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저자 이혜정

   
▲ 이혜정 작가 ⓒ 투데이신문

서울대생 1312명 대상으로 교육탐사 프로젝트 진행 
비판적 사고보다 수용적 학습태도 지닌 학생들 학점 높아
서울대생, 창의력 기르지 못하는 교육 받는 것… 걱정돼
우리나라 대학, 학생 과제에 대한 피드백 부족
교육 개혁… 환경과 정책, 사회적인 공감대가 맞물려야
해외 대학의 좋은 제도, 우리도 받아들여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인재를 어떻게 기르고 있을까.

수많은 대학들이 ‘비판적‧창의적인 사고력’을 중심으로 가르친다고 외친다. 하지만 수업이나 시험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라고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있게 문제가 있다고 외친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 박사다. 이 박사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교육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교육학습개발센터에서 선임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치면서 올바른 대학 교육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다.

“좋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할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이혜정 박사. 그는 연구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서울대 최우등생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공부법을 들었다. 그런데 애초 연구의도와 달리 서울대 최우등생의 공부법은 예상을 빗나갔다. 

고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교수가 해준 말을 무비판적으로 외워서 답안지를 작성했다. 또 예습보다는 복습에 집중하는 등 획일적이고 수용적인 학습태도를 갖고 있었다. 결국, 비판적인 사고와 창의력이 없어야 좋은 성적을 받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그는 세계 각국 20여 곳의 명문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대학교육의 사례를 탐구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접목시킬지 치열하게 분석하고 연구했다. 또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공부문화 등 부끄러운 민낯을 파헤쳤다. 그의 땀과 열정이 스며있는 연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2일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혜정 박사를 만났다. 그는 대학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명하고 날카롭게 대답해줬다. 비록 그의 말이 아프고 따가울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대 정문 ⓒ 뉴시스

◆ 서울대 최우등생 만나 보니… “이렇게 공부해도 될까” 걱정돼

Q. 서울대에서 학점 4.0 이상의 최고 학점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 기자님도 학부 때 학점 잘 받으려고 노력했고 학점 스트레스가 있지 않았나. 서울대 학생이나 하버드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서울대 안에서도 공부를 잘 하는 그룹과 못 하는 그룹이 나눠진다. 사실 나는 학점이 낮은 아이들은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학점이 낮은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학점을 잘 받는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많이 하더라. 고학점을 받는 학생들의 특징을 찾아 학점이 낮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Q.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문제점을 찾으셨다. 그 내용을 토대로 책을 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데이터를 모은 것은 2009년 무렵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서울대에서 연구했다. 이후 2012년부터는 미시간 대학에서 데이터 모으고 연구를 시작했다. 논문들로 먼저 발표가 됐지만 책으로 새로 집필하는데 1년 정도가 걸렸다. 원래 썼던 것이 논문이라서 그런지 대중이 읽기 쉽도록 책으로 내는 작업이 참 어렵더라. 글을 생동감있게 쓸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 도와주셔서 매 챕터마다 에피소드 형태로 재미있게 나왔다.

더불어 대학 입시까지 창의적인 것을 요구하는 일이 무리라고 치더라도 이미 서울대에 들어온 아이들까지 창의력을 기르지 못하는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이 됐다. 또 학술논문은 대중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인 공감대가 이뤄지고 변화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쓰게 됐다.

Q. 국내 최고의 대학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런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책으로 내니까 “서울대에서 괜찮겠어요?”, “다시 서울대 못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라고 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웃음) 더욱이 서울대가 나의 모교이고 일을 했던 곳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한편으로는 책이 너무 도발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책이 서점에 나올 쯤에 학회 차 외국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한 일간지 기자가 전화해서 대뜸 “괜찮냐?”고 묻더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 국정감사에서 내 책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이 책을 들고 나와 서울대학교 교육을 비판했단다. 그래서 기자가 국정감사 이후 서울대로부터 압력이 없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던 것이다. 특별한 압력을 받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책을 꼼꼼히 읽어봤다는 서울대 교수들은 이 책이 서울대를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를 진정 아끼고 발전시키고 싶은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책을 읽으면 오해할 일이 없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더라. 안심이 됐다. 

Q. 2009년부터 준비해 이번에 책이 출간됐는데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 굉장히 떨렸다. 한편으로는 ‘서울대가 이렇다더라’라며 화제성으로만 그치고 교육에 대한 변화가 없을까봐 걱정됐다. 책의 절반이 문제제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꾸는 것에 대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런데 많은 언론들이 뒷부분보다는 앞부분만 자극적으로 다뤄서 안타까웠다. 단발성 화제로만 그치고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난 뭐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사실 학자로서 대중적인 책을 쓰는 건 우리 분야에서는 연구 실적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게 실적으로 인정된다. 이런 시간에 에너지를 써서 책을 쓴다는 것은 낭비인데도 이를 감수하고 대중적인 책을 낸 것은 이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데 시금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Q. 박사님의 연구와 책 내용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 서울대 안에 있는 <스누라이프>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일단 서울대 학생들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은 학점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학점을 잘 받는 학생들이 고작 이렇다니’라고 생각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 책에 대해 반대와 찬성 의견이 분분했다. 한편, EBS에서 <창의인재 실종보고서>라는 이 책과 관련된 기획보도 시리즈를 방송한 적이 있다. 그 방송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서울대 학생들이 수용적 학습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하더라.   

Q. 박사님이 만나본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은 어땠나

: 먼저 2학기 연속 4.0 이상 받은 2‧3학년 학생 150명 중 46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할수록 ‘학생들이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 ‘서울대가 학생들을 이렇게 평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일부 학생들만 이런 것인지 서울대 학생 대부분이 이런 것인지 조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문지를 돌렸는데 모두 1312명이 참여했다. 그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학점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 패턴이 달랐다. 학점이 낮은 아이들은 일정한 행동 패턴 때문에 학점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였다. 학점이 좋은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완전히 다 받아썼다. 인터뷰를 한 최고학점자들 중 87%가 선생님의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쓴다고 전했다. 손으로 필기를 하든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든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다는 것이다. 반면 키워드나 중요한 것만 썼을 때는 학점이 낮았다고 답했다.

인터뷰 중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시험 답안지를 쓸 때 너의 생각과 교수님의 생각이 달라. 그래서 A+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가 않아. 하지만 교수님의 생각보다 너의 생각이 더 좋을 경우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다. 그런데 학생 46명 중 41명이 자신의 생각을 버릴 것이라고 응답했다. 물론 교수의 의견과 최대한 똑같이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나 공부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반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기회가 없고 의지도 없는 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까 우리나라가 걱정이 됐다.

Q.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알면,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연구를 진행하셨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등 고학점을 가진 서울대 학생들의 생각과 공부법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 처음에는 높은 학점을 얻은 학생들의 부모는 그 자식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인터뷰 녹취록을 다 들어봤더니 ‘도대체 서울대는 학생들에게 무슨 능력을 기르게 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례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예습을 안 하고 복습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예습보다 복습을 하는지를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수강신청부터 수업시간 전후 모습 등을 자세히 얘기한 것을 나중에 정리하다 보니 복습만 한다는 응답이 일관되게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체에서 80% 넘는 아이들이 예습은 전혀 없이 복습만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를 기르고 있을 것이라고 간주되는 서울대에서 리더를 제대로 기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키는 일에는 매우 능하지만 자기 의견이 없고 견해를 꺼내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한테 꿈을 물으니 대체적으로 대기업 입사, 고시, 대학원 진학 3개 외에는 별로 없더라. 자기만의 콘텐츠가 없었으며 직업이 아닌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대학이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놓고 어떻게 길러내고 있는 건가’하는 책무감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 해외 대학 보며…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위기의식 느껴 

Q. 해외 유수의 학교들을 다니면서 많은 연구를 하셨다.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 대한 위기의식도 느꼈을 것 같다

: 그렇다. 해외에 나가 교육 혁신 모델이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2014년 4월경, 미국교육학회 차원에서 필라델피아 근교 흑인우범지역에 있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저소득층만 무상급식을 하는데 평균적으로 전체 학생 수의 10%정도 무상급식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 학교는 학생 60%가 무상급식을 받는다. 그만큼 가난한 아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더불어 흑인이 대부분이고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공부 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대학에 가면 뭐해. 돈도 많이 드는데….’라고 생각한다.

흑인우범지역 등에 가면 대부분의 흑인 아이들은 눈동자가 풀려있다. 뭔가 목적의식이 없고 주도적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학교 흑인 학생들은 눈이 굉장히 초롱초롱하고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눈빛이었다. 정말 아이들이 한결같이 다 그러더라. 복도를 지나가면서 교실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굉장히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마침 내가 견학 간 날이 봄방학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 풀어질만도 한데 전혀 그런 것 없이 재미있는 게임하듯, 수업에 매진했다. 더불어 이상했던 것이 참관자들을 5조로 나눠서 각기 다른 수업 6개씩을 참관했는데 강의형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끼리 이야기하거나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교장선생님께 외부에서 참관을 하러 와서 일부러 잘 된 수업만 보여주시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아니라고, 아무 교실에 들어가서 보라고 말씀하셨다. 또 왜 강의수업이 없는지 묻자 교장선생님이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에게 “얘들아, 우리 학교에 강의수업이 있었나?”라고 물었고 아이들은 “글쎄요. 몇 년 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갸우뚱거렸다. 

우리나라 수업 대부분이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 학교에 강의 수업이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본다. 밑바닥 학교에서 이렇게 되기까지 불과 6~7년밖에 안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희망이 있구나’라고 느꼈다.

Q. 서울대와 미시간대의 교육시스템을 비교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 미시간대는 서울대와 비교하기에 적절한 대학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대가 한국의 탑(top)이니까 미국의 하버드대와 비교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버드는 사립대학이고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서울대가 국립이고 미시간대학은 주립대이기 때문에 비교하기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미시간대는 공립학교 중 연구중심 대학이고 노벨상을 받은 인물을 7명 정도 배출한 괜찮은 곳이었다.

미시간대에서는 여러 교수들과 자주 교류를 했다. 그곳 교수들이 말하기를 미시간대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모든 과제에 피드백을 반 페이지 정도를 써준다더라. 한 학기에 5가지 정도의 과제를 내주는데 꼭 피드백을 주고 시험은 배운 지식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묻는 형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점수만 부여한다. 왜 이 성적을 받았고 어떤 부분을 잘했는지 피드백이 없다. 보통 학생들은 평가기준을 보면서 공부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승진기준과 평가기준에 따라서 일한다. 교수 역시 창의력이 결핍된 방식으로 가르쳐도 자신의 승진이나 실적에 아무 영향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친다. 결국 우리나라는 학생과 교수, 두 집단의 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제도와 환경, 정책, 사회적인 공감대가 맞물려 있어야 교육 개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Q. 대학교수는 자신의 축적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더불어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실정은 그렇지 않다. 대학교육을 개혁하기 앞서 교수들이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 내 책의 여러 소제목 중 하나가 <학부생들은 버려졌잖아요>다. 우리나라에서 학부생들은 버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일단 두 가지가 있는데 교수들이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는 환경이다. 오로지 교수들이 평가되는 것은 연구실적인데 연구실적과 상관없는 일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논문 쓰는 것 외에 대중적인 책을 쓰거나 학생의 과제에 꼼꼼히 피드백을 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낭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정말 신기했던 게 얼마 전 한 동료교수가 미국의 한 연구재단에 연구비를 받기 위해 서류를 쓰는데 거기에 보면 ‘당신은 자신의 지식을 퍼트리기 위해 무슨 행동을 자발적으로 했는지 써라’고 돼 있더라. 당연히 학교에서 강의하고 논문 쓰는 것은 자기가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닌, 해야 하는 의무를 한 것이므로 제외된다. 자기가 배우고 연구하고 축적된 지식을 사회에 퍼트리기 위해 의무가 아닌 활동을 뭘 했냐고 묻는 셈이다. 참 대단하지 않나. 이런 것들이 평가항목에 있으면 이를 위해서라도 교수들의 가르침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교수들이 자신의 "강의"가 효과 없음을 알아야 한다. 수업을 "강의식"만으로 진행하는 한 대학교육이 목표로 하는 학업성취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 수업 전에 배우고 오게 하고 수업 전에는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수업을 통해 그것을 말로 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 이혜정 작가 ⓒ 투데이신문

Q. 박사님 역시 서울대에서 12년 가량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박사님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궁금하다

: 나도 초임강사 시절에 그랬다. 12년 동안 강의했는데 처음 1~2년차에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것이 강의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멋지게 파워포인트로 설명하고 수업이 다 끝날 무렵에 “질문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 강의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강의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교수가 말한 것을 학생들은 절대 그대로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면 그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다만 학생과 교수가 다른 것은 정보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관점과 안목의 차이에 있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이겨보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거나 감동시키는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A+를 주겠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라고 했다. 단, 책이나 인터넷에 나올 법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 자체가 학생들한테는 도전이고 공부다. 책이나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했기에 온갖 자료를 다 뒤지더라. 질문거리를 찾기 위해 많은 자료를 보는 것이다. 특히 남학생들은 밤새 공부하더라. 나를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웃음) 질문을 찾는 과정이 공부인 셈이다. 설령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가져온다 해도 신기해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논의했다. 그런 수업들은 매 순간마다 감동이었다.

Q. 강의형 수업이 아닌 박사님이 말하는 소위 ‘생각을 꺼내는 수업’에 대한 강의평가가 어떤지도 궁금하다

: 논의를 치열하게 한 학생이 많을 경우 해당 학기 강의평가가 좋았다. 어떤 학생은 질문 만들어오라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대에는 소위 말해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무엇을 보면 사진 찍듯이 기억을 잘 하는 아이들 말이다. 하지만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갖는 게 어려워서 ‘교수 의견과 다른 자신만의 관점을 발굴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는 등의 평가를 하기도 했다. 반면 알에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고 극찬하는 경우도 있었다. (웃음)

Q. 좋은 강의평가를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가 박사과정일 때 임신한 상태로 다른 대학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시어머니께서 집안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면 되는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냐고 하셨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저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제가 살아있음을 느껴요!”라고.

Q. 그렇다면 다른 대학 교수에게 수업과 관련해 조언을 해준 경험도 있나

: 예전에 미시간대의 한 교수가 강의평가가 제대로 안 나와서 괴롭다고 내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미시간대에서 10년 넘게 강의했는데도 강의평가 점수가 5점 만점에 보통 3.5~3.6점이라고 했다. 미시간대 평균이 4.5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점수는 아니다. 그 교수가 어떤 식으로 수업하는지 보고 난 후 나는 “교수님은 너무 준비를 잘 한다. 준비를 덜 해보라. 교수님이 가르치는 것을 좀 빼라. 대신 학생들에게 무얼 경험하게 할 것이고 생각하게 할지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이후 그는 내 조언대로 수업을 바꿨다.

얼마 전 그 교수를 만났는데 이번 학기 강의평가 점수가 4.97점이 나왔다며 엄청 좋아하더라. 내 말을 듣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전에는 자신이 프레젠테이션을 얼마나 유창하게 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학생들이 뭘 배우는지가 아닌 자신이 가르칠 내용만 준비하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내가 ‘말을 줄여라’, ‘너무 많이 가르치신다’,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생각해보라’, ‘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하는 등 조언하는 것을 듣고 생각을 달리 하니 강의가 정말 개선되는 걸 경험했다고 했다.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느낌이었다고 하더라. 

어쨌든 대학 교육 환경과 제도도 바뀌어야겠지만 교수들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많은 교수들이 강의실에서 자신이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이 무엇을 질문했을 때 답을 못하면 매우 당혹스러워 한다. 그래서 자신이 답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며 학생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을 그 즉시 못하면 ‘자네는 아직 공부를 덜 해서 그렇네’라고 학생에게 핀잔을 주거나 더 공부하고 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처음에 그랬다. ‘학생들이 내가 답변하지 못하는 질문을 하면 어떡하지?’라고 두려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가 모든 정보를 완전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 이혜정 작가 ⓒ 투데이신문

◆ 대학 차원에서 교육 커리큘럼 바꿔야 한다

Q. 그렇다면 교수들도 수업을 위해 다른 클리닉이나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 강의에도 닥터와 클리닉이 필요하다는 것을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 대학’을 보면서 느꼈다. 브리티시콜롬비아 대학에 교수의 강의를 지속적으로 개선시켜주는 경력이 10~15년 정도 된 박사급 강의클리닉 닥터가 7명이 있다. 강의클리닉 닥터 1명이 한 교수의 강의를 1학기씩 총 5년 간 컨설팅한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교수는 닥터와 한 학기 내내 자신의 수업에 대해 토론한다. 닥터는 강의계획서를 보면서 ‘이 시험의 목적은 뭐냐’, ‘학습목표와 얼마나 연결이 되냐’, ‘비판적 사고를 기른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어떤 학습 활동을 설계했나’ 등을 교수에게 묻는다. 그렇게 한 학기를 밀착해서 클리닉을 하는 것을 5년 간 지속하면 개조가 된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강의클리닉 닥터가 거의 없다. 정말 부러웠다.

Q. 대학 당국에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다

: 대학 차원에서 총장이나 집행부가 교육 커리큘럼 평가체제를 바꿔야 한다. 한 예로 홍콩중문대는 학생들의 입학년도와 졸업년도를 비교해 의사소통 기술, 창의력, 비판력 등이 떨어졌다는 응답이 많이 나온 단과대에는 예산을 줄인다. 그래서 단과대들은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우리나라에는 홍콩중문대와 같은 환경이나 제도가 없는데 이러한 환경을 대학 차원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또 학생들이 무슨 능력을 기를지, 뭘 배울지를 생각해서 커리큘럼을 설계했으면 좋겠다. 모든 대학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선언한다. 명문대학 홈페이지만 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들에게 학점을 낮게 주고 오히려 교수 말의 범위를 한 치도 넘어서지 않는 아이들에게 좋은 학점을 준다. 대학 측은 교수가 어떤 종류의 아이들에게 A+를 주고 있고 어떤 종류의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지 파악하면서 커리큘럼을 개혁해야 한다.

홍콩중문대는 학생들이 얼마나 배웠는지 시험만 보는 게 아니라 느낀 게 무엇인지 계속 물어본다. 1학년 때 물어보고 졸업할 때 물어보고 졸업한 지 1년 뒤, 5년 뒤에 물어본다. 창의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묻는다. 만약 한 학생이 1학년 때와 달리 4학년 때 창의성이 떨어졌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데이터 결과가 나오면 대학은 이를 토대로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근거가 없으면 논의거리가 없지 않나. 그런 시스템이 우리나라 대학에도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그렇다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성인의 경우, 스스로 비판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일단 무엇이든 비판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기사나 글을 읽을 때에도 내 생각이 뭔지 알아야 한다. 결국 글로든, 말로든, 그림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내 생각을 끄집어내서 표현해야 하고 드러내야 한다. 마치 근육을 키우듯 비판적 사고력도 계속 훈련을 통해 길러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 훈련을 독려하고 인정해 줘야 한다. 

   
 

Q. 한편 암기식 수업도 필요하다, 의대는 다르다고 말하는 등 박사님의 교육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정보와 개념 암기나 습득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 만으로 끝나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식을 습득한 후 자기만의 시각으로 다시 봐야 하는데 우리 대학교육에는 그런 기회가 없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질 엄두를 못 내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 내용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책을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Q. 교육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 내 주변에 교육학 박사들이 많다. 그들이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얼마나 잘 알겠나. 그런데 나와 친분있는 교육학박사 자녀들을 보면 대한민국 공교육을 다니고 있는 아이가 아무도 없더라. 조기 유학을 가거나 국제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 검정고시를 하거나 무언가 다른 걸 한다. 정말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돈 많은 사람들도 아니다. 물론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유가 없음에도 대한민국 공교육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들에게 물어 보니 한결같이 하는 말이 “한국 공교육을 탈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해서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교육과 관련돼서 이야기하면 많은 정책결정자들이 “중요하죠”, “필요하죠” 라며 공감은 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대개 사교육도 사회 비즈니스니까 이권과 맞물려 있어서 그 생태계를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항상 우선순위에서, 예산배정 순위에서, 교육개혁은 밀린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Q. 우리나라 학부모나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우리나라는 학력에 대한 로망이 굉장히 큰 편에 속한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자녀에게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으면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았으면 한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잡아보자. 학생들은 20대에 대학 가서 이후 6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생에서 굴곡이 있겠지만 앞으로 60년 동안 할 것, 자신만의 콘텐츠를 발견하는 역량을 기르기를 바란다.

Q. 앞으로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 우리나라는 100m를 몇 초에 뛰는지, 얼마나 빨리 뛰는지만 본다. 그런데 역사는 100m를 빨리 뛰는 사람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곳을 뛰어가야 하는지, 날아가야 하는지, 헤엄쳐 가야 하는지를 발굴하고 찾아내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와 장이 열렸다. 출발점과 도착점을 정해 놓고 완벽하게 뛰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의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한 지는 30년 밖에 안 걸렸다. 30년 전만 해도 필리핀을 부러워하던 나라였다. 리더가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답보, 정체 상태라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인재들을 정지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를 벗어나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경제 발전을 시켰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이다. 교육이 달라진다면 사회의 막힌 하수구를 뚫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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