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소문과 실제가 섞인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13세기 말, 낯선 오리엔트 문화는 마르코 폴로에 의해 좀 더 신비롭게 각색되었다. 지중해의 자연환경이 신들의 훼방으로 그려져야만 오디세우스가 운명에 맞선 영웅으로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극적인 모험담은 인기가 많은 법이다.

암살자를 뜻하는 어쌔신(assassin)이 마약인 해시시(hashish)를 복용하던 중세 이슬람 암살조직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산 속의 냉혹한 노인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는 젊은 암살자들을 당시 유럽사회에 설명하려면, 환각상태 만큼 드라마틱한 지렛대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마르코 폴로의 묘사대로 해시시가 종교적 상승감을 이끌어 성전에 대한 신념을 북돋는 것에 사용 됐을 수 있다. 그러나 실체가 불분명한 이 이야기에서, 정교한 요인암살을 수행해야 할 이들이 실제 약기운에 의존했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듣는 사람들로선 약물에 취한 암살자 이야기가 환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시 이슬람세계는 종교철학의 분화와 함께 정치 갈등 속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념이 집단세력화 되려면 한 명 한 명의 결의가 모여야 한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생존의지가 내부 결집과 임무수행을 가능케 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도표로 정리된 연대기에선 지명과 숫자가 중요하지만 바위 그늘에 숨어 지내야 했던 누군가에게 역사는 삶의 현장이다. 그들은 상황에 맞춰 십자군과 경쟁하거나 협력했다. 세계사의 다른 장면들처럼 베일에 싸인 그들의 생태 또한 다양한 이유가 중첩된 결과다.

그럼에도 한 집단의 성격을 말할 때 배경 구조 대신 특정한 존재의 어두운 일면만을 중심에 두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가령 귀국 후 자신의 영지로 돌아간 십자군 기사들이 이슬람 세계를 적대시해야 하는 이유를 말 할 때, 지루하게 패권철학을 설명 하는 것 보다 약에 취한 암살자들의 광기를 묘사하는 것이 이슬람 모멸의 각인에 좀 더 효과적이다. 마약을 언급함으로써 동질집단을 상대로 마약 같은 위약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렇게 적대적 의도를 가지면 대상을 규정하는 대표 소재의 나쁜 정도가 중요해진다. 해로운 이미지가 전파 되어야만 제재의 이유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결국 마약의 정의는 의학적 사실 이외에도 권력주체의 정치적 동기와 어느 정도 연결된다. 정치가 사회갈등의 조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정치 지형에 따라 어떤 것이라도 마약 혹은 마약에 준하는 것으로 주장되거나 철회 될 수 있다. 니코틴의 강한 중독성을 경계하는 세계 보건기구(WHO)는 각국과 담배규제기본협약을 맺지만, 요즘 미국은 의료와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대마 유통에 대해 점점 관대해지고 있다. 때론 필요에 따라 종교나 산업 등이 마약 취급을 받기도 한다. IT기술의 총아인 게임산업이 보수정권으로부터 마약류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이유다. 문제가 심각한 건 개인의 사상에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경우인데, 우리사회의 종북 논란이 그런 현상이다.

본래 ‘종북’이란 단어는 이슬람의 한 지파를 자극적으로 그리기 위한 ‘마약’ 처럼 보수진영에 제언됐다. 하지만 어느새 그 쓰임은 자칭 보수주의자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약물과 같아졌다. 종북을 언급함으로써 동질집단을 상대로 마약 같은 위약효과를 얻으려다, 거꾸로 종북몰이라는 진짜 마약에 중독 된 것이다.

젊은 조직원에게 향응과 해시시를 제공하여 암살 테러를 감행하게 만들었던 천 년 전 암살집단과, 청년에게 ‘종북’이라는 색안경을 제공하고 폭발물 테러를 묵인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은 서로 닮았다. 정치적 목적으로 젊은이의 이성을 마비시켜 타인에게 위협을 가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렇기에 해시시와 마찬가지로 테러의 매개가 된 ‘종북몰이’는 현재 마약의 위치에 있다.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마르크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기껏해야 ‘종북몰이’라는 신종마약의 원료로 쓰일 정도로 하찮다.

얼마 전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 당했다. 그런데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와 새누리당은 종북을 홍보문구처럼 휘두른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보수단체의 집회에선 감정과잉과 상황에 맞지 않는 행위들이 넘쳐나고 거기엔 종북을 척결하자는 구호가 남발된다.

또한 우리는 조선의 왕궁 앞에서 펼쳐진 부채춤으로부터 무엇이 이 사회를 소름 끼치게 하는지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마침 세계 보건기구는 마약류를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과 함께 ‘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로 정의한다. 이쯤 되면 ‘종북뽕’이나 자매품인 ‘친북좌파뽕’의 광범위한 유통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이 많은 분량을 어디서 구했을까. 우리나라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6항 나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마약류제조업자 :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제조(제제 및 소분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업으로 하는 자를 말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종북류제조업자 : 종북몰이 또는 친북좌파몰이의 제조(제제 및 소분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업으로 하는 자를 말한다.

제조업자,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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