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설 연휴가 돌아왔다. 올해는 설 3일 연휴 이후가 바로 토요일인 관계로 연휴 기간이 총 5일이다. 그리고 연휴 전 월요일, 화요일까지 휴가를 내는 사람은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설날’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대 명절은 근대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제공하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에 태양력이 수용되고 설날의 기능은 양력설이 이어받는 듯 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을 펼칠 때, 일본의 국경일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참여를 강요하고, 설날을 비롯한 각종 세시명절을 억압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한 명분은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우리나라가 한 나라라는 뜻)로 대표되는 민족말살정책과 함께, 근대 이전에 있었던 전통 문화가 근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도 설날은 계속 폄하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양력설에 3일의 연휴가 주어졌고, 음력설은 쉬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양력설과 음력설을 이중으로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는 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고, 양력설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하여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나 여전히 음력설을 지내는 가정이 많고, 민족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1985-1988년까지는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했다.(구정-舊正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 용어는 음력설에 대한 일본식 한자라고 한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음력 섣달 그믐(12월 31일)부터 정월 초이틀(1월 2일)까지 3일의 연휴가 정해졌다.

음력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의 이면에는 결국 ‘근대화’라는 것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양력을 우리도 사용해야 되었고, 일제에 의해서 그것이 강요되었다. 또한 해방 이후에도 새해 연휴를 두 번 보내는 꼴을 못보고 경제 발전을 위해 전통 명절을 희생한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이렇게 음력설을 다시 찾은지 약 3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설 연휴의 세태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온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여서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드리며 윷놀이 등 민속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많았다. 텔레비전에서도 연휴 특선 영화도 화제였지만, 외국인 노래자랑, 민속씨름 등 전통 문화를 현대화 하고, 외국인들과 명절을 즐기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큰 화제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지금은 아이돌들의 체육대회가 자리잡고 있다. 흥미로운 변화이다.

언론이 보여주는 서민들의 명절 보내는 모습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은 ‘민족 대이동’이라는 명제이다. 기차역, 버스터미널, 공항, 고속도로, 국도를 연결하면서 교통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도 비슷하다.

달라진 모습도 있다. 예전에는 설에 어린 아이가 설빔을 입고 조부모에게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는 모습, 민속놀이를 하는 정겨운 모습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 못지 않게, ‘명절 증후군’, ‘며느리, 미혼자, 구직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해외여행객으로 붐비는 국제공항’과 같은 말이 많이 나온다. 대가족과 친족 중심의 명절에서 비교가 난무하는 것으로, 국내에서 일가친척과 즐기는 전통 명절에서, ‘황금연휴’의 개념으로 대체된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항상 그 모습을 고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또한 예전에 절대적으로 옳았던 것처럼 보이는 것도 나중에는 그 오류와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문화의 변화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자체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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