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 가족> 저자 박동욱 교수

   
▲ 박동욱 교수 ⓒ 투데이신문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
한시, 계속 읽으며 그 맛 스스로 터득해야
책을 통해 옛 가족의 생생한 기록 담아
죽음에 대한 교육 선행될 필요성 있어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껴안아주는 사회가 돼야
일반 대중에게 한시 소개하는 작업 계속 하고파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을 두고 권미경 작가는 그의 책 <아랫목>에서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라고 말했다.

많은 문학인들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가족을 포근하고 따뜻한 존재로 봤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정 분위기가 엄격하거나 애정표현에 서투를 것만 같았던 조선시대에도 ‘딸 바보’ 아버지가 있었고 ‘팔불출’ 남편이 있었으며 사위에게 ‘내리사랑’을 베푸는 장인어른이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조선시대 가족의 모습을 담은 한시를 정리한 책, 바로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박동욱 교수가 쓴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 가족>에서 그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박 교수는 한국학 계간지 <문헌과 해석>에 2년 반 정도 연재했던 작품을 모아 지난해 11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조선시대 가족 모습을 통해 가족의 애틋함과 사랑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한시를 매개체로 옛 가족의 생생한 기록을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근엄하고 폐쇄적일 것 같았던 조선시대 가족의 속내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는 박 교수.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트리는 애틋한 사연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가족만으로 못 살 듯 가족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전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9일 한양대학교에서 박동욱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대담 인터뷰는 한국한시를 전공한 <삼국지 인물전>의 저자 김재욱 작가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 (좌) 김재욱 작가, (우) 박동욱 교수 ⓒ 투데이신문

김: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 가족>이라는 책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가족’이 ‘편’을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은데 그래서인지 더 와 닿는 것 같다. 여기에서 편을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박: 보통 사회적인 관계에서 편을 든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옳고 그름을 넘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감싸 안는다. 법에서도 자기 자식이 범죄를 저질러서 부모가 감춰주면 은닉죄 성립이 안 되지 않나. 결국 온 세상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때 등을 돌리지 않고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 주는 게 가족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내 편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 진정한 내 편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한시(漢詩)에는 매우 다양한 주제가 있다. 전쟁, 사회 등이 있는데 그 중 ‘가족’을 주제로 한 한시를 모아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박 : 얼마 전 한시의 대중화 현상에 대해 단국대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한시를 대중화시킨 사람들의 책을 보면 금강산, 지역 등의 주제가 있다. 예를 들면 금강산에 대한 시들만 모아놓는 식이다. 그 시 자체만 모아서 책으로 내곤 한다. 특히 지역문화원에서 이런 책들이 많았다. 물론 그것 자체가 의미없는 건 아니지만 항상 그런 식의 작업이 있었다. 지역, 명절, 절기 등 단오에 대한 시 모아서 책 내고 절기에 대한 것들 모아서 낸다.

내가 이번에 ‘가족’이라는 주제로 책을 냈는데 이런 시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옛날에 정민 선생님이 그런 시도를 많이 하셨다. 한시에 나타난 새들을 주제로 책을 내셔서 조류학자들이 정민 선생님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한시를 단순하게 종류별로 묶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또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남편도 돼 보고 아이도 낳아보고 하니까,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더라. 젊었을 때 생각했던 가족과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생각하는 가족은 느낌이 달랐다. 결국 진부한 주제일 수 있지만 한번쯤 가족에 대해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나 싶었다.

김: 결혼을 통해 어른이 되는 시점에서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그 범위를 넓혀 대중들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신 것 같다

박 : 그렇다. 내가 책에도 썼지만 ‘가족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가족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썼다. 자기 가족에 대한 애착만 갖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가족을 책임지고 관계를 잘 이루는 것도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가족의 모습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셨다. 또 이를 통해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가족의 덕목을 제시하셨다. 보통 대중들이 조선시대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조선과 현대 사이의 이런 간극을 책 속에서 어떻게 극복하려 하셨는지 궁금하다

박: 한시를 보다 보면 예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다른 부분이 많다. 우리는 대부분 조선시대 이미지가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각색된 역사를 보면서 그게 역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내게는 ‘정말 옛날에는 딸 낳으면 미역국도 못 먹고 천대받고 인간취급 못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기록도 얼마든지 있더라. 부자 간의 정, 아내와의 관계도 요즘 사람 못지않게 살가운 경우도 많았다. 결국, 옛 가족의 모습이 현대와 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기술이나 이런 것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달라지지만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예를 들면 자식에 대한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은 인류가 있었을 때부터 꾸준히 이어왔다.

김: 조선시대는 여자를 매우 천시했다. 남아선호라는 말은 어쩌면 이를 감추기 위한 구호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보면 그랬던 시절인데도 딸을 대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 많다. 이것이 당시 선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봐도 될까

박: 딸에 대한 제문이나 한시가 제법 많이 나와 있는데, 내가 지금 한 것은 섹션이 9개로 이뤄져 있다. 딸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 많다. 딸에 대한 시는 백편 정도가 된다. 지금 초고는 돼 있고 탄생부터 죽음까지 시를 번역하고 평설한 뒤 몇 개의 섹션으로 만들어서 책을 낼 계획도 있다. 그런 걸 보면 딸에 대한 사랑은 지금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김: 선생님은 서얼(庶孼)을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 했다. 이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을 보는데 표현이 장난이 아니더라. (웃음) 제목도 다 직접 쓰셨다고 해서 놀랐다. 등단하신 시인이라서 그런지 표현이 무척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책에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강북사람, 지방대 학생 등을 현대판 서얼이라고 하셨다. 이 책은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쓰신 것은 아니지만 일단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차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시는가

박: 보통 우리가 평등하다고 얘기하지만 평등하지 않다. 사람은 생긴 것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한테 받은 사랑과 재산도 불평등하지 않나. 병에 약한 사람, 가족력이 있어서 암에 걸리는 사람 등이 있다. 또 누구는 집이 부자라서 여러 가지 사교육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한번도 사교육 못 받지만 누구는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서 사교육을 받는다. 이런 것들을 사회적인 문제로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보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는 아이들이 1~2명이 있다. 개천에서 용난 아이들 말이다.

어쨌든 사회구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개인의 노력으로만 몰고 나가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 ‘저렇게 성공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왜 너는 성공하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싶다. 출발점 자체가 차이가 있고 한계가 명확할 수 있다. 어느 지점에서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에 한탄만 하는 것도 미련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사회라는 게 잘난 사람만 살아남는 사회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껴안아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은 점점 변방으로 간다. 사회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핍박하거나 지배하거나 누르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한테 내 능력을 베풀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것이 사회운동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문제지만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개인적으로 ‘남매’ 챕터를 보다가 지하철에서 울음이 터져서 혼났다. 나도 개인적으로 누나가 한 명이 있다. 남매 부분을 볼 때 감정이 격해지더라. 지하철에서 울면 안 되니까 책을 덮었다. (웃음) 남매 챕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 책에 수록된 한시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정서를 ‘애틋함’으로 파악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가족 간의 애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다가 죽어서야 그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기 때문일 것 같다. 선생님은 그 원인을 ‘과묵함을 중시했던 당시의 사회적 경향’에서 찾고 계신 듯하다. 그런데 어쨌든 글로 표현하지 않았는가. 글은 용인하고 행동(표현)은 용인하지 않았던 이유를 좀 더 말씀해달라

박: 내가 어릴 때만 생각해도 자기 부모 앞에서 자기 자식을 예쁘다고 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흉이 아니다. 옛날에는 그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었다. 자식이 죽었을 때 글을 쓰는 것은 부모가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쓰는 것이다. 당시에는 자식이 죽었을 때 몰아서 막 그런 감정을 썼을 것이다.

   
▲ 박동욱 교수 ⓒ 투데이신문

김: 선생님의 책을 보면 ‘죽음’이 대부분의 꼭지에 있는 것 같더라

박: 죽음 자체에 대해 고민스럽고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항상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죽는다는 것을 상정해놓고 사는 것과 내가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죽음에서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명예나 권세나 재산도 빌려온 것이지 자기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죽음이 현대 교육에서는 철저히 은폐되고 사는 것만 배우는데 죽음은 근원적인 일이다.

내가 지금 45살인데 90살까지 산다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 산 45년도 금방 지나갔는데 앞으로의 45년도 금방 지나지 않겠나.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무엇을 깨닫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늘 죽음을 대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장사를 집에서 지내는 등 죽음이 낯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이 소외됐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큰 테마 중 하나가 죽음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김: 선생님은 ‘고전문학 전공자로서 옛 시를 통해 가족의 탄생, 생활, 상실 등의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고정관념을 허무는 애틋한 사연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하셨다. 무리한 부탁일 수 있겠지만 가장 애틋한 사연이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

박: ‘심노숭’이 아내를 떠올리며 쓴 ‘동원’이라는 시가 인상깊다. 쑥을 보면서 아내를 생각하는 시인데 굉장히 슬펐다.

김: 시중에 한시관련 교양서가 적지 않다. 정민ㆍ안대회 선생님처럼 대중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분도 있다. 하지만 한시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인 것 같다. 이렇게 된 원인에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가

박: 현재 시를 읽지 않는 세상이 됐다. 한시는 말할 것도 없다. 한시를 읽는다는 것이 외국어같이 돼 있는 상황이다. 고전의 대중화도 어렵지만 한시의 대중화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민 선생님이나 안대희 선생님이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나도 석‧박사 때 그 분들의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우리는 사실 한시를 볼 때 원문과 같이 본다. 일반 독자들에게 원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시는 10년 정도 해야 어느 정도 맛을 아는데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듯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시를 배웠으면 한다.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정민의 한시이야기’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몇십만 부가 팔렸다. 이런 시도가 좀 많아졌으면 한다.

김: 다른 장르와 확연히 구분되는 한시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일반인들은 한시의 어떤 면에 주목하면서 읽어야 흥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 말씀해 주길 바란다

박: 제한된 글자에서 표현한다는 점이 한시의 매력인 것 같다. 현대시는 길고 이야기도 많다. 오언절구는 20자 안에서 이뤄져있는데 이렇듯 압축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한시의 매력이다. 한시는 계속 읽어서 그 맛을 스스로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맛은 누가 설명해줄 수 없다. 유려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다 보면 한시가 어떻게 해석되고 읽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김: 선생님은 책에서 ‘기억으로 남겨야 할 옛 것과 옛사람들의 흔적을 현재의 공간으로 꺼내오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셨다. 모든 고전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이긴 하지만 특별히 선생님이 이런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 고서를 읽으면 종종 서글플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숨소리, 제스처, 얼굴표정 등이 남아있지 않고 몇 권의 글이 남아있지 않나. 그것을 내가 발굴해서 쓰는 게 좋다. 내가 석사논문 쓸 때 연구한 ‘이양연’이라는 분은 1772년대 사람이다.

그 분의 한시가 이 책에도 많이 나왔는데 그의 모든 자료를 찾아 번역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와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콘텐츠를 꺼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있고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미난 작업이라고 본다. 한문학은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재주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김: 선생님은 학사 때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석사 때는 한문학을 전공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박: 아무래도 우리 학교에 한문학을 하는 정민 선생님이 계셔서 그에 따른 영향도 받았다. 대부분의 국문학에서 관심갖는 것이 현대문학인데, 당시 정민 선생님이라는 걸출한 분이 계셔서 한문학을 하게 됐다.

김: 책을 쓰시면서 ‘아내’ 챕터에서는 사모님이, ‘자식’ 챕터에서는 아드님이 떠올랐을 것 같다. ‘아내의 젊음은 철저하게 전당잡힌다. 그래서 아내는 늘 남편의 부채이고 아픔이며 철저히 묵음처리 당한 슬픈 이름이다’, ‘자식을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한다. 자식을 낳은 뒤에야 아이와 자식의 입장에서 어른과 부모의 입장으로 좌표가 수정된다’고 하셨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이 문장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

박: 어떤 분이 아내에게 왜 부채의식을 갖고 있냐고 묻더라. 나는 부채의식이 있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가 10여 년을 강사생활을 했고 아내에게 연봉이라고 할 수 없는 조그만한 돈을 벌어다 줬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은 내가 박사과정 때 석사과정이었기 때문에 나 먼저 공부 끝내고 공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공부를 못 시켜줬다. 대단히 미안한 일이고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전당잡힌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다. 더불어 아들을 내 나이 42세에 낳았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자식의 입장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 유년기의 기억은 없다. 하지만 자식을 낳으면 내 기억이 복원이 되는 듯하다. ‘내 부모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하고 생각하면 짠해진다.

또 아내가 아이 젖 먹이는 걸 보면서 모유수유라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내가 거의 한 시간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고 김치도 못 먹었다. 매운 걸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물에 헹궈서 먹곤 하더라. 젖도 하루에 3번 먹는 게 아니라 수시로 먹고 새벽에 보채면 먹여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고맙더라. 그래서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 좀 더 어른이 되지 않나 싶다.

   
▲ 박동욱 교수 ⓒ 투데이신문

김: 주제를 ‘가족’으로 한정하고 각 챕터 별로 예시할 자료를 찾고 번역을 해서 평설까지 달고 구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원고작업을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박: 자료를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고전번역원이라는 훌륭한 기관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작가들의 글이 올려져 있고 색인으로 검색이 된다. 예를 들어 ‘코끼리상’을 치면 그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선별할 수 있는 눈만 가지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노하우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검색도 다년 간의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번역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존 번역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런데 대부분 번역본이 없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김: 이 책이 나오고 난 후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박: 보신 분들은 다 좋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홍보가 중요한데 그렇게 많이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웃음) 그래도 주변 지인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해주셔서 감사하다.

김: 선생님은 이미 많은 번역서와 저서를 내셨다. 이른바 ‘파워라이터’다. 모든 책에 다 애정이 있겠지만 특히 이 책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달라

박: 여태까지 한 17권을 냈는데 그 중에서 번역서가 여러 권이 있다. 단독으로 대중교양서를 쓴 것은 처음이다. 어찌 보면 감독으로 얘기하면 입봉작같은 거라서 내게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이런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김: 저술가로서 포부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박: 여러 계획이 있지만 앞으로 이런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또 내가 석사논문을 쓴 ‘이양연 한시’에 평설을 달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양연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좋은 작가 중 한 분이다. 이를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아울러 조선시대 20명의 아버지를 뽑아서 아버지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당분간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쓰고 싶다. 조선시대 여러 인물들 기생, 거지, 해녀 등 9개로 해서 책 하나로 구성하고 더 나아가 9권을 확대해 펴낼 생각도 있다.

지난해 관서 지방 향하여 길 떠나서
석달 동안 강산 돌며 천 리 멀리 유람했지.
와서 보니 당신 병들었고 쑥 또한 다 시들어
당신 울며 하는 말이 “어쩜 그리 늦었나요.
계절 사물 흐르는 물 같아서 멈추잖고
우리 인생 그 사이에 하루살이 같은 거니
저야 죽어 사라져도 쑥은 다시 돋을 건데
그 쑥 보면 당신께서는 제 생각 해주시겠죠?”
마침 오늘 재수씨가 차려준 상 위에는
부드러운 쑥 놓였기에 울컥 목이 메누나.
그때 나를 위하여 쑥 캐주던 그 사람의
얼굴 위로 흙 쌓였고 거기서 쑥 돋았네.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 가족> 중에서… 심노숭 <동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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