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조현아 씨, “자식교육 잘못시켜 죄송하다”고 하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과 덕분에 며칠 간 화제가 되었던 ‘땅콩회항’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그들의 사과를 보면서 ‘그래도 사람이 무섭기는 한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평생 남의 위에 군림하던 버릇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가 없다’고 여겼다. 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들은 ‘갑’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갑에게 분개했던 수많은 ‘을’들 역시 갑에게 억압받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 짐작했다.

이 짐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대한항공 이름으로 각종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사과문이 게재되고, 대한항공 조현민 상무는 직원들한테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임직원 모두의 잘못’ 이란다. 분명히 이 사안은 다수의 대한항공 직원의 잘못이 아니다. 조현아 씨의 잘못이다. 권력을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것 모두가 조현아 씨의 잘못이다. 그런데 이렇듯 책임전가를 하고도 무엇이 잘못된 줄 모르는 걸 보니 그 전의 사과는 모두 거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배운 사람들이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짐작하고 있을 테니 옛 어른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주길 바란다. 조선의 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나오는 글이다.

“소광(疏廣)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부자는 여러 사람이 원망한다.’ 내가 나의 재물을 모으니 남에게 해로울 것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남은 없는데 나만 있으면 해치려는 자가 생기고, 남은 잃는데 나만 얻으면 성내는 자가 생기며, 남들이 우러러보는데 내가 인색하면 서운해 하는 자가 있게 된다.”

열심히 일해서 내가 내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었더라도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고 늘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런 겸손함이 없으니 비행기를 돌려 세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혼자서만 부를 누리면 원망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원망이 극에 달하면 비방이 생기고, 비방이 생기면 재앙이 싹트고, 재앙이 싹트면 몸이 망하는데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다. 재물이 있으면 권세도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좋은 척해도 속으로는 미워하며, 나와서는 아첨하고 물러가서는 욕한다. 백방으로 선동하여 갈수록 더해지면 악이 쌓여 풀 수가 없게 된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모두 ‘재물을 가진 데다 권세까지 있는’ 조현아 씨에게 있으니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 나아가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해선 안 될 것이다.

“근세(近世)에 재물을 모은 집들이 그 인색하고 어그러진 행동이 전해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는 대부분 그렇지는 않지만, 집이 결국 좋지 못하게 되어서 후손이 끊어지거나 재앙을 만난 경우가 또 적지는 않다.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일 수 있고, 많이 쌓인 훼방은 뼈도 사그라지게 하는데 이것은 이치가 반드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왕왕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은 막연히 뒷날에 이런 꼴이 될 것을 모르고 있으니, 비웃을 만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히 반성하여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겠다. 다만 그 전에 잘못을 저지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수많은 ‘을’들이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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