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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발적 범죄 뒤에는 ‘분노조절장애’ 숨쉬고 있어
● 화가 날 경우 30초간 가만히 있어야
● 분노조절장애 의심되면 즉시 전문가에 도움 청할 것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최근 ‘화’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범죄가 늘고 있다.

살인을 비롯한 폭행, 방화 등 우발적 범죄의 이면에 ‘분노조절장애’가 숨어있는 것이다.

지난달, 50대 여성이 마트 주인과 말다툼을 하다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려 분신을 시도했다. 계약금 문제로 욱하는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같은달에도 포항의 한 문구점에서 4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승용차로 4차례 들이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경찰조사에서 ‘순간적으로 격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의 창시자 스티브잡스 역시 ‘분노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을 만나면 이상한 질문을 한 뒤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 경우 화를 내며 직원을 해고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이 외에도 음악가 모차르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등 분노조절장애를 호소한 유명인은 많다.

불합리한 상황이 생길 때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감정표현인 분노. 하지만 작은 일에 극도로 화를 느끼고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면 개인과 사회의 악(惡)이 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는 범죄뿐만 아니라 폭언, 폭력, 자학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아울러 쇼핑중독, 도박중독, 폭식, 도벽,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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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한다면… 분노조절장애 의심해야

분노는 말과 행동이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스트레스에 오랫 동안 노출돼 있거나 마음 속에 화를 많이 쌓아두면 분노장애가 생길 수 있다.

‘외상 후 격분장애’로도 불리는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충격을 받은 후 부당함, 무력감, 좌절감, 모멸감 등이 빈번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아울러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믿음에 근거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상태가 지속되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이 질환을 겪는 사람들은 화를 표출할 때 만족감, 쾌감, 안도감을 느껴 분노를 거세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충동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긴장감이나 각성 상태가 고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오래 노출되거나 화를 쌓아둘 경우 분노가 잠재돼 있다가 추후 자극이 오면 분노폭발로 이어지게 된다. 예전에는 분노의 억압이 원인이 된 울화병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지나친 분노 표출로 인한 분노조절장애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분노조절장애의 일종인 ‘성인 인격 및 행동의 장애’를 분석한 (2010년~2014년)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격 및 행동의 장애’로 인해 진료를 받은 성인은 약 1만3000명에 달했다. 또 ‘습관 및 충동장애’의 진료인원은 2010년 4845명에서 2014년 5544명으로, 4년 새 700여명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 민들레 홀씨 되어… 흉악 범죄로 이어지기도

분노가 범행의 씨앗으로 작용한 사고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부부싸움 도중 남편이 잡초제거기 휘발유를 집 안에 뿌려 불을 냈다. 이 화재로 초등학생 아들과 아내가 다쳤으며 주민 1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 역시 함께 술을 마시던 아내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며 안방에 들어가자 화를 참지 못해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었다.

같은해 7월 전남 순천에서 70대 노모를 때려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그가 40년 넘게 홀로 자신을 돌본 어머니를 때린 이유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사소한 분노 때문이었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부천에서는 30대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50대 여성 행인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숨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주차 시비 중 이웃 자매를 무참히 살해한 사건,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래층 주민을 살해한 사건 등 우발적이고 잔혹한 범죄의 이면에는 순간의 분노조절 실패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양극화 등 다양한 이유도 존재한다.

경찰 관계자들은 순간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 범죄자들이 뒤늦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한편 청담하버드 심리센터 최명기 연구소장은 “분노조절장애는 충돌조절장애 중 하나에 속하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소장은 “자신이 생각할 때 심각한 상황이 아님에도 과도한 화를 내거나 특정인에게 화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라며 “만약 술을 먹었을 때만 화를 낸다면 술을 끊어야 하고 유독 배우자에게 화가 난다면 부부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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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일단 심호흡하고 생각 멈춰라”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분노조절장애. 그렇다면 이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적절한 방법으로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화가 나면 ‘나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며 자기 격려를 하는 게 좋다. 또한 분노는 자극이 발생한 뒤 30초 안에 일어나기 때문에 화가 나면 잠시 행동과 생각을 멈춰야 한다. 더욱이 제3자로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명상이나 운동과 같은 취미활동, 여행, 친구와의 수다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규칙적인 식사와 꾸준한 운동, 질좋은 수면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본인의 심리상태가 분노조절장애에 가깝다고 느낄 경우, 심리상담을 요청하거나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빨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게 분노조절장애 예방에 특효약이라는 것.

해오름한의원 노도식 원장은 “화가 났을 때 심호흡을 깊이 하거나 잠시 자리를 떠나 있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분노의 상황에서 여러 번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또 명상 등 흥분된 기분들을 이완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도식 원장은 “분노조절장애를 이겨내고자 본인이 최대한 노력해보는 건 좋지만 치료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자가진단 등을 통해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보인다면 문제를 인정하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등 치료해야 한다. 혼자 이겨낼 수 있다며 이를 애써 외면했다가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아이를 ‘잠재적 분노조절장애자’로 키울 수 있다. 노 원장은 “부모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 아이를 방치하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사진출처= SBS스페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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