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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한다”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브르만은 노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각기 역할과 모양이 다르지만 우린 ‘노동자’라는 탈을 쓴 채 살아간다. 가정을 위해, 자식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에는 귀천이 없는 것이다.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동, <투데이신문>은 ‘땀으로 쓴 노동일기’라는 코너를 통해 노동자의 하루를 체험한 기획기사를 연재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아파트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사람들,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하루를 담았다. 고작 하루 노동 체험으로 그들의 삶을 전하는 것이 무리임을 고백한다. 그래도 고단한 노동의 민낯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취재원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5월 4일 오전 8시, 날씨는 맑고 화창.

도시락 들고 소풍 가고 싶은 날씨였다. 하지만 기자는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날 노동 취재를 도와줄 아파트 청소노동자 김순자(76) 할머니와 함께 경기도 A시 B동에 있는 K아파트로 향했다. 김 할머니는 출근을 하면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며 버스정류장이나 벤치가 보이면 무조건 쉬어가자고 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30여분만에 일터에 도착했다.

오전 8시 30분, 우리는 아파트 지하로 들어갔다. 따뜻하고 환했던 밖과 달리 지하는 허름하고 어두컴컴하며 습했다. 그곳은 청소 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이자 탈의실이었다. 미리 출근해있던 정순례(75)할머니와 윤복희(72)할머니는 아랫목을 내어주며 작은 담요를 건넸다. 지하라 그런지 내부는 춥고 습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바닥은 전기판넬이 깔려 있어 따뜻했다.

김 할머니는 지하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때 먹을 밥을 안쳤다. 특별한 손님이 왔다면서 평소보다 밥을 더 많이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할머니들의 수다 삼매경이 이어졌다. 군대 간 손자 얘기, 직장 다니는 자식 얘기가 주를 이뤘다.

일할 시간이 다 되자 정 할머니는 “자, 이제 꼼지락거려 보자”라고 외치며 작업복 조끼를 갈아 입었다. 윤 할머니는 전기판넬 온도를 낮췄고 김 할머니는 불을 껐다. 

“점심 먹을 때 봐요”

서로 인사하며 각자 담당하고 있는 아파트 동을 향해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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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계단 쓸고, 전단지 떼고, 난간 닦고….

오전 9시, 이제 노동의 시간이다. 김 할머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기자는 걸레가 담긴 큰 바구니를 들었다. 청소에 앞서 목장갑을 끼는 것은 필수였다. 102동에 들어선 할머니는 1층에 마련된 우편함에 꽂힌 전단지들을 빼냈다. 더불어 출입문과 벽에 붙여져 있는 광고지를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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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아파트 입구 문을 활짝 열고 바닥을 쓸었다. 학창시절 때 교실 바닥을 쓴 이후 처음 든 빗자루라 신기했다. 옛 생각에 잠기며 청소를 하는데 이내 손아귀가 아파왔다.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빗자루를 왼손에 들고 다시 쓸기 시작했다. 거의 다 쓸어서 먼지를 쓰레받기에 담으려던 찰나, 갑자기 출입문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닌가. 평소 같았으면 시원하다고 좋아했을 테지만 그 봄바람은 모여있는 먼지를 사방팔방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먼지는 온 몸에 향수처럼 뿌려졌다. 인상을 찡그리며 입에 들어간 먼지를 ‘퉤퉤’거리며 뱉으니 할머니가 웃었다.

할머니는 걸레를 들고 아파트 출입문을 닦았다. 이어 그녀는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바닥을 쓸었다. 아울러 층 버튼부터 시작해 거울, 손잡이, 벽 등 이곳저곳을 걸레로 세심히 닦았다. 1층 청소가 끝나자 할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맨 꼭대기인 10층으로 이동했다. 10층에 도착하자마자 계단을 쓸며 다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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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의 끝을 잡고 쓸면 힘이 많이 들어가니 좀더 내려 잡으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의 잔소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구석구석 제대로 안 쓸리고 있다며 빗자루를 뺏어들고 다시 시범을 보였다. 청소에도 꼼꼼함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사이 할머니는 난간 손잡이를 걸레로 닦으며 내려갔다. 우리는 10층에서 1층까지 쉬지 않고 내려가며 청소했다. 그냥 내려가도 힘든데 청소까지 하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바로 옆 동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는 주로 담배꽁초와 과자 봉지였다. 이윽고 103동에 도착했다. 이전과 다름없이 우편함에 꽂혀 있는 전단지를 뺐다. 두 동을 거쳤을 뿐인데 바구니에는 어느새 전단지와 광고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빗자루로 바닥을 쓸며 내려갔고 기자는 걸레로 난간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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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우리는 잠깐 쉬기로 했다. 바구니에서 두툼한 책자로 만들어진 광고지를 꺼내 계단 바닥에 깔고 앉아 숨을 돌렸다.

“날씨 참 좋네~”

햇볕을 쬐던 할머니는 목장갑 낀 손으로 박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내 우리의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아파트 앞에 핀 꽃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대로 누워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자가 “1시간 정도만 일했는데도 쉽지 않다”며 엄살을 피우니 할머니는 “나는 날마다 요러고 다녀”라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 김순자 할머니는 5층짜리 아파트 동 5개와 10층짜리 아파트 동 3개를 담당하고 있다. 청소는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면서 전단지 떼기, 계단 쓸고 닦기, 계단 난간 닦기, 신주 닦기 등을 한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대략 80만원 선이다. 

10분간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저층 아파트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기에 두 발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층 수가 적긴 했으나 계단을 오르는 게 만만치 않았다. 마치 청소도구를 들고 등산하는 느낌이랄까. 3층쯤 올라가니 할머니가 난간을 붙잡으며 굽은 허리를 폈다. 어쨌거나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5층부터 한 층씩 내려가며 청소를 하는데 2층쯤 다다르자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풍겨왔다. 배꼽시계의 알람이 거세게 울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11시 20분. 조금만 참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바닥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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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0분경, 우리는 전단지가 가득 쌓인 바구니와 청소도구를 들고 점심을 먹으러 지하 휴게실로 향했다. 전단지가 든 바구니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은 멀었다. 전단지를 분리수거함에 넣고 청소하며 모은 각종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렸다.

지하 휴게실에 도착해 장갑을 벗어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손을 씻은 뒤 밥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휴게실 안은 갓 지은 밥 냄새로 가득했다. 휴게실 입구에서 두 할머니의 수다 소리와 함께 웬 트로트 음악이 들렸다. 알고 보니 윤 할머니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그녀는 일할 때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일한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미리 챙겨온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윤 할머니는 특별히 아껴둔 조미김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점심 메뉴는 김치 한 포기와 두부조림과 버섯볶음, 무생채, 부추무침이었다. 할머니들은 각자 싸온 반찬을 함께 나눠먹었다.

김 할머니는 밥을 펐고 윤 할머니는 손으로 김치를 쭉쭉 찢고 있었다. 윤 할머니는 “나 손 씻었어”라고 말했고 다른 할머니들은 “그래, 손으로 찢어야 맛있지”하며 김치를 달라고 밥그릇을 내밀었다. 기자의 뽀얀 밥 위에도 새빨간 김치가 올라왔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12시 20분, 할머니들은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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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과 콜라의 대화… “월급날이 제일 기분 좋아”

기자가 간식으로 사온 초코파이와 콜라를 꺼내 할머니들에게 권하니 “괜찮아. 우린 밥 먹으면 군것질 생각이 안 나. 역시 젊은 사람이라 다르네”라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대신 그들은 뜨거운 숭늉을 호호 불어마셨다. 정수기물을 받으려면 관리사무실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밥솥에 숭늉을 끓여 마신다고 했다.

숭늉을 든 할머니와 콜라를 든 기자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힘이 드니까 누워서 대화하자는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수첩을 들고 세 할머니를 따라 납작 엎드렸다.

일할 때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세 할머니는 동시다발적으로 “신주 닦는 것”이라고 했다. 신주에 음식물 찌꺼기 등이 떨어지면 금방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또 빗자루질이나 걸레질은 힘이 덜 들지만 신주는 쇠라서 윤이 나게 닦아야 하기에 힘이 많이 들어간단다. 신주란 계단 끝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놋쇠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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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아파트 청소를 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정 할머니는 “예전에 아파트 계단에서 소변을 본 적도 있어. 토사물을 본 적도 있고”라며 한탄했다. 조용하던 윤 할머니도 입을 열었다. 그녀는 “누가 음식물을 들고 나오다가 신주에 김칫국물을 떨어트리게 되면 쇠의 색이 죽어. 그럼 아무리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아도 신주가 까매지지”라며 “아파트 계단에 가래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라고 전했다.

그러다가 월급 이야기가 나왔다. 김 할머니는 “돈 안 나오면 누가 이 일을 허겠어. 그러니까 힘들어도 참는 거지. 월급날이 제일 기분 좋아”하며 웃었다. 정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해. 자식들 눈치 안 보고 내가 돈 벌어 마음대로 쓰니까 좋지. 그 맛에 일하는 거야”라고 보탰다.

세 할머니는 졸음이 쏟아지는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질문을 멈췄다. 이내 모두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어

오후 1시, 김 할머니가 졸고 있던 기자를 흔들어 깨웠다. 이미 밀대와 걸레, 바구니를 챙기고 장갑까지 낀 채로. 오후에는 밀대로 계단 바닥을 닦기로 했다. 지하 휴게실 한쪽에 마련된 대야에 물을 받아 세제를 풀어 밀대를 빨았다. 할머니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밀대를 들고 105동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동이라 밀대를 들고 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을 머금은 밀대는 말랐을 때보다 무거웠다. 이윽고 5층 정상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천천히 내려가며 밀대로 계단을 닦았다. 밀대는 금세 더러워졌다. 간혹 음료수나 음식물을 흘린 곳이 있으면 발로 비벼가며 벅벅 닦았다. 그녀는 더러워진 밀대를 들고 수돗가에서 빤 뒤 다시 106동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파트 두 동을 더 돌며 노동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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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0분,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씩 휴게실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밥솥에 담긴 미지근한 숭늉을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날 마신 물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허기가 진다는 할머니들과 함께 센베이과자와 초코파이를 먹었다. 

오후 4시, 하루 노동의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다. 세 할머니는 아파트 입구에서 서로에게 “오늘도 수고했네”라며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눈부신 햇살이 퇴근하는 할머니들의 굽은 등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기자의 한마디] 손녀뻘 되는 기자가 귀찮게 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할머니 세 분께 감사드린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기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사가 세상으로 나올 때 신문과 센베이과자를 들고 찾아가기로 한 약속, 꼭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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