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①]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저자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 정의길 선임기자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과거 수니파·시아파 갈등, 현재까지 이어져
중동 분쟁을 먹고 자란 이슬람 무장단체 ‘IS’

중동 분쟁, 미국과 서방 탓만은 아냐
국내 아랍인들에 대한 의심, 잘못된 생각

중동 분쟁이 곧 한반도의 문제, 관심가져야
유대인과 시오니즘에 대한 책 출간하고파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이슬람은 크리스트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다. 자비, 자애 평화를 실천하는 종교인 이슬람.

하지만 중동지역 이슬람권에서는 분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의 거대한 두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 간의 갈등, 이슬람 무장단체와 서방세력의 갈등 등 이제 국제전 양상을 띠며 세계는 지금 제3차대전을 치르는 중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종파 간 갈등으로 시작된 이슬람권 분쟁은 저개발 상황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슬람권은 예로부터 사막지대였고 현재 사막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지역이다. 여기에 더해 이슬람권은 가장 역동적인 인구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개발로 인한 실업이 만연한 이슬람권 국가에서 역동적인 인구 성장은 오늘날 이슬람주의 확산과 이슬람권의 분쟁의 배경이 됐다.

또한 과거 제국주의 통치 때의 착취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 등 서방세력의 석유를 노린 대외 정책도 분쟁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이슬람 세계의 갈등 속에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한 IS(ISIS, Islamic States of Iraq and Syria)라는 이슬람의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단체가 빠르게 성장했다. IS는 2006년 아부 바크로 알바그다디를 축으로 결성됐고 자금과 인력 군수품을 모두 갖춘 테러 단체로 평가된다. 이슬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방세력과 싸운다는 IS는 이제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며 같은 이슬람교들과도 싸우고 있다.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김모(18)군도 IS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더 이상 IS는 이슬람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한국인이 추가로 IS에 가입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중동에서는 많은 사람이 IS 테러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IS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장투쟁을 하고 포로를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하는지, 미국과 서방국가가 이슬람교를 호전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옳은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무서운 집단이자 ‘악의 축’으로 떠오른 IS. 그들의 테러 위험에 한반도도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투데이신문>은 IS 사태의 본질과 문제점과 해결책을 듣기위해 전문가들을 초빙, 릴레이인터뷰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최근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출간한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다. 지난 3일 진행된 정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 종파 갈등의 시작과 전개, IS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이 IS의 탄생으로 이어지다

Q. 국제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한 전문 기자인데.

: 기자 생활을 1988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다 돼간다. 30년 동안 사회부를 시작으로 국제부, 정치부, 스포츠부 등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故 리영희 선생님이 원래 국제부 외신전문 기자이신데 그 분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국제부 기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국제 분야 기자로 일하게 됐다.

Q.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출간하게 된 이유는.

: 요즘 신문 국제부를 보면 중동 지역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테러가 발생해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뉴스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테러의 주인공들은 이슬람 무장 세력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동의 역사나 이슬람 종교와 관련된 서적은 많지만 IS에 대한 책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 세력이 어디서부터 시작했고 나타났는지 소개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이에 2013년 한겨레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와 네이버에 제공하는 특별콘텐츠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중동 대전 70년’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 내용을 연재했다.

Q. 중동지역의 갈등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 예언자인 무함마드는 A.D 610년, 이슬람 종교를 창시했다. 이후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했고 그가 운영했던 무슬림 공동체를 이끌 덕망과 신망 있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 사후 4명의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가 공동체를 이끌던 시기를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이 칼리프로 있던 시기를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한다. 4명의 칼리프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알리이다.

그런데 정통 칼리프의 마지막이었던 알리가 죽고난 뒤 후계자를 누구로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알리의 핏줄이나 후손이 정통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쪽은 핏줄과 상관없이 능력을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지금의 시아파가 됐고 후자는 지금의 수니파가 됐다.

이 과정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전쟁을 했다. 전쟁의 결과 수니파가 승리를 거둬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을 다스리게 됐고 이슬람 종파의 다수가 됐다. 반면 시아파는 이슬람의 소수 종파로 전락해서 지금의 이란 지역으로 가게 됐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Q.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돼 왔나.

: 앞에서 말한 역사적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에 벌어진 걸프전이 가장 큰 이유다. 걸프전이 일어나기 전 이란에서 소수파인 시아파들이 혁명을 일으켜 시아파 국가건립에 성공한다. 이란의 시아파 혁명 성공으로 주변의 수니파 국가들이 겁을 먹게 된다. 이란의 혁명이 주변으로 전파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아파들의 이란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대표적인 수니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전체인구 3000만명 중 순수 사우디인은 600만명 밖에 안 되는 나라로 이라크를 부추겨 이란과 전쟁을 시킨다.

이라크라는 나라의 인구구성을 살펴보면 사담 후세인과 같은 지배층 역할을 하는 수니파가 30%고 시아파와 쿠르드족 같은 소수민족이 70%로 구성됐으며 옆 나라 이란의 혁명에 안전하지 못한 나라였다. 그래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자신이 총대를 메고 이란 혁명에 대한 반혁명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은 8년 동안 계속 되는데 처음에는 이라크의 공세에 이란이 밀렸으나 결국 전쟁은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은 중일전쟁 이후 국가 간 전쟁에 있어 가장 길고 치열한 참호전이었다. 이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문제는 이 전쟁으로 이란의 혁명은 더 굳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란 내에서도 혁명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는데 혁명을 주도했던 호메이니가 이라크와 전쟁 당시 혁명의 반대세력을 모두 전쟁터로 보내버리고 숙청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부추겨서 한 전쟁인데 패한데다 빚까지 쌓였다. 이란의 혁명은 공고해 지고 국제유가는 떨어졌다. 그러자 이라크는 이웃나라인 쿠웨이트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선에 있는 유전에서 쿠웨이트가 이라크 내부의 석유까지 빼내가니 배상을 하라는 이유에서다. 이라크는 석유를 빼내가는 것에 대한 배상으로 쿠웨이트에 100억 달러를 요구했는데 쿠웨이트에서는 90억 달러를 줬다. 10억 달러의 차이로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하루 만에 점령해 버렸다.

그러자 사우디아라비아가 크게 놀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유전들이 이라크에 노출돼 있으니 이라크가 마음만 먹으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유전을 다 점령해버릴 수 있는 지리적 위치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자, 미국이 안 되겠다 싶어 개입을 하게 됐고 결국 이라크는 걸프전에서 패하게 됐다. 그리고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 내의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들을 아주 잔인하게 진압해버렸다. 이게 바로 현재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Q. IS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 IS의 세력이 커진 이유는 ‘종파분쟁’이 제일 크다. IS는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이다. 이라크도 그렇고 시리아도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철저히 단속하고 탄압했던 국가였고, 이슬람주의세력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2003년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을 했다. 전쟁 결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는데, 이는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방파제의 한 축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이 무너진 틈을 IS가 차지하게 된다. 시리아 같은 경우에는 내부에서 민주화시위가 발생하자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탄압해왔던 이슬람주의 세력을 키웠다. 시리아 정부군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일대일 구도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IS는 이러한 종파분쟁의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고 볼 수 있다.

Q. IS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단체인데, 여기서 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 역사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00년 전에 이븐 사우드 집안과 와하비즘을 창시한 ‘와하브’라는 전도사가 동맹을 맺었다. 와하비즘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이외의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음주 도박 간통 및 여성의 외출과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교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아프카니스탄의 무장단체 무자헤딘이 대표적인 와하비즘 추종자들이다. 여기에 또 와하비즘은 보코하람과 같은 아프리카의 이슬람 무장단체와 현재 빠르게 성장하는 IS 세력에게 강력한 지배 사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교리를 통해 와하비즘의 추종자들은 이크완이라는 종교군대를 창설했다. 이븐 사우드와 이크완부대는 종교적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일했다. 그런데 이븐 사우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설 기반을 닦으려고 각종 현대적 기계들을 도입했는데 이크완이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왜냐하면 와하비즘이 지독히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와하비즘에선 코란을 그대로 따라야 하고 전화, 자동차, 전보를 이슬람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와하브의 이크완 군대가 이븐 사우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크완은 낙타와 칼을 들고 싸웠지만 이븐 사우드의 군대는 현대식 무기를 통해 이크완을 진압했다. 이븐 사우드는 와하비즘을 진압했지만 탄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븐사우드로 대표되는 세속권력과 와하브로 상징되는 종교권력이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며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국을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도 위치하고 있는데 1970년대 오일쇼크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많은 돈이 들어와 주변의 아랍국가에 돈을 빌려주며 와하비즘을 함께 수출했다. 자신들이 이슬람의 종주국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슬람 근본주의는 공식적으로 정해져있는 명칭은 아니다. ‘이슬람주의 성향에서 근본주의 성향이다’ 이렇게 해야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슬람의 가치와 교리를 통해 종교와 정치를 합치시키자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현대문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 결국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교리가 아닌가.

: 처음 중동지역에 서방세력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아랍 민족주의 세력을 키웠다. 아랍 민족주의란 아랍은 하나라는 의식으로 아랍 세계의 통일을 구하는 사상과 운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 이슬람 국가들이 근대화 노력을 많이 했다. 근대화를 위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보기도 하고 사회주의 노선도 취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물론 내부에 근대화 노력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근대화는 실패하고 말았다. 실업과 가난이 겹치면서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그러다 보니 좌절감에 빠지게 됐다.

그래서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귀의해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코란에 눈을 돌린 것이다. 국가발전을 저해한다는 시각도 인정하고 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는 상당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이 무조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충격과 공포로 적을 무력화하는 IS

Q. IS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 한쪽에서는 IS가 수니파 보호 즉 종교적 목적을 위해 나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세력에서는 IS를 야만인 혹은 극단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둘 다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IS를 움직이는 것은 내부의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이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극단주의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 주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단체다. 이들이 지지를 하는 이유는 시리아나 이라크에 본인들과 다른 종파 즉 시아파 국가가 들어서게 되면 본인들의 기득권을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군 세력과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IS로 대거 몰려갔다고 볼 수 있다.

Q. IS와 같은 테러단체가 발생한 이유 중 하나로 미국과 서방세계의 영향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미국과 서방세계를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석유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일 뿐이다. 내부적으로 이슬람 국가들의 근대화 노력이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중동지역의 모든 문제를 미국과 서방세계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 같다.

Q. 유튜브에 공개 된 것처럼 IS가 포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 충격과 공포를 통해 적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우리한테 저항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 중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를 끌어 모으기 위해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잔인한 방법으로 포로를 자꾸 죽이니까 이라크 모술이라는 지역에서 이라크 정부군은 1만 명이나 되었지만 1000명도 안 되는 IS한테 패했다. 이 전투의 승리는 IS가 포로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얻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Q. IS 가입 시 차와 집, 여자 등 받게 되는 혜택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가입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취업난이 IS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 미국의 국제관계 평론잡지인 <포린 어페어스>의 2010년 1·2월호에 실린 ‘새로운 인구 폭탄’이라는 글에서 이슬람권의 인구팽창은 인류의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슬람권 사람들은 문화수준도 높고 교육도 잘 돼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슬람권 국가의 역동적인 인구팽창은 인류의 귀한 노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극단주의세력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직업도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IS와 같은 무장단체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

Q.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이슬람교를 믿는 국내 아랍인들에게 IS 조직원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이러한 시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봤던 책 중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책이 있다. 사실 이 책 원본을 보면 성인소설이다. 서로 사랑하고 훔치고 때리고 속이고 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결국 사람 사는 모습은 종교와 관계없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단지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의심받는다는 건 옳지 못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무슬림 사람들도 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왔다. 입장을 바꿔서 과거에 미국의 조승희 사건을 떠올려보자. 만약에 그 사건을 통해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서 다 ‘테러분자’라고 하면 얼마나 억울한가.

Q. IS세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나.

: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계속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 공습을 하고 있고 이라크 정부군도 무장 시켜 4월쯤에는 모술 공략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화해 없이 무력을 통한 군사적 행동만 계속 한다면 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라 본다.

IS가 세력을 확장한다면 이라크나 시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나 리비아에서 세력을 다시 키울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리비아에서는 현재 1700여개의 무장 단체들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IS 깃발을 꽂아놓고 세력을 키우기 쉬울 것으로 본다.

IS는 상당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무장단체들을 지원해줄 수 있다. 어쩌면 과거 알 카에다처럼 IS 깃발 아래 모든 무장단체들이 통합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통합이 된다면 세력은 더 커질 것이다. 

   
 

▲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중동지역, 전쟁을 부른다

Q. 중동지역에서 미국과의 충돌이 계속 되고 있다. 이란과 미국, IS와 미국이 가장 많이 충돌하고 있다. 중동지역이 미국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 달라.

: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석유 때문이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석유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일 먼저 찾아간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밑에 묻힌 방대한 석유 자원에 주목했다. 이븐 사우드 국왕과 3일 동안 회담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븐 사우드 국왕의 호감을 샀고 향후 경제적·군사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이다. 중동지역은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중간 지역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가치다. 미국 사회에서는 유대인들이 미국의 언론과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엄청난 로비를 통해 이스라엘 안보를 미국의 대외정책에 넣었다. 시카고대학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메어샤이머와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스티븐 월트 교수가 함께 쓴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스라엘의 국익에 따라 흔들리는 경우가 나온다. 사실 처음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1964년 6월 이스라엘이 주변 중동국가와의 전쟁에서 6일 만에 손쉽게 승리하는 것을 보고 미국은 이스라엘이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에 기울어져 가고 있던 중동에서 미국의 믿음직한 대리 세력이었고 현재는 이슬람주의세력을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Q. 9·11 테러가 일어난 후, 미국은 이슬람 수니파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의 배후’라고 지목했다. 그리고 이라크를 알카에다와 함께 연계하려 했고 이후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우리는 테러 행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숨겨주는 이들을 구별하지 않을 것’ 이라고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의 핵심은 알 카에다 소탕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더 나아가 9·11 테러와 연관된 것으로 의심받는 다른 국가까지 전쟁이 확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이러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 행정부는 9·11 테러에 대해 ‘우리가 한 대 맞았으면 열 대로 갚아줘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적 시각은 이념과 가치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다. 즉 국익을 위해 외교와 무력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 카에다를 포함해 미국에 반대하는 집단에 대해서도 본때를 보여줘야 이러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알 카에다 외 다른 집단이 누구일까. 바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다.

사실 후세인 정권은 속세주의 정권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알 카에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라크를 9·11 테러와 연계해서 지목한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중동지역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이라크에 친미국가를 세운다면 반미적 성향을 띄는 이란을 견제할 수도 있을 뿐더러 미국 중심의 중동 질서를 만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Q.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역이다.

: 아프가니스탄은 좀 이상한 땅이라 말할 수 있다. 강대국들의 관심과 무관심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던 땅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알렉산더가 정복전쟁을 했을 때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갔다.

19세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식민지 패권을 놓고 대결하던 영국과 러시아의 무대가 됐다.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과 북상하려는 영국이 충돌한 지점이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남하하려고 하니까 영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자신들의 최대 식민지인 인도까지 넘본다고 착각을 했다. 이를 미리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 버리고 친영정부를 세웠는데 2년 만에 쫓겨나고 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약 2만여 명의 영국군이 죽고 딱 한명만 살아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잊힌 땅이 됐다.

그러다 냉전시대에 들어와서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서 석유가 많이 묻힌 걸프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우려했고, 소련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중앙아시아로 진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197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소련군 기계화사단 탱크들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다. 하지만 결과는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의 승리였다.

어쨌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은 인도로 가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대륙 세력들이 바깥으로 또는 남쪽으로 갈 수 있는 통로다. 이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가치가 있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Q.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보면 국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무장단체들이 전쟁터에 들어와 미국에 저항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이슬람주의세력들이 가장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인 정통칼리프 시대를 만들려는 거다. 즉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이념과 국경을 뛰어넘어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동의 국경선은 과거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그어놓은 국경선이기 때문에 서방 자본주의에 대항해 성전(聖傳)을 벌여야 한다는 이유로 미국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니 클린턴 정부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클린턴이 한국을 방문해 ‘그때 북한과 수교를 했어야 했다’며 그러면 북핵문제가 풀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문제가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Q. IS에 대한 기사는 많이 나오지만 사실 중동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상당히 무관심한 편이다.

: 솔직히 우리나라와 중동지역이 역사적으로 크게 연관은 없다. 그런데 1974년에 오일쇼크가 일어나서 유가가 엄청 올랐던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중동지역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중동지역의 문제는 우리나라와 관련이 많다. 남북관계가 안 풀리는 이유도 중동지역의 분쟁이 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중동문제에 빠져서 남북관계를 대처할 능력이 없다. 대표적인 예로 클린턴 정부 말기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미국은 화해를 했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수교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정식 수교는 하지 못했다. 왜냐면 팔레스타인에서 2차 인티파다 민중봉기가 일어나 클린턴 정부는 중동을 전전하며 임기 막판을 써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Q. 앞으로 계획은.

: 현재 중동 분쟁의 한 원인이 되는 유대인과 시오니즘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의 앞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여기에 국내에 시오니즘과 유대인을 주제로 한 서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내용에 대해 책을 쓰게 된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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