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2015년 4월 3일자 문화일보 오피니언 포럼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가 ‘좌편향 교과서 是正해야 할 정부 책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 내용은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이 6종의 교과서 저자들이 낸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명령 취소 소송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린 사실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 교과서로 사용돼서는 안 될 내용을 출간한 6종 교과서 필자들의 소송은 적반하장이며, 이는 한국사학계가 이미 민중사학에 의해 장악돼 있다는 증거라고 권 교수는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민중사학 및 그 동조세력으로 구성된 7종의 교과서 옹호 진영이 공격에 나선 것이며, ‘지금 다시 돌아봐도 어이가 없다’는 것이 핵심적인 취지였다.

이 자체야 권 교수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되풀이해왔던 내용이라 다시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교과서 문제의 해결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추방할 때에만 가능하다’며 교육부가 이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선까지 연결되는 것은 의미심장한 측면이 있다. 그러니 그 의미를 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권 교수는 글의 서두부터 ‘교학사 교과서를 저지하려는 세력들이 교과서 내용이 알려지기도 전에, 각종 저급한 유언비어로 교학사 교과서를 공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했다’고 모략했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부당하게 이런 지적을 받았다면 억울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좀 이상하다. 권 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 이외에는 모든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한국사 교과서로 부적합하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다른 교과서들을 학교에서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런 정도 수위의 말을 들은 쪽에서라면 비판이 아니라 매도 내지 모략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신만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는 바에야, 비판 자체를 가지고 문제 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 핵심은 누가 어떤 점에서 부당한 비판을 했느냐가 검증되어야 할 것이고, 물론 양쪽 모두가 검증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권 교수는 자신의 행각에 대해서는 애써 잊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작년에 권 교수가 유관순을 누락시킨 교과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민중사학에 젖은 종북 세력이 득세한 결과라고 주장했던 사실 말이다. 그 내막을 알고 있던 필자는 유관순 누락과 민중사학이나 종북 논리가 별 관련이 없다는 반론을 칼럼으로 써서 공개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권 교수가 유관순과 관련해서 했던 주장은 해당 교과서 필진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역사학계 대부분을 매도한 것이다. 더욱이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권 교수의 주장에 따라 유관순을 교과서에 수록하도록 국회 등에서 압력을 넣은 바도 있다. 남을 매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장이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필자가 잘못 알고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차원에서, 그 내용을 권 교수에게 보냈다. 반론할 것이 있으면 하고, 검증할 것이 있으면 잘못된 주장을 한 쪽이 책임을 지자는 취지였다. 필자가 신분을 감추고 무책임한 말로 비난만 쏟아내는 악플러와 다른 차원의 검증을 원한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남들이 자신을 매도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을 통해 비난하면서, 자신은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매장시킬 수 있는 주장을 해도 된다는 특권의식 이외에 그의 행각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자기가 저질러 놓은 일에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남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더욱이 권 교수가 교과서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방법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비겁한 것 이상이 아니다. 권 교수에게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이런 주장을 하기 전에 국사교과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시도했어야 한다. 이것이 학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이다.

그런데 권 교수가 지금 제시하는 해결책이라는 게 무엇인가? 유관순 관련 문제 뿐 아니라, 권 교수의 주장에는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말조차 민망할 정도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필자가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납득이 갈만한 설명을 본 기억이 없다. ‘수사적 민주주의’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교과서에 쓰지 않는 것이 왜 민중사학으로 몰려야 하는 것인지 등 필자가 언론을 통해 제시한 문제만 해도 일언반구의 답을 들어본 적 없다.

권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만이 진리이니, 다른 모든 교과서는 학교에서 추방해야 하며 그것이 교육부의 책임이라 했다. 결국 검증 없이 권력의 힘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담은 교과서만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은 학교에서 사용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누구만 좋으라고 그러는 것인가. 어떤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학자라는 사람이 벌일 행각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대한민국 사회에 정말 촉구해야 할 한마디를 덧붙여 보자. 대한민국 학계가 혼탁해진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검증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권 교수처럼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시해버리고, 자기 멋대로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퇴출’ 운운 할 수 있는 현실도 검증이 되지 않는 풍조의 결과일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검증이 철저한 사회에서는 권 교수 뿐 아니라 누구라도 무책임하게 남을 매도하는 일을 벌이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검증 좀 해보자. 지금 학계나 언론에서 하는 것처럼 만만한 패널들 채워놓고 자기들이 원하는 결론 유도해내는 눈가림 검증 말고, 헛소리 한 쪽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진짜 검증 말이다. 교육부에 촉구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사리사욕 채우는 조치 취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는 자에게는 국민의 혈세를 10원짜리 한 장 만지지 못하게 해야 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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