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굴의 시대> 저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한국학전공 교수

   
▲ 박노자 교수 ⓒ 투데이신문

<비굴의 시대>, 한국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비판 담아
우리 모두 타인의 고통에 관심 갖고 연대해야

일베 세월호 폭식투쟁, ‘폐륜’ 행위
단기 이익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

”다수가 부를 공평하고 균등하게 나눠가져야”
박 대통령, 군주처럼 국민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한국인보다 한국 사회를 더욱 잘 아는 사람이 있다.

바로 ‘푸른 눈의 진보 논객’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한국학전공 박노자(42) 교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이름이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였지만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 뒤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와 스승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라 이름을 ‘박노자’로 바꿨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헤치며 진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진보주의 성향 때문에 종종 보수 진영에게 공격 받지만 합리적인 비판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또한 <당신들의 대한민국>,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등 평소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비판하고 역사학자로서 탈민족주의적 눈으로 한반도 역사를 새롭게 바라봤다.

이런 그가 최근 <비굴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겨레신문>의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박 교수는 사회적인 연대의식이 증발한 세상, 자기의 잇속만 추구하고 타인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책에 고스란히 투영시켰다. 더불어 신자유화된 사회를 비롯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학계, 파시즘화된 정부 등에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쏟고 연대하고 투쟁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더러운 세상을 고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희망이 싹틀 것이라며 우리에게 속삭인다.

박노자 교수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와 해결책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노르웨이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직접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 3일 스카이프를 통해 국내최초(?)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과 노르웨이의 시차는 8시간. 기자는 회사사무실에서 오후 9시에, 박 교수는 교수연구실에서 현지시간 오후 1시경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달랐지만 인터뷰의 생생함은 면대면 인터뷰와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바로 옆에 있는 것 같네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컴퓨터 스피커로 전해진 그의 한국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날카로운 비판. 시공간을 뚫고 마음 속에 와닿는 시간이었다.

   
▲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와 이주희 기자(하단) ⓒ 투데이신문

◆ 노동조건 열악한 한국… 성과 위주의 부당한 노동 강요받아

Q. 최근 <비굴의 시대>라는 책을 내셨고 얼마 전 독자와의 대화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근황이 어떻게 되시나요.
: 저는 교육 하급공무원으로 살고 있습니다만 (웃음). 공무원 노동자의 삶은 단순하고 단조롭습니다. 현재는 개강 초라서 수업을 준비하고 논문과 책을 쓰면서 살고 있죠. 가끔 다른 대학에 가서 특강을 하기도 하는데요. 특별할 것 없이 단조롭습니다.

Q. 박노자 교수님께서는 사회의 모순을 깊이 파고들며 한국인보다 더 날카롭게 한국을 비판하는 진보 논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 글쎄요. 때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죠. 사실 ‘진보’라고 한다면 그 사회 속에 살면서 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근무처, 그러니까 일터가 밖(해외)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받거나 읽고 소통한다 해도 상당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진보의 길을 제대로 모색하려면 국내에 있으면서 매일 정보를 접하거나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먼저 <비굴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특별한 계기는 없고요 (웃음). ‘박노자의 글방’이라는 인터넷 블로그를 한겨레 신문사에서 개설해주셨는데요. 그 블로그에 글을 쓰던 중 한겨레 신문사 측에서 ‘책으로 한번 엮어보자’고 제안해 출간하게 됐습니다.

Q. 교수님은 책이나 칼럼, 강연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 미안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웃음). 저는 한국 동료보다 어찌 보면 편히 사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대학교육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엄청 악화됐습니다. 특히 젊은 교원들은 학술논문 생산 압박이 엄청 나죠. 또 그들은 영어로 강의하라는 등의 요구를 계속 들어야 합니다. 한국 대학교육노동자 중에서 전임직 교육 노동자는 5만 여명 정도가 되고요. 그 외 6만 여명의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아주 열악한 편입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느낌이 들어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Q.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호의호식’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노르웨이의 경우 아직까지 전후 사민주의(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경제적으로는 노동조합을 통해 합법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나 운동)사회의 특징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민주의사회로서의 특징이 약간 남아있어서 한국 사회보다 훨씬 덜 잔혹합니다. 예를 들면 근무 환경이 안정됐다든가, 아직까지 사람을 쥐어짜는 기술은 한국에 비해 뒤지고 있을 겁니다 (웃음).

예를 들어 한국의 시공무원의 경우 ‘저(低)성과 공무원’이라는 게 있죠. 성과가 좀 없다고 하면 이름을 발표하고 재교육을 보내잖아요. 노르웨이에서는 체질에 안 맞거나 가사일로 바빠서 성과를 덜 낸 공무원을 차별하면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면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근무했다면 몇 년 못 버티고 죽었을 것 같아요. 한국은 노동강도가 너무 높아요. 만약 제가 한국에 갔다면 학술 노동만 하는 부자연스러운 선택을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둬서 자신을 괴롭힌다든가 아니면 모든 것을 하다가 과로사 당했을 듯합니다 (웃음). 제가 한국인 동료교수의 입장이 됐다면 오래 못 버텼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합니다. 공식 통계만 봐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1년에 2100시간이고 노르웨이는 1400시간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길죠.

   
▲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와 이주희 기자(하단) ⓒ 투데이신문

◆ 이 시대는 건전한 인간성이 둔감한 ‘더러운 시대’

Q. 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한 명이 “더럽고 치사한 나라 살기 싫어 죽으려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기자님도 의사한테 가봐서 아시겠지만 병명을 모르면 처방을 못합니다. 병명을 알려면 진단을 해야 하죠.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검사를 실시해야 하잖아요.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이 병리적인 사회라는 건 확실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유일하게 성장하지 않습니까. 다른 것은 별로 성장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사교육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요. 이처럼 병리적인 사회가 맞는데 그럼 정확한 병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더럽다는 것은 건전한 인간성이 둔감하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도리에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 없는 게 더러운 것이지요.

Q. 그렇다면 지난 한해, 한국 사회에 번져있는 ‘더러운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 있습니까.
: 그런 사건이 하도 많아서 열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풍경을 보면 더럽고 치사한 것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자본과 국가가 세월호를 다룬 방식은 사회적인 타살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마음으로 동조하고 그랬지만 나중에는 일부 국민이 약자가 희생당한 것보다 다수의 경제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면 세월호 투쟁을 할 때마다 일부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된다’며 세월호 유가족이 내걸었던 현수막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해요.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보다 사람 죽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Q. 말씀하신대로 지난해 4월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라는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 앞에서 일베 회원들이 폭식투쟁을 벌이거나 ‘세월호 보도 이제 지겹다’고 말하는 일부 국민도 있었는데요.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한국처럼 유교적인 유산이 있는 사회에서 폭식투쟁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기나긴 역사에서 독보적인 사건 같아요. 유교적으로 봤을 때 어린 아이를 잃은 것을 ‘참척(慘慽: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일찍 죽음)’이라고 합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어린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도리입니다. 그렇게 상을 당하신 분들 앞에서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베’의 일부 회원들이 유가족을 조롱하기 위해 폭식을 한다는 것은 유교 사회에서 패륜 치고도 아주 심한 패륜입니다. 조상의 묘를 파는 것과 거의 같은 패륜이지요.

근데 한국 사회에서 일부 극우파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할 수 있고 사회가 이를 제지하지 못한다면 정말 끝장이 온 것 아닐까요. 젊은 파시스트들이 패륜을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증폭시키고 재확인시키는 것이죠. 전통사회였으면 이런 짓은 사람 죽이는 것보다 더 나쁜 짓으로 치부돼 왔거든요.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면 그 다음으로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Q.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 한국사회의 미래가 참 걱정되는데요.
: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자신들이 이미 신자유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옛날에 마르크스가 참 무서운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 지배층의 사고가 대개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가 된다’는 말인데요. 지배자들의 사고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가 되는 것. 예를 들면 북한의 주체사상이 단순히 김일성 일가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상당 부분인 대다수가 공유하는 문화적 코드입니다.

또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중장기적인 전망이 없습니다. 단기 이익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돈벌이가 중요한 겁니다. 사실 무서운 거죠.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에서는 사람이 단세포화 과정을 거쳐서 정말 미래나 지금과 다른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망상 취급을 당합니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박노자 교수 ⓒ 투데이신문

◆ 사회주의, 서로 도우며 조화롭게 사는 것

Q.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 사회주의를 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한국에서 사회주의는 어떻게 보면 추방당한 단어 같습니다. 한 25년 전만 해도 비록 제도권에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적어도 상당수의 한국인들에게 사회주의는 이념 보다 형식이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그렇게 운영하고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고 봤죠.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권이 사실상 붕괴되고 제3세계가 경제적으로 추락 당하는 등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착륙 이후 사회주의는 말 그대로 거의 추방당해야 할 언급하면 안 되는 단어가 돼 버렸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는 망상적인 게 아니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서는 굉장히 필요한 여러 조처들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6-7년 전에 세계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가 맨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은행에 엄청난 공적자금을 넣은 것이죠. 그게 사실 무엇을 반증합니까. 은행이라는 게 사적 소유가 되기는 하지만 실제 관리는 공적으로 되는 것이죠. 만약 은행에 부실이 생기면 국가는 우리 돈을 부어야 합니다. 문제는 은행이 실제로 공적으로 관리되는 기관이라면, 그러니까 부실이 생길 경우 국가가 납세자의 돈을 무조건 부어야 하는 기관이라면 왜 개인들이 은행을 소유해야 합니까. 이것은 형식적인 의문입니다.

은행이 외국인 기관 투자자들이 아닌 모든 국민들의 소유가 된다면 나라가 망할까요. 오히려 더 잘 되지 않을까요. 은행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거든요. 은행이 누구에 의해 소유되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이 고속 개발됐을 때 은행은 사실 국유화였습니다. 은행 국유는 망상적인 게 아닙니다.

은행이 사회화돼서 공유가 될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균형적인 경제운영에 굉장히 유익합니다. 그러면 은행들이 고수익이 나는 소비자 보다 수익은 덜 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영세상인에게 소형 금융같은 곳에 초점을 둘 수 있단 말이죠. 다시 말해 영세상인들을 살릴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줄도산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극소수 대주주들의 사적 소유가 돼야 하는지 도저히 경제적인 합리성 입장에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개인 대주주들의 소유가 되면 배당금 위주가 되고 이제는 단기수익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죠. 근데 대기업의 소유 관계는 국가, 지역주의, 노동자, 소비자 등 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운영될 경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장기적인 이익 위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사회주의가 고상한 이상이기도 하지만 아주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다수가 공평하고 균등하게 어느 정도 부를 나눠가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사회전체가 구축할 수 있다면 나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기업은 사실 공유가 되든 극소수의 개인 대주주들이 관리하든 기업운영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기업이 공유화된다고 해도 망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성공적인 국영기업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김대중 정권 시절에 사회화, 민영화되기 전에 포스코 등 수많은 국유기업이 있었고 서구권에서는 국유기업들이 상당수 있어요. 한 예로 노르웨이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는 국가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업 운영에 있어서 공익을 확보하는 주주죠. 그게 왜 나쁜 것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오히려 그런 요소를 살려서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Q. 한편 지금 이 시대는 경쟁이 허용되고 좀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이익이라는 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한번 생각해보지요. 기업의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노동자의 몫입니다. 그러니까 단기 수익이 일부 민영기업에서 올라가는 이유는 하도급 구조 덕분이죠. 하도급 구조라는 게 뭡니까. 일부 공정을 하도급업체에 맡기고 그 업체에서는 아주 싼, 월급 백만 원 이하의 비정규직을 고용해서 그 사람들을 악질적으로 착취해 부품을 아주 싸게 납품하면 제품값이 싸진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기업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리겠지만 백만 원도 받지 못하는 하도급업체 비정규직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기업의 이익은 곧 그들의 핏값이죠.

비정규직자들도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모두가 균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사회가 되는데요. 그러려면 하도급 구조 자체를 일원화시키거나 기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도급 노동자들과 기업의 노동자들의 조건을 단계적으로 균등화시켜야 합니다. 기업의 단기 수익을 좀먹는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그렇게 해야 하죠.

Q. 한국이 사회주의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보시나요.
: 아무래도 좀 더 인간답게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회주의는 하나의 정치 체제나 집권을 위한 정당 이념이기 이전에 인생의 의미와 뜻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실존적 운동입니다. 사회주의적인 삶의 시작은 한국에서 명문대라는 개념을 없애는 것입니다. 모든 대학을 공유화하면 고려대나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학이 111번, 639번 대학이 되겠죠 (웃음). 그 대학의 명칭을 망각시키고 모든 대학의 졸업자를 균등하게 취업시키는 그런 구조부터가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명문대라는 개념이 사라지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해방감을 느낄까요. 사회주의라는 게 서로 원수지지 않고 조화롭고 도와주면서 경쟁이라든가 적대관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사회가 아주 평등화돼야 합니다. 그래야 경쟁관계를 최소화 시킬 수 있죠.

◆ 통진당 해산, 한국이 민주국가 아님을 보여준 사례

Q. 박근혜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이 정권의 발악을 견제해야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파시즘하기 굉장히 쉬운 사회입니다. 대다수는 이미 신자유주의적인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지요. 극소수가 부를 소유하는 사회잖아요.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30대 재벌들이 국민총생산량(GNP)의 80%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극소수 대주주의 일가들이 말하자면 사회적인 부 절대 대다수를 독점하고 있는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 하나죠. 이런 사회에서는 극소수의 폭력적인 통치인 ‘파시즘’이 굉장히 쉽게 먹혀듭니다.

제일 심각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군주라는 겁니다. 자신이 국민을 모독하는 것은 상관없고 국민이 자신을 모독한 것에 문제삼는 것만 봐도 이건 군주마인드입니다. 기본적으로 근대국가 민주주의의 소통이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소통이 없지요. 기본적으로 자신이 다수의 표로 뽑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없어요. 아버지의 대권을 세습해 국가를 물려받은 군주의 마인드입니다.

Q.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일단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지휘하고 유가족한테는 국가통치책임자로서 사과하는 등 이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요구에 의해 연출은 했지만 말이죠. 이것은 군주 마인드인데 군주는 백성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만 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임기가 3년 남았다는 것입니다 (웃음). 아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지하고 길바닥에 두게 하고 폭력을 가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민주적인 대통령이라면 유가족이 계신 곳으로 가서 손잡고 같이 울고 대화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아래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사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민주적인 통치 스타일을 보여줬고 민주주의 근본을 거의 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정당 하나 해체시킨 것만 봐도 민주주의 근본을 흔든 것이죠. 만약 새누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고 통치하게 된다면 이것은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가 될 것입니다.

일본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공산당과 과거에 사회당이라든가 좌파들의 견제세력이 있어서 자민당이 아무리 독하게 극우적인 마음을 먹어도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좌파 세력에 존재감이 있어서 어느 정도 독재를 견제할 수 있었어요. 한국은 그렇게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해산 당한 통합진보당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새누리당의 정권이 장기화되면 일본보다 훨씬 더 악독한 극우 독점지배체제가 될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신지 궁금합니다.
: 통진당 해산은 한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지지율이 한때 12~13%였던 정당을 강제 해산시키는 전례는 없습니다. 예전에 서독에서 공산당을 법적으로 해산시키거나 미국 공산당 금지령을 내리는 등의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아주 소수의 당이었습니다. 사실 통진당은 대중성이 있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선출한 국회의원까지 있었던 당인데 그것을 폭력적으로 법원 결정을 통해 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사망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미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대대적인 국민의 저항이 없는 것만 봐도 얼마나 미성숙한 민주주의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Q.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현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 그러한 능력이 없다고 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부 지역 기반이 있어서 그것으로 버티지만 그 외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통치방식이라든가 한국자본주의 운영 방식에 대해 제대로 반대해온 적도 없고 반대할 줄도 모르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문재인 의원을 보면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오로지 잘 했다는 자화자찬만 하죠.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야말로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기간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엉터리로 만든 것부터 시작해서 사실상 비정규직 양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대다수가 사실상 생존경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책임있는 민주주의, 그러니까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합니다. 소위 야당이라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에 행해진 경제 정책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Q.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 상황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 ‘현대로템 전동차’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좌파 자유주의의 언론마저도 기업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이라고 볼 수 있는 몇몇 매체는 있지만 대부분 절대 다수의 언론기관들은 사실 언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언론들은 관보와 사보의 역할을 겸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은 사회가 운영되는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착취 당하는 사람을 대변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와 이주희 기자(하단) ⓒ 투데이신문

◆ 땅콩회항 사건, 한국형 왕족들의 일상

Q.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으로 인한 재벌가의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대개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대체로 기업이 왕국이라면 이들은 왕자와 공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한국 대기업에서 매일 수십 번 일어납니다. 왕자나 공주가 언론에 대해 불만을 품고 불러서 “야, 임마, 뭐야, 무릎꿇어” 이렇게 하는 것은 일상입니다. 조 전 부사장이 항공업의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평소 습관대로 행동한 것이지요. 어쨌든 그녀가 처벌을 받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형 왕족들의 일상이죠. 지금도 오늘날에도 분명히 수많은 다른 조현아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겁니다.

Q. 최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제자를 성추행하거나 권력을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학자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 자연과학이나 이공계와 달리 인문학의 연구결과는 당장의 실효성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와 같은 경우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르치는 학문이지요. 세상과 인간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르치고 과거에 대한 인식을 구축시킴으로써 미래 비전을 만들게끔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배경적인 학문이죠.

학자들이 자신이 배운 학문을 사회화시키는 것은 본인들을 먹여 살리는 납세자에 대한 도리라고 볼 수 있는데요. 기계적인 학술생산 시스템 속에서 기계적으로 개량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학자들은 학문을 어떻게 사회화시켜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Q.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하고 약자가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에 개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 ‘자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사장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내쫓았다면 나를 내쫓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내쫓김 당한 사람과 연대하고 왜 그 사람이 쫓겨나야 했는지 이유라도 한번 물어보는 것. 만약 그마저도 할 용기가 없다면 내쫓김 당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만나서 용기주고 도와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나중에 내가 자본에게 폐기처분 당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고요. 자비심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생물이 가장 합리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Q.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과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한국 사회에 아주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아동학대’입니다.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 영어를 시키는 것도 아동학대입니다. 그런데 만약 노르웨이에서 제가 제 아이를 학원에 집어넣고 3살 때부터 원어민에게 중국어나 일본어를 가르치게 했다면 아동학대로 고발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욕망들을 아이에게 다 투사시키고 그 아이가 커서 자신을 먹여살릴 것을 바라면서 아이한테는 본인도 하지 못했던 경쟁을 하게 합니다. ‘경쟁’ 자체가 잔혹한 것입니다. 외국어 구사는 모국어 구사가 충분해질 때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아니면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워지는 것이지요. 교육학적으로도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 그냥 교육노동자로 사는 것이죠 (웃음). 오는 4월쯤 서울에 가서 분단이나 통일 문제에 대해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과 논문을 쓰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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