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인 1월 16일 종합편성채널인 <jtbc>에서 춘천 중도 유적에 대한 후속보도를 내보냈다. 사실 이보다 더 일찍 보도될 예정이었지만, 자꾸 연기되는 바람에 외압으로 방송이 무산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기도 했었다. 아무튼 방송이 나갔으니 오해는 풀렸겠지만, 보도 내용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내용은, 실제로는 수몰되는 위치에 있지 않은 고인돌을 두고 수몰지역에 있으니 옮겨야 한다는 문화재청 보고서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 레고랜드 공사가 시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위치 자체가 중요한 문화재의 특성상, 옮기지 않아도 될 상황이면 공사를 시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고인돌을 옮겨야 할 상황을 만들어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작성한 거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자체만 해도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이 질타를 좀 받아야 한다. 말하나 마나 문화재청이라는 기관을 만든 목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재를 두고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해 문화재를 옮겼으니, 배경을 의심할 만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다음 문제에 비하면 별 것 아닌 문제로 여겨질 수 있을 것 같다. 춘천 중도 유적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반발도 강해지고 있다. 이 자체야, 이권이 갈리는 문제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반발하는 집단과 그 논리이다. 사업을 시행하는 측에서 막대한 투자금이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논리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춘천 중도 유적이 별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몰고 있는 현상은 차원이 다르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그런 내용들이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이 유적이 고조선과 관계됐다는 근거가 없다거나, 한 번에 만들어 진 게 아니라 천년에 걸친 세월 동안 단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요한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논리 등이다. 또 여기서 나오는 유물이 다른 곳에서도 나오는, 흔한 것이라는 등의 말이 그것이다. 사실 이러한 논리 때문에 춘천 중도 유적이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게 됐고, 그에 따라 공사가 시작된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측이 주로 기성학계 쪽이라는 사실이다. 앞에서 열거한 주장들의 문제는 좀 있다 따지도록 하고, 적어도 이와 같은 태도가 비슷한 다른 유적들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다르다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단적인 예로, 고속철도의 경주역을 옮기게 했던 일과 비교해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속철도 공사가 한창일 때, 기성학계가 중심이 된 고고학계에서는 범국민적인 서명운동을 펼쳐 기어코 경주역을 옮겨놓게 했다. 이 결과로 초래된 불편은 단순한 놀이 시설인 레고랜드의 무산 가능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해마다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고속철도의 경주역이, 경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바람에 지금도 대다수의 승객은 역에서 내린 다음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또다시 이동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런 노선변경에 동참했던 사람들까지 불평을 늘어놓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유적의 손상이 우려된다는 것. 춘천 중도 유적처럼 확인이 되는 유적이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요 교통수단인 고속철도의 역을 옮기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이런 일을 벌였던 사람들은, 경상도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유적의 훼손도 우려해야 하는데 강원도의 뻔히 보이는 유적은 훼손되어도 괜찮은 걸로 보이는 것일까? 이런 식이라면 웬만한 사건의 범인에게는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특정한 용의자에게는 ‘범인 아니라는 증거가 없으니 일단 죽여 놓고 보자’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런 점을 의식하면 고조선과 춘천 중도 유적의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느니 하는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중 잣대임을 알 수 있다. 웬만한 유적에서는 발굴초기부터 유적이 어떤 국가, 어떤 문명과 무슨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명백하게 밝혀지기가 어렵다. 심지어 한 국가의 중심지인 왕성(王城)으로 수십 년 동안 엉뚱한 곳을 지목하는 경우도 생긴다. 풍납토성의 경우, 아직 왕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전제로 하다시피 해서 한성백제박물관을 지었다.

심지어 어떤 국립대학의 고고학 교수는 풍납토성과 경주 월성이 같은 왕성구조라는 결론을 내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풍납토성에서 나오지 않은 왕궁과 경주 월성에서 발굴된 바 없는 민가(民家)가 ‘앞으로 발굴될 것’이라는 예상을 근거로. 이와 같이 어떤 유적들에 대해서는 발굴되지도 않은 것을 근거로 삼아, 중요 유적이니 보존은 물론 발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례에 비추어 보면, 무엇 때문에 춘천 중도 유적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확실한 연관관계가 밝혀져야 보존할 가치가 생기는 것처럼 몰아가는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면 ‘긴 세월 동안 단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흔한 유물’이 나온다는 등의 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유적의 가치는 다른 곳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 유물이 나와야 인정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유물이라도 만들어진 시기가 현저하게 빠르거나, 관련 문명의 세력권 바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오는 등의 요소가 있으면 기존이 역사인식을 한꺼번에 뒤집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보존했던 풍납토성만 해도 다른 곳에서 전혀 나오지 않던 유적이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성벽이라 해도,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서 ‘성(城)이 없다’고 했던 3세기 이전에 지어졌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사서 중심으로 우리 고대사를 해석해왔던 시각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 하나만 해도 중요한 유적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문제도 시비가 걸리고 있지만, 보존돼 있지 않았으면 아예 시비를 할 근거 자체가 없어진다. 그래서 희생을 치르면서 보존했던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왜 유적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약보고서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도로를 만들며 훼손시켰던 부분을 빼놓으면 빈자리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유적이 밀집돼 있다. 천년에 걸쳐서 이런 유적이 만들어졌다면, 이는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이곳을 중요한 거점으로 여기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 원인은 물론, 긴 세월동안 같은 곳에 자리 잡은 문명이 변화해 가는 양상을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유적도 흔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춘천 중도 유적이 이중 잣대의 논리를 퍼뜨리면서까지 박대를 받아야 할까? 현행 문화재보호법으로는 관련 전문가들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유적이라고 했을 경우, 함부로 공사를 진행시킬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초기 발굴로 낸 보고서에서 춘천 중도 유적이 ‘별 볼일 없는’ 유적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공사가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 보고서를 써주어서 공사의 진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기성학계의 고고학자들이 공범이 아니라 오히려 주범같이 느껴지는 것이 지나친 망상일까? 문화재청의 보고서에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마구 들어갈 수 있었던 현상을 감안해보면, 망상은 아닌 것 같은데.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