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학생들 ⓒ뉴시스

중앙대 “학생들의 전공선택권 강화 차원”
입학자원 감소 등 대학경쟁 시대 대비 전략

학생·교수 “대학 내 제2의 입시경쟁 우려”
한국대학 기본구조 파괴하는 초유 개편안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중앙대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존 대학교육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학사구조 선진화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은 2016학년도부터 학과를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중앙대 학생은 전공탐색기간인 3학기 동안 교양수업과 단과대학의 전공기초 과목을 집중적으로 듣고 4학기 때부터 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중앙대는 이번 개편안이 학과별 입학정원제 하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는 데에 제약이 있던 장벽을 거두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전공 선택권을 강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교수와 학생들은 개편안이 대학에 대한 기업식 구조조정이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토대를 흔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 Academic Advisory System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Rainbow System’ <자료제공=중앙대>

학과 폐지, 그 배경은 무엇?

중앙대는 2월 26일 학과제 모집을 폐지하고 각 단과대별 모집을 골자로 하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발표했다.

중앙대에 따르면 2016학년도부터는 각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2021년도 이후부터는 인문/사회, 자연/공학, 예술/체육, 사범, 의/약/간호 등 계열별 모집을 실시할 예정이다. 다만 일부 특성화학과와 교육부 정원승인이 필요한 일부 전공은 제외된다.

기존에 학과를 그대로 두고 모집 단위만 광역화 했던 학부제와는 달리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포괄적으로 섭렵하고 융·복합 학문 신설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학과를 없애고 선진 학사 제도를 도입해 학사 구조를 학생 중심으로 바꾼 것이라고 중앙대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학과별 모집을 폐지하고 단과대학별 총 정원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학생들은 단과대학 소속으로 1,2학년 전공 탐색기간 교양과 단과대학별 전공기초 과목을 수강한 뒤 2학년 2학기부터 주 전공을 정하게 된다. 또한 1,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아카데믹스 어드바이저(Academic Advisor)인 지도교수가 개인별 상담을 통해 전공 및 진로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을 하게 된다.

중앙대는 또한 학생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인성’,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 등을 중점 교육하는 ‘자유교양교육(Liberal Arts Education·LAE)’을 도입하고, 전 학년에 걸쳐 인문학과 SW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단과대학 단위 신입생들은 1학년 때에 LAE를 통한 기본 역량교육을 받고, 2학년 1학기 때 다양한 전공 기초과목을 이수한 후 2학년 2학기 진급 시에 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학생희망과 사회적 수요, 전공별 수용능력 등을 감안해 전공을 결정하며 여러 분야의 전공기초 학습을 통해서 전공 선택이 이뤄져 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중앙대는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복수전공을 확대하고 두 개의 주 전공을 선택해 두 개의 학사 학위증을 받을 수 있는 ‘이중전공제’를 실시, 전공 선택권을 강화한다.

이번 학사구조 개편은 대학의 생존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중앙대 측은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23년이 되면 공학계열은 27만7000명이 부족한 반면 인문사회계열은 6만1000명, 자연계열은 13만4000명이 과다 공급되며 2025년에는 현재보다 32%의 입학자원이 감소돼 대학은 생존 경쟁시대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 이용구 중앙대 총장

이용구 총장은 “현재 국내 대학의 교육시스템은 기계적인 대량 생산을 주로 하는 산업화시대의 인력양성에 적합하도록 설계돼 있어 미래 지식기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방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특히 중앙대는 이번 대학 학사구조 선진화계획 수립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추진경과를 교내 온라인 및 오프라인 공청회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폭 넓은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설명했다. 향후 서울, 안성캠퍼스 설명회 및 대학평의원회 심의 등을 거쳐 최종 계획을 확정, 2016학년도 입시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반학문적‧반교육적 밀실 개편안” 반발 심화

하지만 중앙대 교수들은 이번 개편안이 반학문적, 반교육적 내용이며, 충분한 내부 논의 없이 이뤄진 ‘밀실개편’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학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 전·현직 회장 6명으로 이뤄진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이달 2일 성명서를 내고 “반학문적, 반교육적 밀실 개편안 철회하고 책임자는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비대위는 “중앙대가 학과를 중심으로 구축된 한국대학의 기본구조를 파괴하는 초유의 개편안을 발표해 대학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며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번 일을 추진해 교수, 학생, 직원 등 우리 대학 구성원들을 경악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비대위는 이번 사태를 중앙대학교라는 학문공동체가 지켜가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의 전통을 쿠데타적 방식으로 유린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개편안이 대학의 주체인 교수, 학생, 직원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중앙대 측은 대학 구성원과 단 한마디 논의도 없이 마치 비밀군사작전을 벌이듯 밀실에서 소수의 보직교수들이 모여 이번 일을 모의해 추진했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단과대학 학장들조차 학과 폐지 발표 전날 교무회의에서 처음으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냐”며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이어야 할 대학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거”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사태는 기업이 대학을 장악했을 때 대학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업식 구조조정’의 결정판이라고 비대위는 주장했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이후 2010년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였으며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가 폐지되기도 했다.

비대위는 “시장논리와 기업담론으로 무장한 기업이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과 ‘돈 안 되는’ 기초학문과 예술 분야를 자연 도태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 학과 폐지안”이라며 “이번 사태의 본질은 기업이 장악한 대학이 청년실업이 극심한 현실을 핑계 삼아 모든 학문을 ‘취업률’을 잣대로 줄 세우고 학문적 성격이 강한 기초학문과 순수학문, 예술 분야를 대학에서 퇴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비대위는 개편안이 지극히 반교육적이기 때문에 강행될 경우 학생들이 교육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전공 기간이 짧아지고 체계적인 지식형성이 어려워짐에 따라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전공의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처음 1년 반 동안 전공이 없고 이후에도 학과라는 소속이 없어 안정적인 소속감을 가지고 지도교수의 도움 아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원하는 전공 선택에 실패한 학생들의 경우 커다란 좌절감을 안게 될 것”이라며 “학과 틀 속에서 이루어지던 상담, 지도 기회의 박탈과 대형강의화에 따른 수업 질 저하도 우려되는 등 수많은 후폭풍이 불어 닥칠 수 있다”고 비대위는 경고했다.

비대위원장인 김누리 독어독문과 교수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대학사회에서 학과라는 것이 존재한 이유는 학문과 연구, 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학과제였기 때문”이라며 “학과를 전면적으로 없앤다는 것은 대학 역사상 초유의 일이고 세계 어느 명문대학에도 학과가 없는 대학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학생들의 인생을 실험할 수 없으며 너무 쉽게 융·복합전공을 운운하고 유망전공을 말하는 것은 반교육적”이라 주장했다.

비대위가 420명의 중앙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보류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에 찬성 의견이 총 367표(87.4%), 반대 의견은 불과 48표에 그쳐 이번 개편안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을 짐작할 수 있다.

   
▲ 1인 시위 중인 중앙대 철학과 14학번 조영일 씨

사회구조상 불균형 초래 우려

중앙대 학생들의 반발도 일고 있다.

교내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앙대 철학과 14학번 조영일(21)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학교에서 만큼은 함께 공부하며 배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대학이 기업화 되면서 학생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경쟁을 통해 성장하라고 하는데 이번 학사 구조 선진화 계획은 취업을 미끼로 학생들을 경쟁을 시키고 학문들까지 경쟁을 시키려는 시스템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현재 각 단과대 학생회 측에서도 이번 개편안과 관련된 대응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도 이번 중앙대 학과제 폐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재욱 국문학 박사는 “인문학은 문학, 사학, 철학이 서로 따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각 분야의 소통을 위해 통합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대학의 편의에 따라 혹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원을 줄이고 개편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중앙대는 인문학과 같은 순수 학문을 없애려는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며 “결국 학생들이 순수학문을 외면해 인문학의 토양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는 특히 쏠림 현상이 강하다”며 “인기학과로만 인재가 쏠리면 그쪽으로만 인력이 너무 많이 양산돼 결국 의미있지만 비인기학과인 쪽의 인재는 줄어 사회구조상 불균형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교육은 현재의 취업뿐만 아니라 미래 인재도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비인기학과이더라도 대학이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투자하고 인재를 양성하면 중장기적으로 그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데, 대학의 전공 구조를 온전히 학생들의 선택권에만 의존해서 조정하게 되면 당장의 취업에 유리한 전공만 남게 되고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할 인재 양성 기회는 놓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현재의 인기학과가 10년, 20년 후까지 인기학과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며 “필요하고 중요한 전공 분야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적어도 대학이 단기 이익 창출에 급한 중소기업이 아니라면 중장기적으로 미래 인재의 청사진과 비전을 정립하고 이에 따른 전공과 커리큘럼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