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린이는 죽을죄를 지었어도 가두거나 고문하지 말라
[칼럼] 어린이는 죽을죄를 지었어도 가두거나 고문하지 말라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1.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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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연초부터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교사에 의한 어린이 폭행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1월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김치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교사가 해당 아동이 바닥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뺨을 때린 것이 CCTV에 찍혔고,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부평의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교사가 ‘한글 공부와 선긋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훈계 차원에서’ 원아 9-10명을 주먹으로 등으로 때리고 밀친 사실이 드러났다. 원주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1월 15일에 ‘생일을 맞은 어린이가 교탁 위의 떡을 다른 친구에게 마음대로 주었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교사가 떡을 준 어린이와 받은 어린이를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발각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보통 해당 어린이집의 CCTV에 찍힌 것이 드러나면서 발각되었고, 조사가 계속될수록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상습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 인해 어린이집에 자식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지금보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훨씬 강조되었던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1429) 7월 30일 첫 번째 기사를 보면, 세종이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자자(刺字)를 금지하는 내용의 기록이 등장한다. 자자는 “얼굴이나 팔뚝에 흠을 내어 죄명(罪名)을 먹칠하여 넣던 일”을 말한다. 즉 죄의 내용을 문신으로 새긴 것이다. 정연(鄭淵)이라는 신하가 “늙은이와 어린이가 절도를 범하였을 때에도 모두 자자(刺字)하오리까.”라고 묻자, 세종은 여기에 대하여 반대한다. “어린 자는 뒤에 허물을 고칠 수 있고, 늙은이는 여생(餘生)을 얼마 남지 아니한 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하여 형조 참판 유계문(柳季聞)은 단순히 죄를 표기하는 것인데, 늙은이나 어린이라고 면제할 수 없다고 하였고, 당대의 명 신하였던 판부사(判府事) 허조(許稠)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장형(杖刑)도 하지 아니하고 속전(贖錢)을 받는 것인데, 하물며 자자의 고통은 태형(笞刑)이나 장형보다도 더한데 어찌 자자(刺字)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리고 세종이 여기에 동의하면서, 형조에 “나이가 70세 이상인 자와 15세 이하인 자에게는 자자(刺字)하니 말라”는 내용의 교지(敎旨)를 내린다.

또한 『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1430) 11월 27일(갑자) 5번째 기사에서는 형조에 전지하여 15세 이하와 70세 이상된 자에 대한 구속 고문을 금하게 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세종은 “옥에 갇혀 있는 것과 고문을 실시하는 것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 중에도 늙은이와 어린이는 더욱 불쌍하다. 관리들이 간혹 경중을 구별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형틀에 올려 매며, 또한 늙은이나 어린이에게 속(贖, 일종의 벌금)을 바치게 하는 것은 그 몸에 상해를 입히지 않게 하려는 것인데, 더러는 가벼운 범죄자에게도 곧 고문을 실시한다 하니, 지금부터는 15세 이하와 70세 이상 된 자에게는 살인·강도 이외는 구속함을 허락하지 아니하며,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구속하거나 고문하지 말고 모두 여러 사람의 증언에 의거하여 죄를 결정하라. 만일 어기는 자에게는 죄를 줄 것이니 두루 중앙과 지방에 알리라.”라고 하였다.

『세종실록』의 기사에 따르면 세종이 어린이의 구속, 고문을 금지하기 전부터 죄를 지은 어린이는 죄의 값을 돈으로 치르는 ‘속’을 바치게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린이가 사회적 약자로 물리적 형벌에서 보호 받아야 할 존재이며, 어린이의 보호자로 하여금 죄값을 치르게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종실록』의 기록을 봤을 때, 세종은 어린이가 앞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어린이를 상해를 입힐 수 없으며,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집에서의 폭행이 속속 드러나는 2015년 현재에도 시사점이 크다. 조선시대에는 어린이는 죽을 죄를 지었어도 구속하거나 고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김치를 먹지 않았거나 한글을 잘 모른다는 이유를 어린이를 때리고 있다.

2014년 정부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학생 엠티에서 사고가 나면 엠티를 통제하고, 수학여행에서 사고가 나면 수학여행을 중단시키는 등 해당 분야만 단속하기에 급급했다. 연초부터 드러나는 어린이집에서의 폭행으로 정부가 단순히 어린이집과 어린이집 교사만을 단속할까 두렵다. 그 이면에는 맞벌이로 인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사정, 국가 차원에서의 복지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경제, 사회복지 차원의 배경이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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