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얼마 전 있었던 학회에서 개인적으로 좀 황당한 꼴을 보게 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한 학예관이 화랑세기가 가짜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장면을 코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핵심은, 이른바 필사본 화랑세기가 있다고 주장해 왔던 ‘일본 서릉원에 당시 국편 편수관이 가서 조사해 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벌써 10년도 전에 출간된 화랑세기를 두고 진위논쟁이 벌어진 사실이야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고 느꼈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황당함을 넘어 섬뜩함을 느낄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근거를 조작한 사례로 유명하다.

조작 기법도 좀 치졸했다. 그 편수관은 자신의 글에 ‘현재 박창화가 근무했던 일본 궁내성 서릉부 또는 교서부의 목록집 어디에서도 『화랑세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현재 울산대 교수인 허영란의 논문 「일본 궁내청 서릉부와 한국 고도서」, (『역사와현실』59, 한국역사연구회, 2006.)을 인용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 원본을 추적한 결과, 그런 게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근거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근거가 된 허영란 교수의 글을 살펴보면 ‘『화랑세기』 원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만한 내용이 없다. 알고 보면 이 글 자체가 사실만 말하면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한다. 들어가는 길 초반에 슬쩍 『화랑세기』를 언급하면서, 궁내청 서릉부 자료 조사와 엮여 놓아,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곳을 조사하면서 『화랑세기』 원본에 대한 조사도 같이 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용은 없다. 내용 대부분이 한국계 자료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소장되었는지, 서릉원 자료를 어떻게 열람하는지 등 서릉부에 대한 소개에 치중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오히려 ‘열람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으며, 이렇게 폐쇄적인 운영방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하며 이곳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놓았다. 결국 이곳에 ‘『화랑세기』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할 만큼 조사할 여건조차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굳이 이런 말을 해놓지 않았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천황 가문과 관련된 자료에 대해서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심지어 내용이 뻔히 공개된 칠지도 실물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궁내청 서릉부 직원이 아닌 이상, 내부에 들어가서 자료가 실제로 있나 없나를 조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허영란 교수부터가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글에 반영해 놓았다. 제대로 된 조사를 했다면 ‘폐쇄적인 운영방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결국 이 글은 별 관계도 없는 『화랑세기』를 끼워 넣어 착각만 유발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 편수관은 ‘궁내청 서릉부를 조사한 사람에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식으로 없는 말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이런 내막을 알고 보면 마치 궁내청 서릉부를 조사라도 한 것처럼 글을 써놓은 배경이 궁금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바로 사소한 동기로 시작된 지식사기(?)가 국민적인 역사왜곡을 낳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편수관이 궁내청 서릉부 같은 곳을 가는데 자기 돈으로 갔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세금으로 마련한 출장비로 갔을 것 아닌가. 결국 국민의 혈세를 써가며 내용과 별 관련도 없는 『화랑세기』를 끼워 넣은 셈이다.

바로 그런 글을 근거로 삼아서, 지금 나와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을 가짜로 몰아 부치고 있다. 이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며칠 후, 평소 간여하던 역사 강좌에서 우연히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강좌의 수강생 하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화랑세기』 필사본 가짜 아니었어요?”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이 오해나 착각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궁내청 서릉부에서 『화랑세기』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그 편수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 필자가 반론을 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당사자인 편수관에게 반론권을 주기 위해 학회 발표의 지정 토론자로 나와 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 때 그 편수관은 ‘다시는 화랑세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자리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토론자가 나섰다.

그러니 이 편수관이 반론의 내용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몇 년 후인 2013년에 자신이 저술한 『신라 화백제도와 화랑도』라는 책 서문에 ‘필사본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욕구에서 비롯한 소설류에서 위서로 탈바꿈한 것이 판명되었다’고 써놓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짐작해 볼 때 그 편수관은 화랑세기를 가짜라고 주장해 온 원로학자의 제자인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덧붙여 이 책은 2014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바로 그 대한민국학술원에, 바로 그 스승이 회원으로 있다는 점도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바로 이렇게 우리 고대사 인식에 중요한 근거들이 조작되어 가고 있는 것 아닐까. 후학들이 뭘 보고 배울지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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