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극단 연우무대

해고노동자 손배가압류 문제 중심으로 극 전개
안산 반월공단 배경으로 세월호 참사도 다뤄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우리는 자본이 가난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업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초연돼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연극 <노란봉투>가 지난달 3일 첫 공연을 시작, 이달 10일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극 <노란봉투>는 시민모임 ‘손잡고’와 더불어 극단 연우무대가 공동 제작했다. 우리나라 창작극계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극단 연우무대는 <장산곶매>,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일곱집매> 등을 올리며 시대의 길목마다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손배가압류 문제를 알리는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보복성 손해배상과 가압류 현실을 알리고 법제도 개선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진정한 노동예술극으로 칭송받고 있는 <노란봉투>는 안산 반월공단을 실제 배경으로 두며 비정규직과 해고 문제, 세월호 참사 등을 다룬다. 이 작품은 파업으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벨로우즈를 제조하는 SM회사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배경으로 극은 전개된다. 벨로우즈란 엔진과 배기통을 연결하면서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자동차 부품이다. 이 작품은 자동차 부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사는 노동자들의 한과 절규를 세밀하고 현실감있게 표현했다.

파업이 끝난 이후와 손해배상소송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모습을 다루는 <노란봉투>. 이 연극은 SM회사 노동조합원인 ‘지호’와 ‘병로’가 파업과정을 이야기하는 가상 생방송 인터뷰로 시작된다. 병로는 비정규직으로 해고를 당했고 7억원의 손배소 배상금이 확정된 노동자다. 그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노조사무실에서 지낸다. 그의 단짝 친구인 지호 역시 회사에서 해고된 뒤 손배소 배상금 5억원이 걸려 있다.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고 있는 두 사람 앞에 ‘강호’가 등장한다. 강호는 파업기간 중, 회사의 편에 선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입은 유니폼이 해고자와의 괴리감을 확연히 보여준다. 강호는 한때 즐겁게 일하며 부대꼈던 동료를 만나기 위해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지만 강호를 대하는 병로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 ⓒ 극단 연우무대

그러던 어느날,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1분. 노동조합 사무실로부터 안산 단원고 학생 등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됐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그러나 ‘전원구조’ 뉴스가 보도되고 노동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잠시 후 안타깝게도 그것이 오보로 밝혀진다. 며칠 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민성’은 결국 회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실 민성은 병로를 조합으로 이끌었던 회사 선배다. 민성은 어마어마한 손배소 배상금을 떠맡게 되자 조합을 탈퇴하고 회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식을 잃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민성의 발인을 앞두고 많은 해고자들이 장례식장을 찾아가지만 그와 가장 친했던 병로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가지 못한다.

어쩌면 현실은 연극보다 더 참혹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3년 1월,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항거하며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조위원장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해 10월에도 한진중공업 김주익 위원장이 129일간 고공농성을 하다가 자살했다. 더불어 지난 1월 16일, 스타케미칼 해고자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1심에서 대구지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사측은 농성 중인 해고자들에게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역시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회사와 국가가 청구한 47억원의 손해배상 폭탄을 맞았다. 그 외에도 철도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등이 손배가압류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때문에 힘겹게 살고 있다.   

   
▲ (상단)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공농성하는 모습, (왼쪽 하단)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해고자 천막농성 현장, (오른쪽 하단) 비정규직법 제도 전면 폐기 촉구하며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관계자들이 오체투지 행진하는 모습 ⓒ뉴시스

현재 정부와 기업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폭탄을 퍼붓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을 나오거나 퇴사를 하면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철회하겠다고 회유한다. 해고도 모자라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한다. 가정이 산산조각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재판부는 합법적 파업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계약 위반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여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안긴다. 이를 두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웬만한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반노동적 법집행과 법해석”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헌법상 권리인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청춘 바쳐 일했던 회사는 그들을 외면한다. 자본은 가난한 노동자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노동의 잔인함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어느덧 연극은 막바지에 이른다. 자본과의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머리띠를 동여맨 병로. 그 옆에서 강호도 힘을 보탠다. 이들은 철탑에 오르기로 한다. 잠시 후 현수막이 바닥에 깔리고 모든 인물이 흥겨운 음악에 따라 춤을 춘다.

극중 지호는 “월급 봉투였던 노란 봉투가 사람을 죽이는 해고 통지서가 됐다”며 절규한다. 노동자들의 슬픔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란 봉투. 그 봉투를 손에 쥔 노동자들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나 자신도, 우리 자식도, 그 다음 세대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극단 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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