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형 칼럼니스트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
▸저서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대중vs김영삼> <왕의 서재>등 다수

【투데이신문 이동형 칼럼니스트】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매뉴얼’과 ‘규정’, ‘시스템’을 이야기 했다. 이것들만 잘 지켜졌더라면 죄 없는 그 많은 영혼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잠기지 않았을 거라고…….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터졌을 때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매뉴얼과 규정을 이야기 했다. 선진 외국의 사례까지 들먹이며 “외국은 시스템과 매뉴얼로 움직이지만 우린 그것보다 상사의 지시나 인정에 이끌려 일을 처리하다 보니 이와 같은 사태가 터졌다.”고 사회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이어서 새삼 거론하는 것도 멋쩍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수영선수 박태환 에게 있어서는 이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태환은 금지약물을 복용한 혐의로 FINA(국제수영연맹) 청문회 신세를 졌고 혐의가 인정돼 결국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은 박탈당했다. 여기에다 1년 6개월간 선수자격을 정지 당하는 제재조치까지 받았다. 문제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이다. FINA에서 내린 조치만 따지면 박태환은 내년 8월에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개정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1장 5조 6항에는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 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대표선수 및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은 리우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나설 수 없다. 이렇게 되자, 이 규정이 ‘이중처벌’이라며 박태환을 위해 이 규정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그럴듯하게 퍼지고 있다. 세월호와 땅콩회항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벌써 잊은 것이다. 규정과 매뉴얼이 있는데도 그걸 지키지 않는다면 그 규정이 무슨 소용인가? 처음에 이 규정을 만든 취지를 벌써 잊었는가? 대한민국 수영영웅 한 사람을 위해서 한국 스포츠의 근간을 흔들자는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수영이 박태환의 박태환을 위한 박태환에 의한 수영인가?

이번 논란은 형평성의 원칙에도 심히 어긋난다. 지난 해 5월 일반 병원에서 감기약을 복용했다가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클렌부테롤이 검출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 부터 자격정지 2년 징계를 받은 수영선수 김지현이 이번 논란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박태환은 약물복용이 박태환의 실수냐? 의사의 실수냐? 논란이 있었지만 김지현은 처방한 의사가 청문회에서 직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2년짜리 중징계를 내렸고 김지현은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태환 에게는 이중처벌이니, 지금껏 한국수영에 이바지한 공이 있으니 어쩌고 하면서 있는 규정까지 없애면서 봐주자고 하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들이 했던 변명, 독재시대 때 독재에 부역하던 지식인들이 “과도 있으나 공이 많으니 선처해야 한다.”는 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세월호 같은 사건이 터지고 땅콩회항 같은 일들이 백주대낮에 버젓이 일어나는 것이다.

편법과 예외, 특혜와 이중 잣대가 판을 치는 모습을 ‘정당한 승부’가 모토인 체육계에서까지 보아야 한다니 씁쓸함을 감출길이 없다. 이번 사태는 박태환 선수 개인의 호불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원칙과 규정, 도덕과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불법과 탈법, 편법과 특혜는 없애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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