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모든 사회적 상류층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책임이 따른다. 이는 한국 경제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커나가는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무엇일까. 기업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이익추구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이 책임을 다하는 방법으로는 투명한 납세, 소외층에 대한 기부, 재능기부 등이 있으나 이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투명한 납세’가 아닐까 싶다. 기업의 납세는 경제 성장을 이끌고, 이로 인해 기업은 한 층 더 성장해 또 다시 납세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기 때문.

최근 ‘투명한 납세’와 관련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기업이 있다. 그곳은 바로 명실상부 재계 서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삼성’이다. 앞서 일부 언론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재산 및 계열사 지분 등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가 6조원대에 달한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어느덧 두 달 후인 5월 11일이 되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 1년째다. 그동안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업 재편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경영권 승계 작업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 상속세 얘기가 터져 나온 것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산 가치는 11조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며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SDS, 제일모직 등에도 0.01~3%에 이르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재산 규모가 큰 만큼 상속세 또한 많은 액수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이 그 동안 보여줬던 승계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삼성은 승계과정에서 ‘편법과 꼼수’를 부린다는 의혹을 숱하게 겪어왔다. 자주 거론되는 편법과 꼼수의 방법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회사기회 유용, 주식 저가 취득 및 고가 매각을 통한 차익, 전환 차익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삼성가(家) 삼남매는 현재도 엄청난 자산증식 효과를 거둔 뒤 경영권을 승계 받은 상태다. 이재용 부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 회장으로부터 61억원을 증여받아 현재 9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97억원을,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73억원을 증여받아 각각 2조5789억원과 2조5634억원으로 규모를 키웠다.

이처럼 엄청난 재산 가치를 지닌 삼성가의 상속세는 한두 푼 수준의 돈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상속세 6조원’이 큰 이슈로 떠오르며 그간 보여줬던 행실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과연 이를 투명하게 납부할 것인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관련업계에서는 삼성의 상속세 납부 방식은 분할 납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속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상속세를 한 번에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상속세 6조원은 현재 지분가치만 따졌을 때의 추정금액일 뿐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은 공개된 자산 외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고급차량 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숨겨진 재산을 들춰냈을 때 상속세는 어마어마하리라는 것.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가 상속세의 규모가 커질 지에 대해서도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삼성은 최근 불거진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진행된 수요사장단회의 직후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상속세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아직 언급하기에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삼성에서는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라는 말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삼성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오늘날 삼성이 재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인력이 돼주고 삼성을 소비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서민증세’로 인해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세금폭탄을 맞는 지금, 상속세와 관련해 매일 입방아에 오르는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며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잣대는 엄격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의 보통 점심 값 ‘6488원’, 이는 순두부찌개를 하나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일반 서민들 모두 그 정도 수준의 밥을 먹으며 일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평생 죽었다가 깨어나도 만져보지 못하는 돈 ‘6조원’이 총 재산도 아닌 ‘상속세’라고 하니 이 문제에 대해 모두 가자미눈을 하고 지켜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미운털이 박힌 삼성에게 상속세 6조원은 어쩌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세를 보일 수 있는 ‘하나의 선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기업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사회가 발전하는 아름다운 길을 걷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끗한 세금납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삼성이 명심하면서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고 한국에서 존경받는 재벌이 되는 길에 1등으로 앞장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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