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형 칼럼니스트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
▸저서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대중vs김영삼> <왕의 서재>등 다수

【투데이신문 이동형 칼럼니스트】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현지시간으로 1일, 서울의 재벌 집착증'(Seoul's Chaebol Fixation)이란 사설을 통해, 국내에서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가석방/사면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신문은 “한국의 일부 지도자들이 경제 살리기 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대기업 총수 사면·가석방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재벌 의존이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면죄부 문화를 낳고 있다”고 비난 했는데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김재원 수석부대표, 이완구 원내대표까지 줄줄이로 경제인 가석방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가석방의 이유가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적한 것처럼 이상하다 못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를 풀어주면 죽어가는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논리를 배경으로 해서 등장하는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이를 입증할만한 실질적인 사례가 있었나? 아니면 경제학 이론서에 등장하는 정통적인 경제부흥 방법인 것인가? 정부가 말하고 있는 “기업 총수를 풀어주어야지만 경제가 산다”라는 이야기는 이론적 배경도 없고 논리도 없고, 사례도 없는 한마디로 경제인 가석방을 위한 ‘맞춤형 핑계’일 뿐이다.

한국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재벌을 위시로 한, 소수 독점 기업들이 이득을 독식하여 하층계층에 까지 그 이득이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사상최고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도 내수경기가 최악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재벌들에게 “사내유보금 좀 풀어라” 고 읍소했던 이유도 다른데 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친기업프렌들리 정책으로 돈을 벌었으면 재투자를 해서 고용창출을 하고 비정규직을 줄임과 동시에 정규직을 늘이고 급여를 올려주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노동자들이 지갑을 풀어 그 돈으로 내수시장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 경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경제이득을 독점하고 있는 재벌들이 해야 할 일인데, 언제, 우리 기업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라도 있었는가? 천만에, 이 나라 대기업들은 상생은 커녕,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까지 문어발로 진출해서 모두 자기 배불리기에만 혈안이었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규직 정책’도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재벌총수들은 이렇듯 노동자와 서민들의 먹을 것을 빼앗으면서 자기 배를 채우는 와중에, 배임, 횡령, 사기 등의 중범죄를 저질러 감옥행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들을 풀어주어야지만 출소 후, 그것이 고마워 투자나 고용창출로 보답을 할 것이고 그래야지만 경기가 부양된다니 이런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청와대는 “기업인 가석방 문제는 법무부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책임을 법무부장관에게 전가했지만 이런 중차대한 일을 청와대의 오더 없이 법무부가 독자적으로 행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점을 강조하면서 청와대의 이런 발언이 “법무부가 경제인을 풀어주는데 대한 일종의 동의”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고 풀이했다. 청와대의 책임회피를 국민들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사까지 다 알고 있는데, 청와대만 국민을 속이는 게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모양새다.

마지막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9월 황교안 법무장관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재벌 총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밝힌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러나 한국에서 그 같은 국민적 합의는 없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재벌 특권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분노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했다. 국민여론을 살피는 눈이 일개 외국 언론사보다 낮은 우리 정부이니, 앞으로 3년 남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30년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면 정부 관계자들이 섭섭해 할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섭섭하다 못해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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