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지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JTBC의 인기 예능프로 <냉장고를 부탁해>는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 경합을 벌이는 구도이다. 이 때 셰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요리 재료는 오로지 출연한 게스트들의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신선한 재미를 자아낸다. 제작진은 게스트의 집에서 냉장고를 통째로 뜯어와 세트장에 고이 모셔다놓는 엉뚱한 재치를 발휘하여, 남의 집 냉장고를 활짝 열어놓고 샅샅이 탐사하는 관음증에 가까운 재미까지 선사한다.

냉장고 속 재료는 게스트의 성별, 가족구성, 취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내용물은 가지각색일지언정 모든 냉장고에 공통점이 있다면 재료의 ‘부패’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작은 냉장고든 신형 냉장고든 불문하고 제아무리 신선한 재료라도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겉봉을 뜯은 채 방치하면 꼼짝없이 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냉장고 속에서 벌어지는 부패는 놀랍게도 상온의 그것과는 다른 모종의 ‘신선함’을 갖고 있다. 즉 부패는 아주 천천히 은밀하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부패’ 자체의 보존이 가능한 것이다. 냉장고에 저장된 것들은-부패마저도-지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오랜 삶과 역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의 <실종자>(책세상, 2005)는 전쟁 피난 도중 실종된 형 아놀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와 그 과정에서 외려 제 입지를 잃어가는 주인공 ‘나’의 지난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살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편 아버지는 식료품 소매업에서 정육 도매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가계경제의 부흥을 일으킨다. 이 부흥의 핵심에 바로 냉장고가 놓여 있다. 식료품업의 영원한 근심이란 곧 팔리지 않는 식료품의 부패에 대한 불안과 우울인 바, 아버지는 신선한 고기와 소시지를 오래 더 많이 보관하기 위해 개인 소유의 냉동 창고를 설립하여 그러한 근심을 정면 돌파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놀드를 찾는 일은 지지부진하여 어머니의 우울은 깊어만 간다.

아버지의 냉동 창고에 신선하게 보관되는 것은 고기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우울이기도 한 셈이다. 고기는 아무리 신선할지언정 ‘죽은 살’이라는 그 본질은 변치 않는다. 냉장고 속 또한 본질적으로 죽은 것들이 영속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되살아날 수 없는 것들의 삶을 부지하는 것보다 허무한 것은 없다. 때문에 고기의 저장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어머니의 우울도 깊어진다는 작품 내부의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다.

한편 아버지는 돼지를 갓 잡은 날이면 신선한 고기를 집으로 가져오고, 어머니는 이를 가지고 갖가지 성찬을 만들어 유쾌하고 푸짐한 축제가 벌어진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광란의 잔치를 기꺼이 즐기는 와중에도 항상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고, 손님들 또한 왁자하게 떠들다가도 돌연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것으로 번번이 축제는 끝이 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축제와 같은 ‘오락divertissement’에 골몰하는 것이야말로 우울함으로부터 거의 유일하게 우리를 위로해준다고 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에 이르게 하는 오락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처럼 인간의 유흥에는 허무와 우울이 항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1주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TV의 오락에 열중하거나 식도락에 탐닉하는 일상의 패턴을 고수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나아가 그들 중 일부는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냉장고 속에서 서서히 상해가는 음식을 망각한 채 거실에서 축제를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파스칼의 논리를 따르면 그러한 유흥이야말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비참misère이라 할 수 있다. 망각의 축제가 무르익는 만큼 허무도 그 풍미를 더해만 갈 것이니.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재료를 구제하여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요리를 뚝딱 만들어낼 때이다. 정부와 언론의 왜곡된 논리에 어린아이처럼 부화뇌동하며 유가족을 욕되게 하는 무뢰한 일부 시민들이 인간에 대한 존엄보다 상위의 가치는 없음을 깨닫고 환골탈태하는 극적인 순간을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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