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사람들은 이렇습니다. 부모가 애써 농사를 짓는데도 그 자식들은 농사의 어려움을 모르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상스런 말을 하며 헛된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모를 업신여겨 ‘옛날 사람들은 들은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위정자는 우선 ‘농사의 어려움’이나 ‘백성의 고단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나라를 ‘안일함이 없이’ 운영할 수 있다. 저 말은 중국 고대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서경(書經)』의 「무일(無逸)」편에 나온다. 상공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옛날엔 농업이 백성의 생사를 결정하는 일이었으므로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많은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맥락으로 읽으면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저 말에서 ‘농사’와 『서경』이라는 책 이름을 빼고 읽으면 현재 연배가 높은 어른이나 선배가 나한테 하는 말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어른 또는 선배로, 자식은 ‘젊은 세대’나 후배로 바꿔서 읽으면 옛 사람이나 옛 사람을 고리타분하다고 비웃는 현대인이나 젊은 사람을 보는 시각은 항상 아래로 고정되어 있으며, 그들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른이 젊은 사람한테 해주는 말을 엄밀히 따져 보면 ‘틀린 소리’는 없다. ‘열심히 노력해라’, ‘꿈을 가져라’, ‘윗사람을 대우하라’는 가르침이나 충고를 두고 듣기 싫다며 무시해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이제부터 저런 ‘틀리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어른과 젊은이는 분명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어른은 자신이 살았던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있으므로 그 말이 ‘틀리지 않는 소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맞는 소리’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어른들은 항상 ‘우리 젊었을 땐 안 그랬어. 요즘 아이들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네’, ‘요즘 아이들은 고생을 몰라. 그러니 조금만 힘들어도 일을 하지 않아’, ‘너희들은 세상을 몰라. 나이 먹어봐. 지금 했던 말 다 후회할거야. 두고 봐’라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일을 판단하는 기준을 모두 자신이 경험한 과거에 두고 있다. 이래놓고 어른들은 ‘발전’을 말하고 ‘진보’를 언급한다. 그들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래의 발전이나 진보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을 젊은 세대한테 주입하려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의 빠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젊은이들한테 한 가지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지니는 게 자신이나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 그들 역시 이미 세상을 떠난 옛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요즘 아이’들일 뿐이다. 어른들의 나이든 경험이든 그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면 존경의 대상이 되지만, 입 밖으로 꺼내서 젊은이들한테 ‘우리 때는 말이지’하는 그 순간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산업화 시대를 경험한 일부의 어른들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모두 자신들이 고생했기 때문인데 젊은 세대들은 그걸 모르고 어른을 무시한다며 한숨을 쉰다. ‘틀리지 않는 소리’다. 그런데 그 어른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뱉으면서 이미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으므로 우선 그 자세부터 틀렸다. 아래 위를 구분해 놓고 ‘쟤들은 모른다’는 걸 부지불식간에 전제를 하고 있으니 자신이 무시를 당하는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 오로지 과거를 기준으로 본 현재의 모습만 갖고 젊은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으면서 그 잘못을 모르는 게 더 큰 문제다.

자기 나름대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목숨을 걸고 불의에 저항하여 사회 분위기를 이만큼이나마 만들어 놨는데, 요즘 젊은 아이들은 불의에 저항할 줄 모르고 순응만 한다며 탄식을 한다. 탄식으로도 충분한데 대놓고 젊은이한테 호통을 친다. 꼭 상스러운 욕을 하며 몽둥이를 들고 때려야 폭력이 아니다. 그런 호통은 폭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것으로도 모자라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따따부따 잔소리를 하면서 ‘나는 떳떳하다’며 도로 큰소리를 친다.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수구와 자신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으니 울컥하는 마음이 일어날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만 똑같다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날 가능성도 없고,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며, 취직할 곳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옛날이 오히려 살기 좋았다. 우리한테 호통 치지 마라.” 옛날을 살아보지 않고 하는 말이므로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판단하는 것은 괜찮고, 현재를 가지고 과거를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인가? 게다가 젊은이의 생각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다.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라. ‘그 때도 힘들었다’고 하면서 물을 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른들의 탄식이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젊은이들한테 싸우라고 강요하며 소리를 지를 시간에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 낫다. 그 옛날의 성과를 깎아 먹은 건 어른들이지 태어나서 살아온 게 전부인 젊은이가 아니다. 다 깎아 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앞으로 젊은이들의 고혈을 직간접적으로 빨아 먹고 살아갈 것이면서 어딜 감히 젊은이들한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가. 현재 이 사회가 이토록 각박해진 건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꾸준히 진행되어 온 결과다. 이 모양은 젊은이가 만든 게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그 책임을 젊은이들한테 전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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