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 실체 논란 놓고 헌재와 다른 판결, 그 파장은

   
 

이석기, 내란선동은 유죄...내란음모는 무죄
RO 조직 실체 놓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충돌

헌재와 대법원의 다른 판단, 결국 개헌 빌미 제공
통진당 세력에게 정치적 기회 줘...4월 재보선 들썩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를 판결했다. 아울러 내란선동은 유죄를 내렸다. 문제는 재판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RO의 실체에 대해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RO 존재 유무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법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정치권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1년 5개월 만에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이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등 피고인 7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 전 의원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되지만 내란음모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폭동의 대상과 목표에 대한 합의,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피고인들이 내란을 사전 모의하거나 준비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부족했다고 판시했다.

이에 이 전 의원은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이 확정됐다. 아울러 이 전 의원과 함께 기소된 이상호, 홍순석, 한동근, 조양원, 김홍열, 김근래 피고인 등 옛 통진당 핵심 당원들에게도 원심처럼 징역 3∼5년과 자격정지 2∼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내란음모죄에 대한 법리를 구체적으로 내놓은 사실상 첫 대법원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만하다. 1심 법원에서는 RO모임의 실체를 인정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RO모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석기 재판의 의미

이는 헌법재판소와는 상반된 견해이다. 헌법재판소는 RO를 사실상 폭력혁명 모임으로 인정했고, 이것은 통합진보당 해산 근거가 됐다. 그런데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고 RO모임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대법원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형사사건으로 다뤘기 때문에 상당수 증거 자료는 구체적이지 않으면 채택되지 않는다. 가급적 억울한 죄가 없어야 한다는 법 정신 때문이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형사사건을 다루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증거 자료를 고려한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RO모임 실체를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은 반면 헌법재판소는 인정했다는 점에서 사법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의 판결은 헌재의 판결 정당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헌재의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 대법원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사법계는 대법원파와 헌재파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옳았느냐 아니냐를 놓고 진영 대결이 예상된다. 보수층에서는 헌재의 논리를 근거로, 진보층에서는 대법원의 논리를 근거로 삼아 상대에 대해 공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화될 것이다. 차라리 헌재와 대법원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면 어느 한쪽이 수긍할 것인데 이제 어느 한쪽도 수긍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으로 내닫게 됐다.

기사회생 통진당

이번 판결로 통합진보당 세력은 기사회생한 상황이다. 일단 대법원이 통진당 해산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RO모임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통진당 전직 의원들은 통진당 해산이라는 헌재 결정이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행정소송에 대법원 판결은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통진당 해산 이후 제기되는 검찰의 후속 수사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통진당과 연관된 많은 사람들을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현재 수사에 착수한 상태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이들에 대한 후속 수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야당에서는 종북몰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새정치연합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이번 판결은 박근혜정부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적인 ‘종북’ 공안몰이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사법적 대결

뿐만 아니라 대법원의 판결은 고사직전의 진보진영을 기사회생시켜줬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해 과도한 종북몰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진보 진영은 위축됐다. 이런 위축된 진보 진영은 결국 국민모임 신당을 창당하는 등 모색을 꾀어왔다. 하지만 종북세력과 연결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진보진영의 활동이 위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진보 진영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통진당 세력의 활동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4월 재보선 출마이다. 통진당 세력은 헌재에 의해 억울하게 해산됐다면서 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선 가능성은 다른 정당에 비해 낮다. 하지만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지 못하면 결국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4월 재보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 헌재의 판결은 결국 개헌으로도 연결된다. 같은 사안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의 판결이 다르게 나왔다는 것은 사법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문제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나 존재 근거는 ‘헌법’에 있다. 즉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건드려야 한다. 이는 정치권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는 개헌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국 당청관계와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는 개헌에 대한 공감을 갖고 있지만 개헌을 할 시기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개헌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면 결국 당청관계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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