 인권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2.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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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지난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이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되었고, 1950년 제5차 국제연합총회에서 그 날을 기념일로 선언하면서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 당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전후에 전 세계에 만연됐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의 취지를 구체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세계인권선언의 날’이었던 12월 10일의 닷새 전인 12월 5일에 대한항공의 소위 ‘비행기 땅콩 후진’ 사건이 일어났다. 단순한 해프닝일 수 있는 이 사건은 인권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일 수도 있다.

『한겨레』의 2014년 12월 08일자 기사에 따르면, 지난 5일 0시50분 뉴욕을 출발해 한국으로 가려던 대한항공 KE086 항공편이 탑승 마감 뒤 공항 활주로로 이동하다가 10분 만에 갑자기 멈춰 섰다고 한다. 비행기는 후진을 해 게이트 쪽으로 돌아와 한 사람을 내려놓았는데, 내린 사람은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사무장이었다는 것이다. 이 승무원이 내린 이유는 당시 일등석에 탑승하고 있던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마카다미아넛(견과류의 일종)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슨 서비스를 이렇게 하느냐”고 따지며 갑자기 승무원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사무장이 매뉴얼을 보여주려고 태블릿피시를 들고 왔으나, 조 부사장의 고함에 놀라서인지 사무장이 태블릿피시의 암호를 풀지 못하자, 조 부사장은 승무원 대신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래서 사무장은 비행기에서 내리고, 그 비행기는 사무장을 태우지 않은 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단순하게 보면 일등석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부사장이 질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전’, 더 나아가 ‘인권’의 차원을 생각하면 얘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우선 그 비행기에 조현아 부사장 이외에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현아 부사장이 일등석에서 고함을 치는 소리가 워낙 커서, 다른 승객들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승객들이 느꼈을 불쾌감과 당황스러움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사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등석의 견과류 하나 때문에 비행기가 ‘후진’을 했다는 것인데, 승객들 가운데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 있는 승객들도 있었을 수 있다. 승객들이 지불하는 항공료가 대한항공의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현아 부사장이 승객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안전’의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JTBC 뉴스룸의 보도에 따르면, 이전에도 출발 직전에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비행기가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테러리스트가 그 비행기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경우 승객이 중간에 내릴 경우 비행기의 보안 점검을 다시 하고 이륙하는 것을 규칙으로 명문화했다고 한다. 사무장이 테러리스트일리는 없겠지만, 비행기가 갑작스레 후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승객들에게 주었을 공포심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항공사의 사건사고 사례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의 인권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에 대한 징계는 비행 이후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승객들이 있는 상황에서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느꼈을 모멸감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이전부터 승무원들의 사생활이나 인권과 관련하여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겨레』의 12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에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을 할 때는 국내외 면세점, 공항 내 쇼핑몰이나 상점을 이용하지 말고, 공공장소에선 전화사용을 하지 말며, 커피 등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마시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승무원 근무수칙이 외부에 알려져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고 한다. 또한 ‘땅콩 후진’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 사건을 알린 승무원을 찾기 위해 직원의 개인 메신저를 검열했다고 한다.

‘땅콩 후진’ 사건이 인권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현아 부사장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개인 비행기 취급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또한 한 회사의 임원으로서 그 회사의 직원들이나 승객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조금 범위를 확대해보면,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구성원을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소유물로 취급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 조직에 있는 사람과 그 조직의 고객이나 손님을 인권이 있는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실천하는 자세야 말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행동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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