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나는 90학번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땐 속된 말로 ‘학번이 깡패’라는 말이 공공연히 인정되었다. 재수를 했든 삼수를 했든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하면 ‘말을 까야’했고, 나이 어린 선배한테는 말을 높여야 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학교의 선후배 관계는 대체로 저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수한 동기한테 ‘형’이라고 불렀다가 선배한테 한 소리 들었던 적도 있다. 결국 지금은 그 동기와 ‘말을 까고’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한 살이 많은 것도 많은 것이고, 같은 생활이라 할지라도 먼저 경험한 사람이 있으므로 선후배의 자리가 정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같은 시절에 비슷한 일을 겪으며 사는 처지에 과연 군대와 비슷할 정도의 엄격한 관계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선배로 존경을 받으려면 나이와 경험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인품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주변을 돌아보면 형편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겨우 한두 살 많은 선배가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한 대 쳐 버리고 싶기도 했다. 거기에 군대에서 제대한 ‘예비역’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군에 다녀온 걸 벼슬처럼 여기며 후배들 위에 군림했다. 이들은 불과 몇 년 전을 ‘옛날’이라 하면서 군대에서 배운 ‘집합’을 대학에서 그대로 써먹었다. 그러고는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러했다. 집합을 시켰고, 때려보기도 했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 그들의 용서를 바랄 뿐이다.

학번으로 따지면 80년대와 90년대의 사람들이 (분명히 학교 분위기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학번을 빙자하여 후배들 위에 군림했다. 그 이상의 학번들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권위의식은 훨씬 심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여하튼 이들은 어느덧 우리사회에서 ‘기성세대’라고 불리게 됐다. ‘기성세대(旣成世代)’는 ‘이미 완성된 세대’라는 뜻이다. 이 말의 뜻을 철저히 이해했기 때문인지 이들은 더 이상 변하려 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런 태도는 이른바 ‘진보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한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여전히 ‘줄빠따’ 질을 했던 그 옛날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추억’으로 미화한다. 선배는 엄해야 한다고 믿는다. 후배는 무조건 선배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 와중에 후배가 느끼는 피곤함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 또는 경험’으로 포장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의 ‘개인적인’ 성향을 그 모습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기적’이라고 매도한다. 후배와 소통하겠다고 나섰으면서 ‘그래, 네 말 잘 들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네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고 한다. 세상이 변해서 예전처럼 폭력적으로 굴었다가는 손가락질을 당할 테니 차마 예전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내리꽂는 태도에는 일말의 변함도 없다.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나 실수는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런데 여전히 잘못과 실수에 대한 책임을 후배한테 전가하며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절은 상호 간의 배려이지 누가 누구한테 일방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 먼저 인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군대에서나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을 사회에 적용시키고 있으면서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충고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먼저 태어나서 겨우 책 몇 권 더 읽고, 몇 가지 일을 경험했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자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남겼다. ‘후배들을 두려워 할만하다’는 뜻이다. 늦게 태어났어도 언제든 나를 뛰어넘을 수 있으니 당연히 두려워해야 한다. ‘기성’에 머물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신(日新)’해도 모자랄 판이다. 몸에 배어버린 악습부터 버려야 하겠다. 그 알량한 학번부터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상명하복식의 문화 속에서 배운 권위의식부터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겠다. 학번은 입학연도를 나타내는 숫자 이상의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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