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 글자> 저자 정철 카피라이터

   
 

재미 느끼지 못하면 광고쟁이로 버티기 힘들어
50세가 넘었지만… 20대 카피감각에 뒤지지 않아

광고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중요
내 책, 제발 천천히 곱씹어 읽어달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만난 후…“인생이 바뀌었다”
<한글자>, 정철의 색깔 가장 잘 드러낸 책

광고, 독립운동 아냐… 너무 목숨걸지 않았으면
20년 넘게 카피라이터하면서…내 이야기 ‘마렵다’ 생각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아침에는 껌을 팔고 점심에는 약을 팔고 저녁에는 옷을 판다”

광고 카피라이터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 작가 정철(54)의 말이다.

흔히 광고의 꽃은 ‘카피’라고 한다. 카피란 광고 문구를 뜻하는 말이고 카피라이터(Copy Writer)는 광고에 나오는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카피라이터는 마음을 사로잡는 문구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한다.

물건을 팔기 위해 카피를 쓰고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 반은 카피라이터이자 반은 작가인 사람이 바로 ‘정철’이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한때 소설가를 꿈꿔 골방에서 소설쓰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공을 살려 남들처럼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 있는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추천 공고를 보고 글쓰는 사람이 되고파 지원했다.

결국 1985년도 MBC애드컴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하이트 맥주, 기아자동차, 이랜드, 삼양라면 등 각종 브랜드를 맡아 광고 카피를 썼다. 현재도 ‘원로 카피라이터’라는 소리를 듣지만 지치지 않고 30년 동안 카피를 쓰고 있으며 현재 1인 회사 ‘정철 카피’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씹어먹는 책, 이빨>,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 <머리를 9하라> 등 다양한 책을 펴냈다. 책을 내면서부터는 발상이나 글쓰기와 관련된 강연도 줄을 이어 전국을 누비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친노라 부르는 정철은 노무현재단 시민학교 글쓰기 특강도 틈틈이 나가고 있다.

그는 식상하고 틀에 박힌 정치광고에도 정철 스타일을 불어넣었다. 2012년에는 문재인 후보의 카피라이터로 일 년간 일했다. 부산에서 100일정도 국회의원 선거를 돕고 200일은 서울에서 대통령 선거를 도왔다. 대선을 준비하며 사용한 카피 중 대표적인 것이 <사람이 먼저다>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 슬로건이었던 <사람특별시>도 있다.

그가 쓰는 글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다. 장독대에서 꺼낸 잘 숙성된 된장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두고 볼수록 진한 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뚝배기에 담긴 사골국물처럼 말이다.

이런 그가 최근 책 <한 글자>를 출간했다. 한 글자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 별, 꽃, 꿈, 밥, 등…. 1음절로 이뤄진 글자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담았다. 촌철살인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놀랍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많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던데 펜을 든 정철에게는 모든 글이 사람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는 광고도 글도 다 사람을 향해야 한다며 미소짓는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6일 수서역 근처 카페에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글쟁이 정철을 만났다.

선한 인상에 해맑은 웃음을 가진 정철. 기자가 그에게 ‘동안’이라며 부러워하니(?) ‘철없이 살면 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철다운 답변에 한바탕 웃으며 유쾌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Q. 작가님은 현재 카피라이터, 강연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 나는 어디 가서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라고 소개한다. 카피라이터로 일한 지는 30년 정도가 됐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책을 쓴 것은 6년 정도다. 카피라이터와 작가는 말이나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쟁이로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 강연의 경우는 책을 내다 보니 따라오는 일이다. 또 책을 쓰고 독자와 소통하는 공간이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요청이 들어와서 하는 것이다.

Q. 인터넷을 보면 정철 작가님의 강연이 인상깊다, 책이 재미있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호응을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
: 기분이 좋다. (웃음) 책을 낼 때도 그렇지만 책을 내고 난 후 책에 대한 반응을 알고 싶을 때가 있다. 독자들이 쓴 리뷰를 읽어 보면 ‘이런 사람들이 공감하는구나’ 혹은 ‘심혈을 기울인 글인데 전혀 반응이 없네’라고 생각한다. 강연 들었던 친구들이 강연 리뷰를 올리거나 메일이나 편지글을 보내줄 때도 참 고맙다.

Q. 요즘 강연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보통 어떤 주제로 강연을 하나
: 내가 강연하는 것은 주로 생각을 바꾸자는 ‘발상전환’ 강연이다. 이를 강연주제로 생각하게 된 것은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 등의 책을 내고 나서부터다. 책을 낸 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 질문을 거듭해서 받다 보니 무기를 하나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책에 썼던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발상’에 대한 정리를 해봤다. 내가 이 책과 글을 어떻게 썼는지 고민하고 정리하다 보니 2시간 가량의 강연이 됐다.

그리고 3년 전 쯤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특강을 했다. 사실 내 인생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 서면 울렁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첫 특강을 시작으로 주변에서 ‘우리 회사에서도 강연을 해주면 안 되겠냐’, ‘우리 학교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등 요청이 이어지다 보니 강연을 하고 있다. 주제는 발상전환이 70%정도를 차지하고 카피라이팅 등 글쓰기도 있다.

Q. 카피라이터 생활을 거의 30년 동안 하셨다. 카피라이터의 삶은 어떤지 궁금하다
: 일단 내 경우는 광고가 무지하게 재미있었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광고쟁이로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 매번 주말도 없고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재미를 못 느낀다면 주저앉는 게 ‘광고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남들처럼 압박감,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다행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광고를 해올 수 있었다.

Q. 광고하는 사람들은 밤새는 일도 부지기수고 주말도 없이 일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어떤지 알고 싶다
: 그렇다. 상당히 많은 광고쟁이들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매일 밤새고 주말마다 야근하고 특근하는 이유는 집중력있게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낮에 집중력을 갖고 일하면 야근을 안 할 수 있다고 본다. 밤새고 다음날 늦게 출근하고…. 결국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저녁 6시 이후에 일한 경우가 별로 없다. 낮에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3~4시간 정도가 된다. 사람이 하루종일 집중력을 발휘할 순 없다.

광고는 독립운동이 아니다. 엄청 대단한 일도 아닌데 너무 목숨을 거는 것 같아 안타깝다. 광고보다 중요한 것이 가족이고 삶이 아닌가. 자신의 일상을 놔버리면서까지 광고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자기 성격상 미진한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올인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어쨌든 광고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가족과의 관계 등을 희생하면서 광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Q. 작가님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회사 <정철 카피>는 어떤 곳인가
: <정철 카피>는 내가 대표로 있는 1인 회사다. 한창 카피 일감이 많아 정신없을 때는 아래 카피라이터를 두고 일한 적도 있다. 지금은 일이 많지 않기에 혼자 하고 있다. 내가 올해 54살인데 광고쟁이 사이에서 나이를 먹었다며 원로 카피라이터 대접을 받는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나이를 먹으면 감각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있고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일이 줄어든다. 예를 들면 광고대행사와 회의를 할 경우 젊은 카피라이터에게는 ‘다른 거 하나 더 써줘’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나이가 든 카피라이터에게는 편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일이 줄어든다. 나는 50세가 넘었지만 20대, 30대 친구들의 생각과 카피 감각을 겨뤘을 때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Q. 광고쟁이로 일하는 것에 있어서 나이가 중요한 듯하다
: 광고대행사에서 어느 정도 일하면 팀장을 하다가 국장, 이사로 진급된다. 국장 이상 넘어가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보통 광고주를 만나 술을 마시거나 도장을 찍는 등의 일을 한다. 카피를 쓰거나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견디기 어렵다. 재미도 없고 말이다.

인생의 경험이 광고에서 중요하듯, 나이가 많다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경력이 오래된 카피라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60세가 가까움에도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보통 4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 일을 손에서 놓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 안타깝다.

Q. ‘정철’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아닐까 싶다. 카피라이터 지망생들의 롤모델로 불릴 정도라고 하던데 이런 시선과 관심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 기분이 좋다. (웃음) 사람들은 대게 카피라이터, 광고대행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광고쟁이와 카피라이터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카피라이터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이 일이 괜히 멋있어 보이거나 모델을 만날 수 있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내면 된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거의 노가다하듯 카피를 뽑아내야 하며 하루에 5~6개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회사에 출근한 후 회의가 이어지고 아침에는 껌을 팔고 오후에는 약을 파는 등 하루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그리고 보통 우리나라 카피라이터 중 아는 사람이 있냐고 하면 잘 모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처음에 뜨니까 내가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웃음) 하지만 <내 머리 사용법>과 <불법사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카피라이터 정철이 더 알려진 측면이 있다. 실제로 현업에서 일하는 카피라이터 중에 정말 잘하고 훌륭한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Q. 카피라이터 지망생 강의를 오래 하기도 했고,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이 많이 온다고 들었다
: “제 꿈은 카피라이터인데요. 지금부터 뭘 공부하면 되나요?”라는 메일을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받은 적도 있다. (웃음) 보통 메일이 오면 가능하면 답장을 해주려고 했다. 그랬던 이유는 MB정부 때 내가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광고 카피가 아닌 우리 사는 세상이나 대한민국에 대한 글들을 많이 쓰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안 한다’고 말했었다. 근데 내가 메일을 받은 사람에게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지금은 조금 게을러졌다.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보낼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광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우는 게 먼저다’라고 한다. 또 광고를 잘하고 싶으면 ‘연애를 하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그만큼 기능적인 것 보다 가치관이나 철학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Q. 알고 보니 ‘경제학과’를 나오셨더라. 경제학을 전공했음에도 카피라이터 된 이유는 무엇인가
: 대학에 들어갈 무렵 사실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집에 아들만 둘이 있는데 당시 형도 국어국문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또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경제학’쪽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미시경제, 거시경제, 통계 등의 수업이 나와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제학 관련 수업은 거의 안 듣고 전공필수만 듣거나 신문방송학, 역사학 등의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경제학과와 거리를 둔 채 대학을 다녔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 글을 써서 밥 먹고 살만한 직업이 많지 않더라. 기자, 출판사 등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경제학 출신이니까 대기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과사무실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가 오른쪽 벽에 붙인 포스터 하나를 보게 됐다. 그 포스터에 ‘카피라이터 추천’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것은 MBC애드컴이라는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는데 우리학교에서 몇 명 추천해달라는 포스터였다. 당시 카피라이터가 뭔지 몰랐고 그냥 ‘라이터(writer)’가 있길래 글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자세히 알아보니 카피라이터는 광고에 나오는 말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더라.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구나.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학과라서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추천서 하나를 받았다. 그런데 대기업 면접과 MBC애드컴 시험 날짜가 겹치는 게 아닌가. 선택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대기업 면접을 가라고 했지만 그냥 MBC애드컴으로 갔다. 결국 맨 꼴찌로 합격해 입사하게 됐고 이때부터 카피라이터 인생이 시작됐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나한테 맞는 글은 소설이 아닌 카피라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소설에 대한 꿈을 접었다. 우연히 본 포스터로 인해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학창시절부터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슴에 키웠기 때문에 기회를 왔던 게 아닐까 싶다. 꿈을 품으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고 생각한다.

Q. 광고 카피를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다른 점이 더 많을 것 같다
: 크게 보면 글을 갖고 사람들한테 말을 걸면서 공감을 얻고 설득하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의 목적에서 갈린다. 광고 카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목적지향적이어야 하며 개인적인 재주나 문장력을 과시하는 글이 전혀 아니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는지에 따라 좋은 카피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반면 책을 쓰는 것은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고 말을 걸어서 공감하는 일이다. 제품이 아닌 철저하게 내가 중심이 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내 머리 사용법>을 펴낸 이후부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 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내 얘기를 하고 내 가치관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고카피는 결정적으로 남의 얘기를 대신 해주는 것이다. 다양한 상품 등을 두고 20년 간 남의 얘기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내 이야기가 ‘마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날 것으로 던지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Q. <내 머리 사용법>, <한글자> 등의 책을 보면 독자들에게 한결같이 전하는 말이 있다. ‘제발 천천히 읽어달라는 것’이다. “재미에만 빠지지 말고 의미에 빠져 달라.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다 읽었다면 일주일쯤 지난 후에 다시 책을 펼쳐서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달라”고 쓴 글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내 글은 굉장히 짧다. 몇 줄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책을 사서 속독하기 시작하면 1시간이면 다 읽는다. 그런 당부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6개월 혹은 1년 가까이 쓴 글을 사람들이 한 시간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게 안 좋았다. 또 <내 머리 사용법>을 비롯해 다른 책들의 리뷰를 보면 ‘한번 읽고 얼마 후 다시 읽으면 색다른 것이 느껴진다’는 글이 있기도 해서다.

글이 독자 머리에 부딪히는 게 독서라는 행위다. 그런데 책을 빨리 읽어버리면 뭔가 튀어나오기 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나오게 만드는 시간이 사라진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내 책은 더 그렇더라. ‘정철이라는 친구는 이렇게 생각하네’라며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본인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책은 더럽게 읽을 필요가 있다. 책을 사면 새 차 한 대를 뽑은 사람처럼 긁힐까봐 겁내며 읽는 분들이 있다. ‘책이 아니라 공책’이라고 생각하며 책 속 여백에 생각을 정리하고 곱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당부를 하게 됐다.

   
 

Q. 이번에 출간된 <한글자>라는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한 글자로 된 단어가 참 많다’는 점이었다. (웃음) 한 글자를 두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쉬워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 쓰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 내 책이나 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르다’인 듯하다. 다른 글이었기 때문에 한번 보게 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었을 것 같다.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콘셉트나 형태가 다른 책,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책, 대한민국에서 나 아니면 못 쓸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한 글자만을 갖고 책을 써보는 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 옛 조상들이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일 때 처음에는 한 글자로 붙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꽃, 물, 별 등…. 우리 주위에 흔하고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물들 중에서 한 글자로 된 것들이 의외로 많더라. 이런 것들의 의미를 잘 살피면 소중한 가치를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 글자로 된 것들을 국어사전을 뒤져 추렸더니 400개가 넘더라. 결국 262개의 한 글자를 갖고 책을 썼다.

사실 글의 제목이나 형태가 정해진 상태에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제약이 좀 있었다. 힘들 것 같았지만 마음을 먹고 나니 써지긴 하더라. 남들이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밖에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은 쓰기 어려운 책을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글자>는 정철이라는 사람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 아닐까 싶다.

Q.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충 생각하거나 쉽게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것 같다
: 쉽게 썼다고 봐준다면 그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쉽게 쓰지 않았다. 물론 쉽게 나온 글도 있지만 보통 3~4줄의 글 하나를 쓸 때 30번 정도는 수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또 읽는다. 일단 쓰고 수정을 반복하다가 때론 버리기도 한다. 글을 쓸 때 쉽게 쓰지 않고 무지하게 파고드는 편이다. 어느 날 문장 하나를 탁 떠올리는 것보다는 꾸준히 생각하며 쓴다.

책과 글에 대한 악성댓글이나 악평에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관심이 많을수록 그런 반응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사람이 100명이 있다고 할 때 100명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을 쓸 이유는 없지 않나. 내 스타일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일부라도 있다면 그들과 소통하고 내 생각을 계속 보여주면 된다. 예전에는 책에 대한 안 좋은 리뷰를 보면 ‘마음에 안 들면 혼자 생각하면 되지 굳이 쓸 필요까지 있나’하며 서운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평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Q. 누군가는 작가님을 두고 ‘친노’ 혹은 ‘민주당과 인연이 많다’고 평하기도 한다. 이런 평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알고 싶다
: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평가를 각오하고 다양한 일을 해왔다. 나는 친노(노무현)이자 친문(문재인)이다. 사실 이런 얘기는 내게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정치색을 띠는 것이 독자의 폭을 좁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열렬한 독자가 생기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손해보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2012년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해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느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데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동안 올인해 문재인 후보의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어찌 보면 외도를 한 셈이다. 이 외도를 시작하면서 독자의 상당수가 떨어져나갈 것이고 강연 요청도 줄어들 것이며 일감도 적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했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안 됐지만 결과를 받아들이고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열심히 책으로 내고 글을 쓰고 있다. 어찌 보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Q. 작가님은 평소에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고 현재 노무현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2002년 봄이었다. 당시 20년 가까이 광고쟁이로 바쁘게 살아오던 때였다. 돈도 많이 벌고 이름도 났던 시기였다.

그런데 광고계는 누군가를 짓밟지 않으면 내가 짓밟히는 정글같은 세계다. 그런 곳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이름을 알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내가 광고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서 축배를 마시고 있을 때, 떨어진 다른 회사에서는 울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광고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 정글같은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20년 동안 살고 있을 때 2002년 봄, 지역순회 대통령 후보 경선을 TV로 보게 됐다. 당시 토요일에 늦은 오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던 중 TV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경선에서 1등을 한 것을 목격했다.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나더라.

평소 노무현과 전혀 관계가 없었는데, 단지 객관적으로 ‘저 사람 괜찮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점이 굉장히 의아했다.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생각하다가 순간 노무현 대통령이 ‘너 이대로 살아도 되냐’고 내게 묻는 것 같았다. ‘광고 열심히 하는 것 좋은데 이렇게 살면 너의 인생이 괜찮은 거냐’ 라고 묻는 느낌이었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20년 동안 경쟁, 승리, 나 자신만을 앞세우며 살아다가 노무현을 보고 ‘사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가 궁금해졌고 인터넷 등으로 알아보다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도 가입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사인에 사용하셨다. 그로 인해 앞으로 ‘사람’ 냄새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누구나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뿌연 안개 때문에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안개가 걷히면서 한 쪽에 길이 열렸다. 그래서 그 길을 가면 문제가 없었고 실패가 없었다. 지갑 속에 오만원짜리를 꼬깃꼬깃 숨겨놓으면 왠지 모르게 든든해지지 않나.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내 삶에 깊이 관여하더라.

Q. 그렇다면 문재인 의원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개새끼입니다>라는 책을 썼다. 이후 친노 혹은 노무현 카피라이터로 굳어지고 노무현에 대한 글도 많이 썼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노무현의 가장 친한 친구인 문재인 의원인데 대선 때 카피라이터로 일해줄 것을 제안했다. 그래서 문재인 의원과 1년을 함께 지냈는데 그때 문재인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격, 철학, 행동 등을 보면서 그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Q.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글자가 있다면
: ‘것’이라는 글자다. 책에도 ‘그것보다 이것이 소중하다’는 글을 썼다. 멀리 있는 미래를 위해 가까운 오늘을 희생하며 살지 말자는 뜻이다. 나는 ‘저곳’보다 ‘이곳’이 소중하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글 자체의 느낌이 좋은 건 아니지만 내 생각을 상당히 잘 표현해주는 글이 아닌가 싶다.

Q. 그렇다면 카피라이터 정철의 인생을 한 글자로 표현해달라
: 음…. 한 글자가 아니라 한 단어로 표현하겠다. 바로 ‘사람’이다. 앞으로 ‘사람’이라는 단어 하나만 붙들고 가고 싶다. 다른 건 많이 바뀔 수 있지만 이 핵심가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
: 없다. 막 사는 것이다. (웃음) 그냥 1년에 한 권씩은 내 생각이 담긴 책을 내고 싶다. 죽는 해까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는 동안은 책을 통해 사람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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