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애화학교 학생들의 연탄봉사 현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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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애화학교 “청각장애 있지만… 남 도울 수 있어 기뻐”
연탄수혜자 “쌓인 연탄 보니 마음이 부자된 듯… 연탄선물 고마워”
연탄나눔, 뿌듯함과 협동심 기를 수 있어
연탄 수혜자, 독거노인 등 주로 소외계층
300장 정도면 한 달 반 동안… 추운 겨울도 ‘거뜬’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연탄구멍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

평소 조용하던 서울 삼양동주민센터 입구가 시끌벅적해졌다. 어린 학생들이 연탄봉사를 위해 뭉쳤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오후 2시,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애화학교 학생 20명이 연탄봉사를 위해 밖으로 나섰다. 연탄봉사는 (사)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이날 주민센터 앞에서는 사랑의연탄나눔운동 관계자가 연탄봉사에 앞서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 옆에는 아이들을 향해 수화로 설명하는 서울애화학교 교사도 함께 있었다. 이 관계자는 먼저 연탄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구멍은 몇 개인지 등 가벼운 퀴즈로 분위기를 풀었다. 아이들은 손을 들며 먼저 맞히겠다고 아우성쳤다.

가격 600원, 무게 3.6kg, 구멍 22개, 높이 20cm, 지름 15cm….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윽고 봉사에 앞서 본격적인 사전 설명이 시작되자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하게 변했다. 이날 옮길 연탄 수는 세 가정에 300장씩으로 총 900장이고 미아동 일대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된다. 아이들은 각자 토시를 착용하고 앞치마를 둘렀다. 한 아이가 기자를 향해 앞치마 뒤에 있는 끈을 묶어달라며 등을 내밀었다. 카메라와 수첩을 내려놓고 아이의 끈을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줬다. 주위를 둘러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앞치마를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친구의 끈을 묶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목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토시를 착용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신난다며 마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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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비탈길 오르고… 검댕이 묻어도 ‘웃으며 즐겁게’

첫 번째 가정집은 가파르고 구부러진 비탈길 위에 있었다. 5분 정도를 걸어 가파른 곳에 있는 한 허름한 가정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웃으며 아이들을 반겼다.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랑의연탄나눔운동 이동섭 상임이사 역시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인사했다.

이동섭 이사는 봉사에 앞서 아이들을 향해 지그재그로 서라고 말했다. 일자로 서지 않고 지그재그로 서는 까닭을 묻자, 그는 일자로 서서 연탄을 옮길 경우 허리를 많이 쓰게 돼 무리가 간다고 했다. 지그재그로 서야만 연탄을 주고받기가 쉽고 팔만 움직이게 되므로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했다.

연탄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한 사람이 연탄의 양 옆구리를 잡아서 전하면 다음 아이는 위‧아래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연탄을 놓치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신당부를 들은 아이들의 “네”라는 소리가 골목길에 퍼진 후 연탄 봉사가 시작됐다. 수화를 하던 손이 연탄을 옮기는 손으로 바뀌는 뜨거운 순간이었다.

봉사를 시작한 지 3분 정도 흘렀을까. 최종적으로 연탄을 받아 창고에 쌓던 이동섭 이사와 한 교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잠깐!”이라고 외쳤고 아이들은 일제히 손을 멈췄다. 연탄 운반을 멈춘 이유는 연탄의 위‧아래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움푹 팬 곳이 연탄의 윗부분인데 아이들이 옮기는 도중 아래를 위로 바꾼 것이다. 팬 부분이 위로 가게 해서 옮겨야 수혜자가 연탄을 땔 때 불편하지 않단다.

연탄 운반을 재개한 지 10분 만에 또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창고에서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달려가서 살펴보니 연탄창고 바닥 한 쪽이 여러 돌들 때문에 울퉁불퉁해져서 이를 고르게 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으면 연탄더미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었다.

그로부터 5분 뒤 다시 연탄 운반은 이어졌다. 아이들은 “보라야, 집중해라”, “잘 하고 있어”라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고 “너무 빨라, 떨어질 수 있으니까 천천히 해”라며 운반 속도를 조절하는 등 늠름함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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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을 옮기던 한 학생이 사랑의연탄나눔운동 관계자를 향해 “연탄에 구멍이 왜 있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한쪽 눈을 찡그린 채 구멍 사이를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구멍이 있어야 연탄이 불에 활활 잘 탄단다”라고 설명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모두가 목장갑을 끼고 있는데 유독 혼자서만 핑크색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남학생이 있었다. 다가가 이유를 물으니 신의진(16)군은 “엄마가 고무장갑이 미끄러지지 않고 좋다고 해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신 군은 “전혀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며 “어차피 집에만 있으면 게임만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30여 분이 지나고 첫 가정의 연탄 운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에 묻은 검댕이를 보면서 낄낄거렸다. 시간이 부족해 곧바로 다음 가정집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 방문한 가정은 가파른 길은 아니었지만 골목길에 있었기 때문에 연탄을 직접 들고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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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사는 아이들을 향해 “괜찮다고 하지 말고 약한 사람은 1장, 강한 사람은 2장 들어라”라고 했다. 연탄을 두 장씩 품은 아이들이 좁디좁은 골목길을 누볐다. 손이 많으니 연탄 운반이 순조롭게 이뤄졌고 덕분에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연탄을 보니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며 수혜자 강모(70)씨는 기뻐했다. 인사를 하고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강 씨는 “마음이 서글퍼지니까 말이 안 나온다”며 “좋은 일 많이 하고 아이들이 나중에 꼭 성공하길 바란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마지막 가정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인형뽑기 기계와 시원한 음료수, 아이스크림이 기자와 아이들을 유혹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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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애화학교 학생들, 연탄봉사 5년째 이어와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애화학교 학생들은 연탄봉사를 2009년부터 지금까지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는 한 학생당 2만 원을 기부해 연탄을 구매하고 배달까지 나섰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관계자 김희진 씨는 “처음에는 아이들이라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됐는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연탄을 정성스럽게 나르고 소중하게 다룬다”며 “워낙 야무지게 잘 하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한다”고 전했다.

봉사에 동참한 서울애화학교 담임교사 임동규(60)씨는 “아이들이 청각 장애인이다 보니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이 봉사를 통해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봉사를 같이 하니까 협동심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며 “아이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청각장애로 인해 말하기가 어렵다며 휴대전화에 글을 적어온 김진호(20)군은 “학창시절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며 “연탄봉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인데 부족하지만 남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후 5시, 드디어 마지막 가정의 연탄봉사가 끝났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쳤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관계자가 아이들을 향해 “힘들었어요?”라고 묻자 “재미있었어요”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오늘 여러분들이 드린 연탄으로 어르신들은 한 달 반 동안 따뜻하게 지내시게 된다”며 “그 분들이 항상 건강하고 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연탄모양의 귀여운 휴대전화 고리도 선물로 나눠주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고리를 받아든 한 아이가 멀리서 손을 번쩍 들며 이렇게 외쳤다. “졸업하고 나서 또 올게요!”

안도현 시인은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날 만났던 스무 장의 어린 연탄들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우리나라 연탄 사용가구, 20여만 세대… 소외계층의 벗”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가정 80% 가량이 연탄을 주된 난방연료로 사용했지만 1989년부터 석유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 사용가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연탄사용가구가 전체 가구 중 1%에 해당하는 20여만 세대다. 연탄 수혜를 받는 가정은 주로 차상위‧저소득층,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이며 이중 노인가구는 약 77.8%를 차지한다. 이처럼 연탄은 오랫동안 소외계층의 벗이 되고 있다.

연탄나눔봉사단체 중 하나인 (사)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은 2004년에 설립해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연탄 나눔의 매개체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연탄나눔 봉사는 10월에서 2월 사이에 이뤄지며 주로 일반기업이나 종교단체, 동호회 등이 참여한다. 5년 이상 주기적으로 봉사하는 단체가 30~40%를 차지한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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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연탄나눔운동은 연탄봉사 연계사업 외에도 저소득층 가구에 연탄보일러를 설치해주는 집수리 사업을 실시하고 노인정에서 작은 영화상영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을 통해 연간 500여 기업과 단체 그리고 평균 4만 여명의 일반인들이 연탄봉사에 참여한다. 해마다 공공기관을 비롯해 기업, 학교 등 수많은 단체들이 이곳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

연탄봉사는 색다른 교육 현장이 되기 때문에 초·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들이 몰린다. 또한 최근 기업들이 팀워크를 다지고 협동심을 높이고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연탄재를 서로의 얼굴에 묻히며 의미있는 추억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셈이다. 수혜자에게는 생존 수단이면서 주는 이들은 보람과 뿌듯함을 얻게 되는 연탄봉사,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얼굴이 까매져도 걱정마시라. 마음은 그 누구보다 뽀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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