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정몽구 회장 / 우 정의선 부회장

합병·주식맞교환 대신 ‘지분 매각’…빗나간 시나리오
지분 매각, 결국 정 부회장 ‘경영권 승계’ 위함인가
당분간 재매각 어려워…결국 남은 것은 ‘합병?’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현대글로비스의 지분매각이 무산되면서 향후 현대차그룹이 또 어떤 시나리오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게 될 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려고 한 것은 눈앞으로 다가온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대비하고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를 개편해 정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함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글로비스의 매각이 불발되면서 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고, 향후 정 회장과 정 부회장 부자가 어떤 식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할 지에 대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매각 이유, ‘일감몰아주기’ 피하기?

지난 12일 오후 정 회장 부자는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형태로 현대글로비스 주식 502만2170주(13.39%)를 매각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정 회장 부자는 씨티그룹을 통해 기관투자가들에게 블록딜 형태로 12일 주식 502만주를 팔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당 거래는 정 회장 11.51%(431만7000주)와 정 부회장 31.88%(1195만4460주)의 현대글로비스 총 지분 43.39%(1627만1460주)에서 정 회장은 4.8%인 180만주, 정 부회장은 8.59%인 322만2170만주로 전일 종가보다 7.5~12% 낮은 주당 26만4000~27만7500원이었다.

그러나 결국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주식가가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매 물량이 너무 많아 지분 매각 실패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에 나선 이유로는 세 가지 정도가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정 회장 부자가 오는 2월부터 시작되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정리하려고 했다는 것.

현재 정 회장 부자는 현대글로비스의 약 4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시행되는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총수 또는 특수관계인이 상장 계열사 지분율 30% 이상 또는 비상장 계열사 지분 20%를 보유한 상태에서 부당한 거래로 이득을 얻었을 경우 매출액의 최대 5%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에 정 회장 부자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지분을 30% 아래로 낮추기 위해 매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이유, ‘경영권 승계’ 때문?

두 번째 이유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이, 세 번째 이유로는 지배구조 개편에서 더 나아가 정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현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 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볼 때 현대차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은 현대모비스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만큼 그룹 내에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후 지주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필요하지만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보유하기 위해 그가 31.8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가 합병하는 시나리오와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과 맞바꾸는 시나리오 두 가지가 예상됐다.

그 중에서도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맞교환 방법이 더 유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 이유는 1월 12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을 맞교환 할 시 대규모 신주발행에 따른 주가희석 효과로 인해 정 부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은 14.76%, 합병 시 정 부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은 10.4%로 예측되면서 정 부회장이 보다 더 높은 지분율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주식 맞교환이 이득이라고 점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을 빗나가고 정 회장 부자가 맞교환이나 합병이 아닌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매각에 나섰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정 회장 부자조차 내다파는 현대글로비스 주식이 탐날 만한 가치를 가진 주식이 아니라는 인식이 들어 해당 주식을 사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매각 무산’…정 회장 부자 향후 계획은?

정 회장 부자의 매각 무산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사들은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결국 이는 맞아 떨어졌다.

지분 매각이 무산된 13일,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급락하며 하한가로 마감했다. 이에 반해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11.55%가 상승했으며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가진 기아차는 2.26%가, 현대제철은 1.47%가 올랐다.

이번 정 회장 부자의 지분 매각 추진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서 향후 핵심역할을 할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이 파악되면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엇갈리게 된 것.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실패하면서 당분간 재매각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이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합병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시총이 현대모비스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성공적인 합병을 위해서는 현대글로비스의 주식가치를 높여 시가총액도 두 배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합병을 위해서는 현재 유지되고 있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9%을 해소하지 않으면 합병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 금지 규정으로 인해 추가 투자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렇듯 정 회장 부자는 지분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 바라던 것과는 다르게 연출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또 다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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