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영 변호사
▸現 법률사무소 동행 대표변호사

【투데이신문 이화영 변호사】“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가수 아이유가 그룹 산울림의 곡을 리메이크한 ‘너의 의미’는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노래이다. 어떤 한 곡에 빠지면 계속 반복하여 듣는 습성이 있어서, 위 곡을 종일 듣다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법 문언이 가지는 각각의 의미,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에 대하여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몇 음절의 단어의 해석에 따라 형사사건의 피고인, 혹은 소송당사자들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법치국가 원리의 한 표현으로서 ‘명확성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률은 명확한 용어로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적용대상자에게 규제내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하고, 법 집행자에게는 객관적인 판단지침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법은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되도록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 원칙은 국민에 대한 제재적 조항이나 형벌법규를 제정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현존하는 가장 합리적인 준칙(準則)이라 믿는 우리나라 법률의 문언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아마 의심 없이 ‘그 법의 그 단어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형법 제250조 제1항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문장에 있는 ‘살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람을 해쳐 생명을 빼앗는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라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쉬운 단어가 위 ‘법조문’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해석하건대, 위 문장에서의 ‘사람’은 ‘본인을 제외한 타인’이다. 우리나라는 죽은 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또한 자살이라는 행위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위 법조문에서 ‘사람’이 뜻하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인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왜 어렵게 풀어놨냐고 독자들이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을 살펴보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는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의 제작·배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이를 위반하는 자를 처벌하고 있다. 여기서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2조 제5호에서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성적행위를 하는 것)’로 정의하고 있다(이 부분은 2011년 9월 실제 아동·청소년을 이용하는 것에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개정된 바가 있다.). 만약 이러한 정의가 없다면 ‘아동·청소년 이용’이라는 부분이 ‘실제의’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외 아동·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는 것인지 해석에 있어서 논란을 낳을 것이고 위 법을 위반한 사람의 범위가 달라져 처벌대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등장인물이 다소 어려보인다거나 동영상의 내용이 아동·청소년의 성행위를 표현했다는 점만으로는 쉽사리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등장인물의 외모나 발육상태, 영상물의 출처나 제작경위, 등장인물의 신원 등 여러 정보들을 고려해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된 경우에만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로 보아야 한다.”라는 해석을 내놓아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피고인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 바가 있다.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에 대한 해석을 법률에 규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법률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법원이 입법자의 의도를 보충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라 역시 처벌받는 사람의 범위가 달라지게 된다.

위와 같은 사례는 법률이 명확성의 원칙을 최대한 지켜서 법률의 문언이 뜻하는 의미가 명백하도록 하려는 입법자의 노력과, 의미와 내용이 명확한 법률의 문언은 법률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가치판단을 전혀 배제한 무색투명의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입법자의 의도를 건전한 일반상식을 가진 자가 법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는 명확성의 원칙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가장 문제되었던 사례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유죄판결을 받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심에서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항공보안법 상의 ‘항로변경죄’가 유죄로 인정되었고 조 전 부사장 측의 변호인단이 현재 항소이유로 주장하고 있는 것도 위 ‘항로변경죄’에 대한 법리오해이다. 즉, 변호인단과 검찰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부분이 ‘항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이었던 것이다. 항로가 이륙 전 지상로까지 포함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 및 재판부의 판단이었고, 항로는 지상로가 아닌 공로(空路)만을 의미하며 항로에 대한 명백한 정의가 없는 이상 죄형법정주의(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주장이었다.

‘항로’라는 두 음절 단어의 해석에 따라 피고인 조 전 부사장이 유죄냐 무죄냐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니 한마디 말이 그에겐 참으로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법률의 조문이나 조항을 볼 때 그 문장 안의 단어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속으로 해 보며 다소 비판적인 사고를 해 보는 것은 나의, 혹은 타인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도대체 넌, 나에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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