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집이 어디세요?”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먼저 말 그대로 집이 어디인지 궁금하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지금 있는 위치에서 상대방의 자택 거리를 재보고 시간을 계산해 술자리를 더 이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혹 방향이 같다면 집에 같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이 어디냐’는 말은 다른 뜻도 갖고 있다. 상대방의 사는 수준을 짐작하기 위해 돌려 물어보는 것이다. 초면에 연봉이나 출신 학교 등을 물어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우회한 질문인 ‘집이 어디세요?’라는 말로 그 사람의 생활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만약 상대방이 어릴 때부터 대치동에 살았다고 답한다면 ‘학창시절에 공부하느라 고생깨나 했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강남에 산다고 하면 ‘집안 사정이 어느 정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갈 것이다.
 
그렇다면 잠실은 어떨까. 서울 송파구에 있던 주공아파트 대단지가 리센츠, 엘스,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등의 초고층아파트로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 잠실이다. 개발됐다는 것은 곧 토박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의 때가 묻은 주공아파트 대단지들을 갈아엎고 번쩍거리는 초고층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기존에 살던 일반 거주민들은 천정부지로 높아진 주거비용을 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좀 더 새롭고 윤택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잠실은 제2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됐다.
 
최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잠실동 사람들’이 세상에 나왔다. 제목을 보니 양귀자 작가가 쓴 ‘원미동 사람들’의 21세기 판이라는 느낌을 준다. 책을 몇 장 들춰보면 원미동에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써낸 그 책과는, 배경이 잠실동이라는 것과 소시민이 아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을 모델로 썼다는 것 빼고는 다른 점이 없다. 그리고 단순 취재만으로는 알 수 없었을 현장의 분위기가 문장마다 제대로 풍겼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쓴 작가가 누군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지난 2013년 여성 헤드헌터의 눈으로 학벌주의사회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 본 소설 ‘모던하트’가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가는 ‘정아은’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두 번째 소설 ‘잠실동 사람들’을 펴냈다.
 
정아은 작가가 쓴 ‘모던하트’와 ‘잠실동 사람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현실을 내보이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액세서리는 각종 명품으로 도배를 했는데 정작 입고 있는 옷이 내복뿐이라는 느낌으로 우리 세태를 표현했다. 소설 속 문장 하나하나에서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아주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정아은 작가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정아은 작가와 지난달 가로수길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와 인터뷰를 했던 날은 며칠 동안 내리 춥다가 겨우 따뜻한 기운이 돌았고, 인터뷰 내내 정아은 작가는 함께 마셨던 과일주스처럼 활기가 넘쳤다.
 
   
▲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투데이신문
쓰고 또 쓴 지 6년, 결국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 성공
 
Q. 등단한 소설인 ‘모던하트’ 이후 두 번째 소설인 ‘잠실동 사람들’이 나왔다. 상을 탄 이후로는 첫 소설인데 소감을 듣고 싶다
- ‘잠실동 사람들’을 준비하면서 부담이 컸기 때문에 이렇게 소설이 무사히 나온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뿌듯하다. 사실 ‘모던하트’는 응모작이었고, 이전에도 무수히 공모전에서 떨어져봤기 때문에 마음을 편하게 먹고 썼다. 또 ‘모던하트’는 한 명이 이야기를 쭉 풀어나가는데 ‘잠실동 사람들’은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각 인물들의 심리를 생각해보고 써야했기 때문에 구상할 때 조금 힘들었다. 무엇보다 문학상을 탄 이후에 나오는 작품이 작가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더라. 웬만큼 좋은 작품이 아닌 이상 내지 않는 게 더 낫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굉장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를 써나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 내가 굳이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아도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스스로 살아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도 했으니까.
 
Q. 한겨레문학상에 투고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그동안 헤드헌터로도 일하고 번역도 했던데 소설가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책과 관련된 일, 예를 들면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는데 경력이 없으니까 당연히 뽑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더니 번역을 하면 나중에 번역가가 직접 기획해서 출판사에 제안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굉장히 어려웠다. 단순히 영어 실력이 좋다고 해서 번역을 잘하는 게 아니고, 뒤따라오는 자료 조사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대여섯권을 번역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을 할 때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추측하면서 이렇게도 써봤다가 저렇게도 써봤다가 하는데, 차라리 내 글을 쓰자는 생각을 한 거다. 그렇게 소설 하나를 써서 어떤 문학상에 보냈다. 사실 그 전에는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한 번 써보자’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처음에 냈던 소설이 본선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 썼는데…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한겨레문학상에는 마지막으로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던하트’를 낸 거다.

소설을 포기하려던 시점에서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됐으니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기존 문학상 당선작들을 보면 기성 작가들도 본인의 색깔을 잠시 지운 채 좀 더 실험적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아은 작가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러한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딛고 당선됐으니 기쁨은 더욱 컸을 것이다. 정아은 작가는 “신선하고 실험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등단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Q. 그렇게 쓰고 또 쓰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던 시간이 무려 6년이라고 들었다
- 본선까지 갔다가 떨어졌을 때 들었던 말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완성도는 높지만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형식을 파괴하거나 실험적인 소재로 글을 쓰지 않는다. 가장 일상적인 주제를 두고 글을 쓴다. 또 사소해보이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끌어내는 소설에 끌린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도 박완서다. 그래서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문학상을 타는 데는 그게 가장 문제가 됐다. ‘나는 등단을 못하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포기가 안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보니 떨어졌는데도 글을 또 쓰고 있더라.
 
   
▲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투데이신문
인고의 시간이 지난 후 결국 정아은 작가는 문학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본 ‘모던하트’와 두 번째 소설 ‘잠실동 사람들’을 꿰뚫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다. ‘모던하트’에서는 헤드헌터인 주인공 미연이 이직하려는 사람들을 학벌을 기준으로 그룹을 나눈다. 이를테면, A사는 명문대 출신만을 요구하는데 B씨는 이곳으로 이직을 원한다. 그런데 학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완벽한 B씨는 출신 학교가 A사가 원하는 수준보다 조금 못 미친다는 이유로 미연은 B씨가 탈락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결국 B씨는 A사에 합격하지 못했다. ‘잠실동 사람들’에서는 ‘모던하트’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는데,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교육에 매달리는 엄마들을 그렸다.
 
SKY만 나오면 탄탄대로… 연고주의 타파해야
 
Q. 신간인 ‘잠실동 사람들’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도 같은 목표, 바로 명문대 타이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에게도 해당된다. 각자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상위권 대학, 일명 SKY를 나왔다고 하면 나머지 인생이 다 보장이 된다. 해당 대학을 졸업했다는 증명이 되면 그들만의 리그에 가입됐고, 인생이 탄탄대로였다. 결국 엄마들이 내 아이를 그 그룹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학벌주의가 타파되기 위해서는 전관예우부터 없애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판사를 하다가 퇴직하더라도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고, 판사 타이틀을 걸어만 놔도 상당한 돈을 번다고 하더라. 모두 연줄을 이용한 것 아닌가. 결국 명문대를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그 연줄을 잡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연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평생 기득권을 누리고 살고 싶어 한다. 이때까지 우리나라가 그래왔다. 그래서 사실 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것 정도로는 타파될 수 없다. 물론 소설에서는 교육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뒀지만 결국 우리 사회에서 얽히고 얽혀있는 연고주의를 단편적인 한 장소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Q.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잠실동 사람들’에 나오는 엄마들은 부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모두 돈, 학벌 등과 관련한 속물근성을 갖고 있다
-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나를 반영한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욕망들을 끄집어내서 인물을 만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굉장히 배려심이 깊고 온화하던 사람도 내 아이 앞에서는 이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나만 해도 그렇다. 어떨 때는 사교육을 정말 많이 시키고, 또 어떨 때는 어릴 때 놀아야한다면서 사교육을 하나도 안 시키기도 하고… 참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너무 한심했다. 사실 사교육을 시킬 때는 너무 많이 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고 안 시킬 때는 ‘내가 이 아이의 기회 하나를 뺏은 것은 아닐까’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변의 엄마들이 다 그렇더라. 어떤 엄마도 ‘나는 얘 공부만 미친 듯이 시킬 거야’라고 하지 않고, ‘놀게만 할 거야’라고도 하지 않는다. 결국 끝에는 아이들의 입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입시를 잘 치르게 하려는 엄마들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 그렇게 나를 비롯한 엄마들 마음에 조금씩 속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봤고, 그것을 하나하나 형상화해 인물을 만든 것이다.
 
강남, 실체 없는 상상의 공동체
 
Q. ‘잠실동 사람들’은 마치 21세기 ‘원미동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들은 서민 중에 서민이고 잠실동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잠실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사실 대치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곳은 너무 성격이 뚜렷하다. 인물을 표현할 때도 선악을 모두 담아야 입체성이 있고 더욱 재미가 있는 법인데, 대치동은 교육 외에 어떠한 특색이 없다. 그래서 교육부터 사회문제까지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잠실을 배경으로 했다. 한편으로는 처음에 교육이라는 주제를 갖고 글을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잠실의 공간사(史)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끌림이 있었다. 잠실은 5층짜리 낮은 아파트 단지를 다 헐고 30층짜리 고층아파트로 가득 채운 곳이다. 아마 조만간 서울이 전부 이런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지금 잠실 일대의 스카이라인은 상당히 높아졌다. 제2롯데월드가 생기면서 스카이라인은 더 ‘환상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굉장히 완만했던 이 라인이 지금 이렇게 한 눈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높아졌는데, 그 변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옛날 도시계획서를 많이 읽어봤는데,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잠실을 대대적으로 조성할 때 원래(잠실 주공 1~4단지는 5층, 5단지는 15층)보다 더 높게 지으려 했다고 한다. 잠실 주공 1~4단지도 5단지처럼 15층짜리로 하려 했는데 건축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15층 같이 아파트를 고층으로 올리면 어린이들의 심리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30층짜리 건물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결국 모두 재개발로 인한 환급성만 따지고 있는 거다. 그래서 잠실이 서울, 또는 대한민국의 거주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서 소설에서 표현하기 좋다고 생각해왔다.
 
   
▲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투데이신문
이렇게 잠실이 분명한 특징을 갖고 있어서 소설을 썼다고 했지만 사실 정아은 작가는 실제로 잠실에 6년 동안 머물렀다. 본인이 잠실 속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겪어서 그런 것인지 소설 속에서는 현실감이 뚝뚝 묻어져 나온다. 정아은 작가가 생각하는 잠실은 어떻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Q.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모두에서 지하철 2호선 신천역 근처 잠실동 아파트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정아은 작가에게 잠실이란 어떤 곳인가
- 잠실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집과 주거지의 개념이 바뀌었다. 나는 잠실에 대규모 거주단지가 생길 때부터 살았고 이후 잠실이 변화하는 모습까지 봤다. 처음에는 잠실이 이렇게 부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주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를 준 것도 바로 잠실이었다. 옛날에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모습은 그때와 강하게 대비된다. 잠실을 통해서 주거형태에 따라 얼마나 문화가 바뀔 수 있는지, 소비형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
 
Q. 소설 속에서 엄마들이 지향하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강남’이라는 말은 굉장히 포괄적으로 쓰이는데 구체적으로 ‘강남’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 이렇게 질문이 들어오는 것처럼 ‘강남’은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의 공동체라고나 할까. 물론 소설 속에서 엄마들이 관심을 가지는 강남은 대치동이다. 학원이 많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치동에 가보면, 뒤편에 있는 빌라단지들은 잠실 아파트보다 집값이 낮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부분 건물주들보다는 입시기간만 견디려는 기러기 엄마, 아빠들과 아이들이 살고 있다. 대치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수도에서는 녹물이 나오는 낡은 아파트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그 몇 년을 버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사람들을 ‘강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행정구역상 강남이라고 불리는 곳도 사실 유사 강남의 성격을 갖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이라는 게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첨단과 세련됨의 극치인 강남은 곧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Q. ‘잠실동 사람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굉장히 현실적인데, 소설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 집중적으로 한 명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라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그 친구가 말해주는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이 있어서 그 사건을 모티브로 중심 줄거리를 잡았다. 그리고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권은 너무 약해졌고 옛날과 다르게 학생들의 태도 등 상황이 변했는데, 교육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교사들이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교육 이야기에 더 힘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교육과 관련이 있다. 엄마들을 제외하더라도 대학생도 나오고, 대학교수를 잠깐 했던 사람도 있고 학원에서 상담하는 20대 여성도 있다. 그렇게 인물 구도를 하나하나 잡아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Q. ‘모던하트’와 ‘잠실동 사람들’ 모두 전형적인 해피엔딩은 아니다. ‘모던하트’에서는 주인공 미연이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결혼/일의 성공)을 잡지 못했고, ‘잠실동 사람들’도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흐지부지되면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소와 같은 하루가 지나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일부러 이런 결말을 내는 것인가
- 소설이라는 게 어떤 지침을 주거나 가르치는 교과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현실을 보여주는 거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지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내가 남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소설을 보면 그 사이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그래서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이렇게 살아야 성공해’라는 자기계발서 같은 역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다. 모든 변화는 깨달음에서 시작되지 않나. 그런데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하면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현실에 가까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읽는 사람들이 ‘아, 이게 우리의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거대한 체계에 순응했을 뿐
 
‘모던하트’와 ‘잠실동 사람들’로 이제야 두 권의 소설을 세상에 내보인 정아은 작가. 정아은 작가는 “소설을 발표하고 나면, 이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라며 “독자들은 각기 놓인 상황에 따라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차이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무엇보다 본인 삶의 영역을 소설화시켰기 때문에 정아은 작가도 일종의 독자인 셈이었을 테니 다른 사람은 소설을 읽고 어떻게 느꼈을 지 더욱 궁금했을 것이다.
 
Q. ‘잠실동 사람들’을 내고 가장 마음을 울린 독자의 반응이 있는지
- 내 의도와 정확하게 맞았던 분의 서평이 하나 있었다. 본인을 미혼여성이라고 소개하면서 ‘옛날에는 사교육에 열 올리면서 몰려다니는 엄마들을 보고 비난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엄마들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됐고 우리나라 엄마들의 삶을 연민하게 됐다’고 하더라. 사실 나도 작가이기 전에 엄마, 그것도 잠실동 엄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엄마들 치맛바람 때문에 교육이 망한다’면서 엄마들, 더 나아가 여자를 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엄마들은 그저 학벌주의, 연고주의로 얽힌 대한민국 체계의 가장 끝에 서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저 체계 속에서 잘돼보고자 발버둥치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엄마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독자들은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따라 이야기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들은 ‘엄마들 이야기를 더 써야지. 대학생 이야기를 왜 넣는 것이냐’고 말하고 조금 더 어린 독자들은 대학생이나 어학원 상담원의 상황에 눈물이 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게 소설가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투데이신문
이러한 정아은 작가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사실 나도 이 소설을 읽고 엄마들이 가여웠다. 특히 자신이 자랑할 만한 점이 있는데도 겉보기에 더 잘난 것 같은 이웃 엄마들에게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지환엄마 캐릭터가 가장 마음 아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각자 장점이 있는데 남들보다 부족한 점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들이 참 안쓰럽더라’는 소감을 전하자 정아은 작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워요”라며 “엄마를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줄 수 있게 됐다는 말이 가장 반갑더라고요”라고 전했다.
 
Q. 작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엄마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엄마다(웃음). ‘잠실동 사람들’에 나오는 엄마들 중에서 어떤 엄마와 가장 비슷하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여기 모든 엄마가 전부 다 나다. 남들 하려는 거 다 쫓아가려는 지환엄마도, 애들은 어릴 때 놀아야 한다면서 예체능 교육만 시키는 경훈엄마도 다 내 모습이다. 어떨 때는 미친 듯이 사교육을 시켰다가, 놀아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면서 아무 것도 안 시키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도 사교육을 안 시키면 대학을 못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딱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엄마 모습을 갖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큰 게 아니다. 대통령을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이 자기 먹고 살 것을 스스로 벌 수 있을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먹고 살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다. 대학생들이 졸업한 후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고 하지 않나. 너무 비인간적인 사회니까 불안함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더더욱 구체제의 주류로 내 아이를 밀어 넣기 위해 용쓰는 것 같다. 
 
다음 소설은 구상 중… ‘토지’ 같은 대하소설 쓰고파
 
Q. 앞서 발표한 두 소설이 모두 세태를 다뤘는데, 다음에 나올 소설이 기대된다.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지
- 연속으로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쓰다 보니 스스로 마음이 깎여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볍고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기도 하고, 다소 무거운 주제인 분단과 관련한 소설을 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둘 다 작업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둘 중 마음에 확 꽂히는 게 없어서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정아은 작가는 어릴 때부터 역사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완서 작가가 풀어 놓는 담담하고 매끄러운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역사소설도 사랑해 마지않는다고. 작가가 된 이유도 언젠가는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 역사소설을 쓰고 싶어서였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해방 전후 50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일제강점기와 해방 시기에는 아직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가 많고, 우리나라가 분단에 놓여있기 때문에 금기시돼 묻혀 있는 이야기도 많을 거예요. 이런 내용을 하나하나 캐내서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데 언제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직은 내공이 한참 부족해서…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저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태소설 작가로서 진중하게 자신의 문학 세계에 대해 설명하던 모습과 대한민국 엄마로서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은 모습을 모두 보여준 정아은 작가. 앞으로 한국 문학사에 정아은 작가가 남길 발자국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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