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최근 드라마 ‘징비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방영 전부터 전작인 정도전의 후광을 업고 기대를 모아온 터라 예상되던 일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그런 효과를 간파한 출판사들이 기획한 콘텐츠를 제작해 주어야 할 입장이라,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집필한 내용과 다른 장면이 나올 때, 기획자에게 정확하게 집필한 것이냐고 의심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이 다른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필자의 블로그에 올릴 상황이 생겼다.

그런데 최근 험악한 덧글을 단 누리꾼이 있었다. 당신이 이런 글을 올릴 자격이 있느냐며 당신이야말로 ‘공상허언증 환자’라고 몰아간 것이다. 필자가 올린 내용이라는 것이 픽션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 기초 사료에 뻔히 나와 있는 내용을 무시하고 허구를 그려낸 장면을 비교하자 이에 대해 이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다소 황당했다. 

이런 덧글을 올린 누리꾼은 몇 년 전부터 필자를 종복, 좌빨이라며 지속적으로 막말을 올려대던 사람이었다. 요즘처럼 아무거나 트집 잡아 막말 해대는 풍조에서 이 자체야 별 것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재미 있는 점이 있다. 이번 뿐 아니라 식민사학 문제, 황산벌 전투를 비롯한 고대전투 문제, 한국전쟁 등 필자가 올리는 내용 전부가 해당 누리꾼에게는 시비거리였다.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얼마 전 우리 고대사에 남아 있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비판한 책이 재출간된 바 있다. 그런데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재출간한 책을 두고 ‘파렴치한 재탕’이라고 몰아간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특정한 사람을 음해하는 일에, 수십 명씩 몰려들어 집단적으로 비호하는 것을 보면 사리 분별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점을 확인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까지 난리 치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이 몰려들게 된 주제들을 보면 대개 기득권층의 심기를 거슬리는 주제들이었다.

특히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이 이들의 신경을 많이 건드린 것 같다. ‘공상 허언증’에 관한 말도 필자가 어느 방송에 인터뷰하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필 이 장면을 꼭 찝어 캡쳐 한 다음, ‘너야말로 공상허언증이다’라고 몰아간 것을 보면얼마나 꼴보기 싫어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점을 보면 떼지어 이런 자를 비호하는 집단이 나오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점만 해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론 조작 시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은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등골이 서늘한 점은 이 다음에 나타나는 공권력의 태도이다. 멀쩡한 책을 두고 ‘파렴치한 재탕’으로 몰아간 점은 필자 개인에게 뿐 아니라, 식민사학 비판의 뜻을 보급하고 싶어 어려운 사정에도 절판된 책을 내준 출판사 측에도 심한 피해를 주는 일이다. 믿어준 출판사가 받을 피해는 막아야 할 입장이라, 이에 대한 증거자료를 수집해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을 끈 다음 돌아온 통지는 ‘범죄 혐의 발견할 수 없음’이다.

결국 파렴치하게 없는 말을 지어내서 사이버 공간에 퍼뜨려 피해를 주는 행각이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신고 과정에서 담당 경찰이 시사해준 바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만들어 내서 자기 미운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처벌받지 않으니, 앞으로도 안심하고 이런 짓 하라는 메시지로 밖에 안들린다. 

그런데 이런 통보 받고 얼마 가지 않아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언론자유를 중시하던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사이버 상의 모욕과 명예훼손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조사해서 처벌하겠다’ 발표를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사하기 좋은 국내 sns만 회원이 빠져 나가는 등 난리가 났었다.

이 사건만 생각하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미천한 시민에게 없는 얘기 만들어 피해를 주는 것은 괞찮지만 고귀하신 대통령께는 안 된다는 뜻인지, 보수적인 논리를 펴기 위해서는 사이버 테러를 해도 되지만 기득권층에 거슬리는 내용은 안 된다는 논리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나 ‘법 앞에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일 같지는 않다.

더욱이 공권력이 비슷한 사건을 두고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점은 평범한 국민들에게 매우 불안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낸 다음 공개적인 논의를 거치는 학계의 일이라면 몰라도, 판단 자체가 국민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공권력은 입장이 다르다. 공권력의 판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적 처벌과 직결된다. 이런 문제를 둔 이중잣대, 특히 권력을 쥔 쪽에만 유리한 잣대가 어떤 메시지를 줄 지는 뻔하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갑질’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공권력의 태도는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는 모략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실제로 국가안보 돌보라고 만들어놓은 국가정보원에서, 보수파의 후보가 당선되도록 국민에게 걷어간 세금 들여 공작한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런 여론조작이 재미를 보니까,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서까지 역으로 흉내 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거슬리는 주장을 한 사람들을 음해하는 행각은 어느 쪽에서 하건 용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국가기관이 나선다던가, 공권력이 한쪽에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면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게 된다. 또 이로 인해 공권력이 불신을 사게 된다면, 보수파에게도 궁극적으로 좋을 일이 아니다. 그래도 대통령에 비판적인 쪽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드러내놓고 추진하지 못하는 현상이, 그나마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위로를 줄 뿐이다. 그래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 같기도 하다.

마침 일부 인사들이 이런 사태에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이명박 대통령을 고발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직접 경험한 검찰의 성향을 보아서는 제대로 수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좀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넋 놓고 있다가는 국정원의 여론 조작 개입에 대한 최종심 판결까지 언제 뒤집힐지 모르니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