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 저자 임건순

   
▲ 임건순 작가 ⓒ투데이신문

임건순, 전국시대 장수 오기에 대한 최초 해설서 펴내
오기, 단순한 전쟁영웅이 아닌 백성을 생각하는 개혁가
천민출신 오기, 기득권 계층 시기로 비참한 마감 
오기와 흡사한 현대 인물은? 김성근 야구감독 
오기의 핵심사상 ‘화(和)’… 우리나라 정치공동체도 하나돼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전쟁하는 법과 군사 전략을 담은 책, 병법서(兵法書).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당대 최고의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오자병법>은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장수 오기(吳起)의 전쟁 전략을 담은 책이다.

그렇다면 오기는 누구일까. 기원전 440년경, 동방 위(衛)나라 좌씨현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오기는 스승 증자에게서 유학을 배웠다. 이후 그는 노나라 장수가 돼 공을 세웠으며 위문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진나라를 제압했다. 오기는 전쟁이 일상으로 돼 버린 춘추전국시대에 76전 무패의 신화를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비천한 출신과 기득권층의 시기로 인해 여러 나라를 떠돌다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오기를 단순한 병법가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유학과 묵학을 배운 그는 군주가 마땅히 행해야 할 올바른 정치를 논한 정치사상가이기도 했다. 아울러 늘 백성과 병사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인정을 베푼 따뜻한 사람이었다.

오기는 아부하지 않으며 고개 숙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는 전쟁 중에도 병사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다. 타고 있던 수레에서 내려 병사와 함께 걷거나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다는 그의 일화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중에게 다소 낯선 장수 오기를 다시금 조명한 이가 있다. 바로 임건순(34) 작가다. 그는 지난해 11월, 역사적 통찰과 철학적 재치가 돋보이는 책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오기 해설서로 불리며 전국시대 최고 장수 오기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책의 머리말을 통해 “영웅을 기리는 서사시가 아닌 보편적인 행복을 꿈꾸고 사람을 대하는 가슴의 온도가 따뜻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밝힌 임 작가. 그는 글을 쓰느라 잠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줄여 몸무게가 8kg까지 빠졌다고 고백했다. 오기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 작가는 한때 야구 기자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야구 오패>와 류현진 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생각이 많으면 진다>를 펴내기도 했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를 비롯해 동양철학 책도 여러 권 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월 25일, 서울 안암역 근처 카페에서 임건순 작가를 만나 그의 오기 사랑과 이 시대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인터뷰는 특별히 한국한시를 전공한 <삼국지 인물전>의 저자 김재욱 작가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김재욱 작가는 평소 임 작가의 글을 자주 보고, 강의할 때 자주 인용한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기자가 바라본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연예인과 팬’의 만남 같았다.

   
▲ 임건순 작가 ⓒ투데이신문

◆ 오기, 역사가 숨긴 불쌍한 인재 

(김) 작가님은 지난해 8월,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라는 책을 냈고 석달 뒤인 11월에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를 출간했다. 글을 참 빨리 쓰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 아마 기자들은 저를 보며 ‘책을 찍어내는 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게다(웃음).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는 거의 한 달 만에 썼고 남은 한 달은 교정에 들어갔다. 몸무게가 8kg이 빠질 정도로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글을 썼다. 정말 힘들었다.

(김) 책을 낸 기분은 어떤가.

(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계약서를 받아들었을 때 너무 막막했다(웃음). 오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번역서만 있지 해설서는 없었다. 일본은 모르겠지만 중국은 확실히 오기에 대한 해설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이 대한민국 최초이자 전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오기 해설서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책을 ‘경제 경영’이 아니라 ‘인문서’로 분류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경영’으로 분류해야 강연을 나가기도 수월하고 많이 읽지 않느냐며 뭐라고 하더라. 하지만 돈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인문서로 분류했다. 선정을 권한 정치공동체의 사상가이자 철학가로서 오기를 조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해주고 따라준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김) 학부는 사회과학과 역사학 전공인데 석사를 ‘동양철학’으로 가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임) 중학교 때부터 동양고전에 흥미를 가졌다. 특히 채근담, 논어, 서유기 등을 좋아했다.

(김) 나도 서유기 좋아했다(웃음). 그런데 박사과정까지 밟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임) 일단 공부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고 당장 써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는데 박사과정을 하면 이런 것들을 못할 듯했다. 책은 집중력이 최대한 발휘됐을 때 놓치지 않고 써야 한다. 목차구성을 체계적으로 짰다 해도 이 시기를 놓쳐버리면 안 된다.

(김) 한때 야구 기자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임) 야구는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구기자로 일하게 됐다. 야구기자로 일할 때가 25살이었다. 당시 일하면서 얻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류현진 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생각이 많으면 진다>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쓴 것이다.

(김) ‘오기’라는 인물을 책으로 엮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임) 오기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좀 뚜렷하지 않나. 이렇게 캐릭터가 강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너무 이야기가 극적이기도 하고…. 그냥 어릴 때부터 오기 형이 좋았던 것 같다(웃음).

원래 <오자병법>이 48편으로 구성됐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한 것은 7편뿐이다. 왜 이렇게 많은 자료가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오자병법의 많은 부분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자료가 왜이렇게 많이 사라졌는지 생각해보면, 지배층들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제대로 보관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 작가님은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오기의 행적이나 상황, 성격, 성품, 활동 등을 왜곡했다고 하셨다. 이런 점에서 오기를 ‘역사가 숨긴’ 불행한 인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임) 당시 오기는 거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락 내리락했을 것이다. 이에 봉건귀족들이 꾸며낸 악성루머나 이야기를 사마천이 사기에 편입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사마천이 오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곽말약이 술오기(述吳起)라는 책에서 ‘중화민족 역사에서 마멸될 수 없었던 인물이 오기인데 봉건귀족들이 너무 곡필을 휘둘러 오기의 모습을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김)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오기가 조국 위나라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노나라로 도망갔으며 아내의 목을 쳐서 장수 자리를 얻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를 치르러 가지 않았다며 오기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가.

(임) <사기>에는 오기가 위나라에서 30명을 한꺼번에 무참히 죽인 뒤 노나라로 도망갔다고 묘사했던데 <한비자>에서는 다른 얘기를 하더라. 사람을 죽이고 간 게 아니라 위나라 공실과 갈등을 겪어서 노나라로 갔다고 말이다. 한 사람이 30명을 한번에 죽인다는 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앞에서 몇 명만 죽이면 다들 도망가 버리는데 과연 오기가 30명을 죽일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싶다.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오기는 부인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당시 노나라와 제나라가 전쟁하던 중, 노나라가 오기를 총사령관으로 삼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오기 부인이 제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그가 아내를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끼리 결혼을 많이 했으므로 ‘부인이 어느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안 했을 것이다. 단순히 오기 부인이 제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병권을 맡기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을 리가 없다. 설령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해도 부인을 버리면 됐지 죽일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부인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제나라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죽여서 부인의 목을 조정에 던진 뒤 ‘이제 제나라와 싸우러 가도 되겠냐’고 했다는 건 날조에 가깝다고 본다. 기록을 보면 오기가 부인을 데리고 다닌 흔적이 있고 자식도 낳는다. 재혼했다는 얘기도 없다. 위나라에서 오기가 전쟁을 잘하고 능력이 출중해 공주와의 결혼을 제안했는데 그는 이를 거절한다. 공주가 못생겨서 거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어쨌든 이런 점들을 미뤄볼 때 부인을 죽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김) 그렇다면 오기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임) 일단 오기가 증자의 제자였는지가 의심이 든다. 증자가 오기를 가르치진 않았을 것이다. 증자의 아들 증신(曾申)이 가르쳤다고 알고 있다. 증자는 동아시아에서 ‘효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증자의 제자라는 놈이 어머니의 상례를 안 치르러 가네. 당연히 증자가 오기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말을 지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사마천은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극화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하나의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 임건순 작가 ⓒ투데이신문

◆ 이순신 명언, 원래 오기가 한 말이었다 

(김) <오자병법>은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병서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손자병법>과 다르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임) 오자병법을 읽다 보면 지배층들이 싫어하는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와 있는 것 같다. ‘나부터 모범을 보여라’, ‘나부터 솔선수범하라’, ‘항상 민생을 챙기고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을 써라’, ‘누구든 공을 세웠으면 상을 주고 보상을 하라’고 주장한다. 이런 얘기는 지배층이 들었을 때 싫어할 만한 내용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한 말로 알려진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은 원래 오기가 먼저 한 것이다. 장수의 마음가짐과 정신을 다잡으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이는 병사들에게 목숨 걸고 싸우라는 말을 하기 전에 지휘관이 몸소 앞장서라는 의미였다. 이런 말을 듣는 지배층 입장에서 얼마나 뼈아프겠나. 이처럼 오기가 지배층이 싫어하는 말을 하다 보니 결국 <오자병법>이 초라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는 신분질서가 확고히 자리 잡힌 시대였으므로 <오자병법>은 환영받기 힘든 병서였다고 본다. 병법만 논한 것이 아니라 정치사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사대부들 눈에 그것이 곱게 보였을 리 없었을 것이다. 

(김) 이제 손자병법 얘기를 해보자. 손자는 전쟁을 ‘경제력의 싸움’이며 ‘속임수’라고 했고 오기는 ‘정신력’을 강조하며 ‘군대의 정예화’를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손자는 ‘전쟁에서 사람보다 세(勢)’를 중시한 반면 오기는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용기와 투지를 갖춘 정예 용사들이 승리를 만든다’라고 했다. 더불어 작가님은 오기 병법의 특징으로 ‘속도전’과 ‘격동’을 언급했다. 양자의 차이를 책에 서술하셨지만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임) 일단 손자는 절대 손해 보는 전쟁을 하지 않고 경제력을 중시했다. 그는 ‘패배보다 무서운 게 파산’이라면서 전쟁을 통한 경제력 손실을 우려했다. 손자는 군벌집안 귀족 출신이다 보니 병사를 아끼는 마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 오기는 항상 ‘병사를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하층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입장을 잘 이해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그는 병사를 가혹하게 다루거나 미끼로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손자는 전쟁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경우 병사를 몰아넣어 억지로 싸우게 했다. 또한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쓰라고 했으며 그들의 투지와 정신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기는 달랐다.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 억지로 싸우게 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손자는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우라고 했지만 오기는 불리해도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천민 출신이다 보니 공을 세워 신분을 상승하려는 욕심이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김) 그렇다면 두 사람의 비슷한 부분은 무엇인가.

(임) 오기 역시 손자처럼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쨌든 잘 싸우려고 하면 병사들을 잘 먹이고 잘 재워야 한다. 재충전을 제대로 시켜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쟁은 ‘경영’이다.

(김) 손자와 비교하니까 오기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는 오기의 병법서를 토대로 전국시대의 상황을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썼을 때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뒀나.

(임) 고전을 해설하는 사람은 역사적인 배경과 환경에 대해 잘 알고 이를 자상하게 서술해야 한다. 고전이 만들어진 시대와 현재의 시공간 차이는 크고 간극이 엄청나다. 이 간극을 메우려면 배경지식을 독자에게 상세하게 전해야 한다.

(김) 오기는 성공을 거뒀지만 하층민 출신과 기득권 계층의 시기로 인해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임) 사마천의 <사기>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면 오기로 인해 기득권을 빼앗긴 귀족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중국에서 쳐들어온다. 당시 오기는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았다. 왕의 시신을 지키고 정권 인수인계 작업을 무리없이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당시 귀족들이 오기에게 활을 쏘니까 오기가 왕의 시신에 엎드렸다고 한다. 결국 오기에게 쏜 화살이 왕의 시신에도 꽂혔고 다음 왕이 된 태자의 손에 화살을 쏜 귀족의 가문들이 멸문을 당했다. 죽을 때도 참 오기답게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 오기는 귀족의 학문인 유학(儒學)과 천민의 사상인 묵학(墨學)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오기는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에서 정치철학과 병법을 통해 전국시대 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출신이 비천했고 기득권 계층의 시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숨을 거뒀다. 역사에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 많은데 특별히 오기에게 연민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

(임) 사람이라면 다들 살고 싶지 않나.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오기는 초나라에서 정치가이자 재상으로서 백성을 생각하는 개혁을 많이 했다. 단순히 전쟁 영웅의 비참한 말로가 아니라 극적이면서도 비참하게 죽었다. 국왕의 시신을 지키고 정변을 막기 위해 죽기 살기로 저항했다.

무엇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던 사람이 죽음을 당한 거니까 더 슬펐다. 오기는 단순한 전쟁영웅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개혁가였다. 좌절된 개혁가의 꿈이 슬펐기에 더 연민을 느꼈고 감정이입을 한 것 같다.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 우리나라, 사회지배층만 있고 지도층 없어 

(김) 오기는 ‘올바른 정치를 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경제력이나 전투력의 각축’이라고 여기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이처럼 정치를 중시한 오기한테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본받을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임) 오기는 군사력을 극대화하기 전에 선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정을 통해 어떻게든 인민들이 사회지도층을 신뢰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볼 때 우리 사회는 사회 지배층은 있지만 지도층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 맞다. 그것 참 중요한 말씀이다.

(임) 오기는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민생을 챙기고 신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민들이 자신이 사는 나라와 사회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정이 우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김) ‘오기연저(吳起吮疽)’는 오기가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다는 사자성어다. 어쨌든 오기가 그만큼 병사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어려움을 함께 나눴고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걷고 짐을 드는 등 자신을 낮추며 솔선수범하는 인물이었던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현재 리더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임) 오기는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기회를 줘서 공을 세우게 하고, 공을 세웠으면 상과 함께 신분을 상승시켜주라고 했다. 신분에 관계없이 상을 주고 기회를 줘야 군사력이 강해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 나라 사회가 귀속지위만 있고 성취지위가 없으면 그 나라 사회는 쇠퇴한다.

오기는 병사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다.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려움을 나누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다. 그가 그랬듯이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자세는 항상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 이 책에서는 “국가든 군대든 ‘화(和)’가 중요하다. 화를 이룰 책임은 윗사람에게 있다, 국가의 일이든 군대의 일이든 이들이 하기 나름이다, 항상 무거운 책임감으로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 ‘화’가 오기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듯한데 오기가 강조한 ‘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우리나라 윗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달라.

(임) 오기가 말한 ‘화’는 단결과 하나됨을 뜻한다. 이처럼 정치 공동체도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고 본다. 화에서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이다. ‘저 사람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 말만 믿고 따라가면 이긴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내가 성장한다’ 등 이런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오기가 말한 ‘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김) 작가님은 오기와 흡사한 현대 인물로 한화 이글스 김성근 야구감독을 지목하셨다. 김성근 감독의 어떤 면이 오기와 흡사하다고 보시는지.

(임) 일단 커리어가 비슷한 것 같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어딜 가든 성과를 기가 막히게 내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해임당하고 쫓겨난다. 어찌 보면 인생역정과 성격이 비슷한 듯하다. 김성근 감독은 아랫사람들에게는 뭔가 챙겨주려고 하고 윗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꼬장꼬장하다. 이 역시 오기와 닮았다.

김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어떻게든 밀고 나가며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기 관리에 힘쓴다. 그는 지금도 항상 바벨을 들고 뛴다. “내가 운동을 안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김 감독이다. 선수들이 땡볕에서 훈련할 때도 앉아서 쉬지 않고 선수들을 계속 독려한다. 그러니 선수들이 요령을 못 피우는 것이다. 아울러 오기가 병사의 짐을 지고 함께 밥을 먹었듯, 김 감독 역시 그 나이에 운동을 하면서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한다. 동고동락하는 자세가 오기와 김 감독의 닮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랫 사람은 지도자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잘 실천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 임건순 작가 ⓒ투데이신문

◆ 사대부 의식, 동양철학 후퇴 가져온 듯

(김) 작가님은 동양철학 전공자로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를 썼다. 근데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동양철학을 선호하는 독자층이 두텁지 않고 그중 제자백가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 짐작한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이고 많은 사람들이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보시나.

(임) 왜 우리는 그동안 공자와 맹자만 얘기했을까. 아마 제도권 교수님들이 사대부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대부들이 제일 좋아한 게 누구였나. 공자와 맹자였다.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공자, 맹자, 장자, 노자만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공자와 맹자는 전통시대에 사대부들에게 자기개발서로서 애용되고 노자와 장자는 힐링서로 애용된 경향이 있다. 어쨌든 전통시대 사대부들이 그들을 좋아했고 현재 사대부의 자의식을 가진 제도권 교수님들 역시 그들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김) 맞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임)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겠지만, 사대부 의식을 가진 분(교수)들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좀 더 다양하고 균형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풍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버르장없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김) 현재 하시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달라.

(임) 올해 2~3권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책을 저술하고 틈틈이 강의를 나가고 있다. 단발성 강의가 많은 것 같다. 강연 보다는 길게 가는 강의를 해보고 싶다. 그렇게 길게 가는 강의를 많이 하면 단순히 소비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공부와 저술에도 무게 중심을 둘 것이다. 앞으로 비주류 사상가(묵자, 오기, 순자, 안자, 한비자) 시리즈를 완결 지으려고 한다. 묵자와 오기는 나왔고 그 다음이 순자인데 순자와 관련된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겼다. 지금은 ‘안자(晏子)’에 대해 쓰고 있다. 동양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내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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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오기는 국가를 추상적인 전체로서의 단일체가 아니라 ‘구체적 개인들이 모인 모두’라고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을 말했고 보상을 강조했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을 중시했으며 온 백성과 지배층 사이의 화합과 단결을 역설한 것입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하나의 개인과 사람을 향하고 이들의 마음과 심리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오기의 시각은 다분히 유가와 묵가, 특히 묵가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른바 잘 다스려진 군대란 평상시엔 상호 간에 예절을 깍듯이 지키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력이 막강해 공격을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더라도 적이 쫓아올 수 없습니다. 진퇴에 절도가 있고 명에 따라 좌우 이동을 일사불란하게 합니다. 설령 도중에 부대가 나눠지더라도 군의 진형을 유지하고, 분산될지라도 대오를 갖춥니다. 이는 상하가 동고동락해왔고 생사를 함께한 덕분입니다. 이런 군대는 하나로 움직이는 까닭에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적과 싸울 때 지치지 않으므로, 어디에서 싸우더라도 당할 군대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의 군대라고 합니다”

“오기는 승리의 요건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동원령을 내렸을 때 백성이 기꺼이 소집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부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향할 때 백성이 기꺼이 전쟁터로 나가 싸우도록 해야 한다. 백성이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세 요건을 ‘즐거워[樂]’하게 만들라고 합니다. 이를 각각 요문樂聞, 요전樂戰, 요사樂死라고 합니다”

-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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