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영 변호사
▸現 법률사무소 동행 대표변호사

【투데이신문 이화영 변호사】“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네.”

필자는 대학교에 수능을 통한 정시모집이 아닌 수시모집을 통해 합격, 입학을 했다. 수시모집전형은 고등학교의 학생부 내신성적과 면접 점수를 합해 고득점자 순으로 합격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면접 때의 학과 관련 질문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 경우가 무엇이 있을까요?” 였다. 교복을 입은 18세 어린 필자는 당황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있어?’ 그리고선 되물었다. “잘 듣지 못하였는데 질문을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한문장을 말하는 동안 재빨리 머리를 굴려 만든 대답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간통을 했는데 한 사람은 자백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부인을 했습니다. 자백만 하고 그 외에 증거가 없으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자백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이 부인을 했기 때문에 자백 외에 증거가 없어서 처벌을 받지 않고, 부인한 사람은 자백한 사람의 말이 증거가 되어 처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위 대답이 형사소송법상의 ‘공범자의 자백의 범위’와 관련해 학설과 판례의 입장이 대립되는 부분이라는 것은 입학을 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즉, 아직 법을 배우지 않은 일반 학생으로서 할 수 있을 것이라 교수님들이 생각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이며, 당시 교수님들이 저 질문을 함으로써 의도했던 것은 ‘정당방위’와 같은 ‘위법성조각사유(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였으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해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필자는 교수님들의 의도는 벗어났지만 질문의 범위에는 벗어나지 않는 ‘한 방’을 날린 것이 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은가? 자백을 하여 범행을 시인하고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고 나는 곧 죽어도 억울하다며 항변하는 이는 처벌을 받을 수가 있다. 자백 외의 보강하는 증거가 있어야 범죄자로 처벌하는 우리 ‘법’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공범으로서 법정에까지 설 관계라면 둘 다 범죄자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것 같은데 법대로 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돈이 아주 많은 모 기업의 사장님이 술집의 호스티스를 첩으로 삼아 그 대가로 아파트를 주었다고 치자. ‘만약 더 이상 나의 첩이 되지 않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 아파트를 돌려줘야 한다.’라는 계약서와 함께 말이다. 사장님의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아 그 첩은 다른 남자가 생겼고, 사장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위 계약서를 근거로 법원에 첩은 나에게 아파트를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론적으로 첩은 사장님에게 아파트를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첩 계약’은 반사회질서인 것으로 무효인 것이라고 보아 그 무효인 계약이 해지됐다고 하여 아파트를 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아파트를 사장님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이는 첩 계약이 유효한 것을 전제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를 규정하고 있고, 간통을 처벌하고 있는 우리 법제 하에서는 그와 같은 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불륜을 한 사장님은 아파트를 돌려받지 못해도 수긍할 수 있다고 치지만 역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동을 한 그 호스티스는 어째서 서민들은 자기 힘만으로는 평생 일해도 얻기 힘든 아파트를 떡하니 얻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 법은 호스티스의 아파트를 보유할 권리를 보호해 준 것이 아니라 ‘첩 계약’을 보호해주지 않은 것 뿐이다. 다만, 호스티스는 그로 인하여 ‘반사적 이익’을 얻은 것이다. 글을 읽으며 무언가 씁쓸함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또한 신기한 일이다.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세상은 곳곳에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공범자의 자백의 사례라든지, 첩 계약 사례 등을 보며 “나는 도대체 그 법을 이해할 수가 없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하여도 위에서 이야기했다. 결과에 대한 도덕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핑계 없는 무덤은 없듯이 법을 적용해서 도출되는 결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직 항소심의 판단이 나오지 않아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도둑이 사망까지 이른 이른바 ‘도둑뇌사사건(뇌사와 식물인간 상태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므로 옳은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일반인의 법 감정과 법원의 사건에 대한 법리적용 사이에 많은 괴리가 있어 일반인들의 1심 판결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 많은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법원에서 이러한 법리적용을 했으므로 이렇게 꽤 다수의 일반인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라고 설명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지금 사건에 대한 의견을 단정 짓기보다는 필자 역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통해 사건을 어느 일방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만,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네.”라는 말은 인생의 쓴 맛을 보며 인생을 탓할 때만 쓰는 말은 아닌 듯 싶다. 마치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라는 말이 의도치 않게 여러 상황을 담게 된 경우처럼 말이다.

이제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만약 감정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보도하는 기사를 접할 때가 생긴다면 한번쯤은 머릿속으로만 이해해보도록 하자. 인생이 그렇듯,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세상은 곳곳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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