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월호 침몰 후 1년
[칼럼] 세월호 침몰 후 1년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4.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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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2014년 4월 16일, 제주도를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도 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서 조선시대의 사례를 다시 보자. 인조 18(1640)년, 잇따른 폭풍우로 인해 서쪽으로 가는 배가 잇따라 난파되고, 수백명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영조 43(1767)년, 호남의 곡물 수송선이 역시 폭풍우로 침몰해서, 약 2만석의 쌀이 수장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사건에서 인조와 영조가 가장 먼저 ‘과인이 부덕하다.’고 말했다. 인조는 대신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내가 덕이 없으므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1년도 편안히 보전하지 못하고서 또 명령을 어기지 못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죽은 자가 수백 명이나 되니 애통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영조는 “한 귀퉁이 치우친 나라에 부덕한 사람이 임금 자리에 있으니, 우순풍조(雨順風調 : 비가 순하고 바람이 순조로운 것)는 감히 바랄 수는 없지만 어찌 지난번과 같은 바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근대 이전, 대부분의 왕들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 발생하면, 본인이 왕으로서 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왕은 명을 내려서 왕에게 올리는 식사인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이고, 죄인들을 풀어주었다. 왕의 부덕함이 자연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당대의 지배층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로 인해 백성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왕으로서 좋은 정치를 펼치겠다는 다짐을 견고하게 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조와 영조의 사례에서도 우선 백성들을 위로하고, 본인이 왕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그로 인해서 백성들이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닌지를 먼저 돌아본 것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인조와 영조는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인조는 폭풍우로 사람들이 잇따라 희생당하자, ‘하늘이 내린 견책(譴責 : 잘못을 꾸짖고 나무람)에 어떻게 답할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에 신하들은 사건이 발생한 부안에 진(鎭)을 설치하는 것보다도 우선해서, 역사(役事 : 토목 사업 등의 국가 차원의 대규모 사업)를 중단할 것을 건의하였다. 영조 때에도 마찬가지로 사건이 일어난 법성진(法聖鎭)에 경력이 있는 벼슬아치를 책임자로 보낼 것을 지시하였고, 사건의 책임이 있는 전임 영광 군수를 귀양보냈다.

이러한 사건 해결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 1년을 맞이한 우리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는 사례도 확인할 수 있다. 인조 때의 경우, 이조판서 이경석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을 위해 초혼제(招魂祭 : 혼을 위로하여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제사)를 지낼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인조가 예관(禮官)인 이덕형에게 이것을 다시 물어보았고, 이덕형은 “국가의 일로 죽었으니 제사를 지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인조 역시 “이들은 싸움에서 죽은 것과는 다르나 역시 국가의 일로 죽은 것이다. (이덕형이)아뢴 대로 시행하라.”라고 답하였다.

같은 기록에 따르면, 인조가 “명령을 어기지 못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죽은 자가 수백 명이나 되니 애통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았을 때 인조 때 폭풍으로 인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유가 국가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배로 이동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폭풍우 때문에 배가 침몰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탓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영조 때의 사건에서는 영조가 “일전에 치죄한 격군은 수십 명에 불과했었는데, 지금은 근 4백 명의 격군들을 다른 군에다 두루 가두었다. 그들이 비록 무상(無狀: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 버릇이 없음)하다 하더라도 몇 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어찌 다 치죄할 수 있겠는가? 격군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 역시 나의 백성이며 나의 자식들이다. 범죄를 저질러 처벌된 자도 불쌍한데, 더구나 그들이야 말해 뭐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격군은 배에서 노를 젓는 군사를 뜻하는데, 곡물 수송선이 침몰하자, 이 배의 노를 젓던 격군들을 감옥에 가둔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이들 역시도 백성 중 일부이며, 국가의 일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난 것인데, 감옥에 가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세월호 침몰 후 1년 동안 우리 정부는 역사를 중단하는 대신 세금을 올렸다. 정치권과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세월호 사건을 잊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2명의 국회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대통령은 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난 2015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 방문 후 남미로 순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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