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모뉴엘 사기대출사건을 비롯해 한국전력 뇌물수수까지, 각종 비리 사건의 뒤에는 ‘뇌물’이 숨쉬고 있다. 문제는 뇌물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구속기소된 가전제품업체 모뉴엘 박홍석(53) 대표는 금융권 관계자들에게 담배갑에 기프트카드를 넣거나 와인상자, 티슈상자 등에 5만원권 현금을 넣어 뇌물을 전했다. 이 사건은 ‘뇌물상자=사과박스’라는 공식을 단숨에 무너뜨린 계기가 됐다.

1993년 금융실명제 이후 수표의 출처와 경로 추적이 가능해지면서 뇌물이 수표에서 현금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 현금이 아닌 선물을 가장한 ‘물품’ 뇌물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전직원 금품수수 사건에 등장한 뇌물에는 상품권을 비롯해 고급 렌터카, 수입자동차, 최고급오디오 등 종류가 다양해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한국 사회에 번져있는 뇌물의 실태를 분석하고 각종 비리사건을 바탕으로 뇌물의 진화를 짚어봤다.

   
ⓒ 뉴시스

모뉴엘 사태로 본 뇌물상자… 티슈상자부터 담배갑까지 ‘다양’

가전업체 모뉴엘의 박홍석 대표는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낮은 가격의 홈씨어터 컴퓨터(HTPC)를 높은 가격에 해외로 수출한 것처럼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무려 7년 간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 4천억원 규모의 사기 대출을 받았다.

이런 행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금융권 관련자들에게 뿌린 금품과 향응 때문이었다. 즉 허위 수출실적으로 무역 금융을 지원받고자 했던 모뉴엘 측이 해당 관계자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의 뇌물공여 액수는 모두 8억 6백여만원. 그는 대출한도 증액, 세무조사 편의제공 등을 청탁하기 위해 2011년 4월부터 3년 2개월 간 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등에 뇌물을 뿌렸다.

이에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범기)는 모뉴엘 대출사기와 금품로비 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모뉴엘 전·현직 임직원 4명과 함께 한국무역보험공사 전·현직 임직원 6명, 한국수출입은행 현직 간부 2명 등이 모두 14명이 사법처리됐다.

모뉴엘 박 씨의 뇌물 수법은 어땠을까. 그는 50만원씩 들어가 있는 기프트카드 10장을 담뱃갑에 넣어 5백만원에서 1천만원 정도를 전달했다. 또 과자박스, 와인상자, 티슈통에 5만원권 현금 다발을 넣어 한 번에 3천만원, 5천만원씩 넣어 전했다.

지난 1997년 당시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이 사과상자에 만원권을 넣어 정‧관계 인사 등에게 뇌물을 전달한 것이 대표적인 ‘사과상자 뇌물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각종 지역특산물 상자를 비롯해 여행용 가방, 골프가방 등으로 뇌물용기는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2009년경 5만원권이 발행되면서 적은 양으로도 큰 액수를 전할 수 있게 되자 뇌물용기는 점차 작고 가벼워지게 된 것이다.

   
ⓒ 뉴시스

오디오, 자전거 등… 현금에서 물품으로 ‘뇌물의 모습’

뇌물을 받는 사람의 성향이나 요구사항에 맞춰 뇌물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뇌물이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뇌물의 형태 역시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신장비 납품업체 K사 대표 김모 씨가 6년 동안 한전과 자회사인 한전KDN,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등에게 3억 5천만원 가량의 뇌물을 준 일명 한전 비리사건. K사 대표 김 씨는 공사감독의 편의를 주는 대가로 한전 직원 등에게 금품과 각종 향응을 제공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10년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발주하는 여러 납품공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더불어 뇌물을 전했다. 그는 평소 자전거를 좋아하는 한전KDN의 한 팀장에게 값비싼 자전거를 주고 다른 팀장에게는 990만원짜리 차량용 오디오를 건넸다. 뿐만 아니라 한수원 김 본부장의 아들의 프로골프 레슨비까지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의 로비 대상은 최고위급 임원부터 말단 직원까지 범위가 넓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 물품 역시 상품권, 고급 렌터카, 수입승용차, 자전거, 오디오 등 다양했다.

   
ⓒ 뉴시스

뇌물 근절하려면… 엄격한 법 적용 절실

우리 사회에 뇌물 범죄가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비정상적으로 뇌물을 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경제적인 이익이 발생되는 경쟁 절차의 투명성은 필히 요구된다.

코바범죄연구소 공정식 연구소장은 “뇌물을 받다 보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고 뇌물을 받는 죄의식이 감소하게 된다”며 “뇌물받는 횟수가 늘면 감각이 무뎌지게 되고 따라서 뇌물이 당연한 관행처럼 인식하게 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약한 처벌이 뇌물범죄 근절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뇌물범죄를 막으려면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공 연구소장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처벌제도가 정착되지 않으면 뇌물 행위는 중단되기 어렵다”며 “김영란 법과 같은 처벌 규정을 둬서 뇌물을 받게 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