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출근길 차창 밖으로 내다본 가로수 잎들이 진한 녹색빛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다. 짧은 봄날이 가고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온 듯하다. 필자는 하룻밤 꿈처럼 지나가는 봄을 담으러 지난 3월 초 2박3일 일정으로 진주, 사천, 삼천포, 거제, 통영 등 우리나라 남도를 둘러봤다.

서울에서 진주까지는 자동차로 약 4시간 10분정도가 소요됐다. 아침 8시경 출발해 가는 길에 함안휴게소를 들렀는데, 휴게소 한켠에서 고로쇠 수액을 파는곳이 눈에 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봄에 원기를 얻고자 마른 오징어와 함께 드시는 것을 종종 보았는데 필자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 진주 비빔냉면과 물냉면

함안휴게소를 지나 진주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점심을 먹기위해 들른 곳은 진주비빔밥과 진주냉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출발 전 지인이 추천한 맛집이기에 작정하고 들렀다. 진주비빔밥의 유래는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중엽 때 '채합식' 이란 말이 시초가 되어 삼국시대에는 지금의 진주지방에 '효채밥'이 유명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후삼국시대에는 '채혼밥'이라 불렀다고 한다. 진주비빔밥은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였으며 특히 태종 때에는 한양의 정승들이 비빔밥을 먹으러 진주에 자주 왔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민∙관∙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밥을 지어 나르면서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밥에 각종 나물을 얹어 비벼먹기도 했다. 채소와 육류 그리고 유지류의 배합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한 끼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균형잡힌 일품영양식으로 정평이 나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진주비빔냉면이나 물냉면은 고명으로 쇠고기전이 얹혀 나오는게 특징이다. 진주물냉면과 비빔밥은 8천원, 비빔냉면은 9천원이다. 하지만 명성과는 달리 비빔밥이나 냉면의 육수에서 깊은 맛은 느끼지 못한거 같다.

▲ 촉석루

점심을 먹고 들른 곳은 진주성 안의 촉석루와 국립진주박물관이다. 진주기생 ‘논개’가 바로 떠오르는 촉석루는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처음 건립됐으며, 세운 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그 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재건했으며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이뤄져 있다. 촉석루는 1593년 7월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 촉석루에서 승전연을 벌일 때 논개가 촉석루 앞의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 논개 사당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11월2일 개관하였으며 우리나라 전통목조탑을 석조건물로 형상화한 것으로 건축가 故 김수근 선생의 대표적 작품이다. 개관당시에는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경남 서부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이었으나, 1998년 1월 임진왜란 최대의 격전지인 진주성에 위치하고 있음을 강점으로 삼아 임진왜란사를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임진왜란사를 주로 다루다 보니 전시실을 올라가 보면 거북선과 판옥선 모형과 총통, 당시 왜군들의 조총 등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 진주박물관에 전시된 총통

촉석루와 진주박물관을 나와 향한 곳은 다래와인 갤러리로 근처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진주에서 20분거리에 위치한 산기슭에 터널을 만들어 와인저장고와 미술품 전시를 겸한 곳이다. 입구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맛이 괜찮으면 한병을 사서 맛도 볼수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와인은 대략 한 병당 2만원선에 판매하며 그밖에 비누, 벌꿀, 매실액기스 등도 판매하고 있다. 삼천포대교를 한번 둘러본 후 아구찜과 잡어회로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 삼천포대교

 

삼천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엔 동백꽃과 바다가 아름다운 거제도로 일정을 잡았다. 아침식사로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복국을 먹었다. 술로 얼얼한 속을 달래는데 복국만한 것도 없다. 숙취는 알코올이 분해되기 이전의 중간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내장에 응어리져 속과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를 뜨거운 국물로 풀어내는 행위가 바로 해장(解腸)이다. 복어는 간의 해독작용을 강화하고 숙취의 원인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좋은 메티오닌과 타우린 등의 함량이 높아 해장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일행이 찾은 곳은 2대째 영업하고 있는 곳으로 식당 이름도 ‘2대 복국집’이다. 이곳에서 복국을 주문하면 다양한 반찬들과 함께 밥이 담긴 비빔그릇이 나오는데, 복국에 들어있는 채소와 밥상의 반찬 몇가지를 넣어서 고추장과 비벼 먹는게 특징이다.

▲ 거제 포로수용소

복국으로 속을 달랜 후 거제포로수용소, 바람의 언덕, 맹종죽테마파크, 공곶이화원 등을 둘러보고자 거제도로 이동했다. 거제시는 삼천포에서 약 1시간 가량 소요된다.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제시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6.25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됐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국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가 수용됐다.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고 한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 회담이 개최됐으나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 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 막사,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현재 이곳은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 바람의 언덕

다음에 들른 곳은 바람의 언덕이다. 해금강 가는 길로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가면 도장포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의 북쪽에 자리잡은 언덕이 바람의 언덕이다. 이곳은 독특한 분위기와 탁 트인 바다 전망이 좋은 곳이다. 원래의 지명은 ‘띠밭늘’이었으나 2002년경부터 ‘바람의 언덕’으로 알려져 있다. TV드라마 ‘이브의 화원(2003년)’ ‘회전목마(2004년)’ 영화 ‘종려나무숲(2005년)’ 등의 촬영지였으며, 2009년 5월에는 KBS 2TV 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 촬영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거제도의 주요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2009년 11월에는 풍차를 설치해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오고가는 길에 바다속을 들여다보면 물이 맑아 그런지 수초와 물고기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 맹종죽 테마파크

다음 일정인 공곶이화원을 둘러보려 했으나, 시청 문화관광과에 확인한 결과 3월 초에는 피는 꽃이 많지 않다하여 다음에 보기로하고 맹종죽 테마파크를 방문했다. 맹종죽 테마파크는 해풍을 맞으며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테마로한 죽림테라피 공간이다. 바다와 예술을 접목시켜 경관이 빼어난 이곳은 고즈넉한 사색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죽림욕을 통해 심신을 치유할 수 있다. 맹종죽 숲에서 바람에 실려오는 대나무 내음을 코로 맡으며, 바람에 스치는 대나무잎사귀 소리를 귀로 들으며 잠시나마 나만의 사색에 잠겨 본다.

저녁식사는 통영으로 이동하여 숙소근처 횟집에서 신선한 회와 매운탕으로 해결하였는데, 필자에게는 회보다 곁들여 나오는 멸치회무침 맛이 더 일품이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이다. 오전에 통영시내를 둘러보고 점심식사 후 서울로 향하는 일정이기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도다리쑥국으로 아침 해장을 했다. 도다리는 봄이 제철이다. 육질이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생도다리에 쑥과 된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은 구수한 향과 담백함으로 나른해지고 입맛을 잃기 쉬운 봄철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다. 감생이, 먹딩이, 남좀바리, 배데미 등 무려 13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도다리는 회로 먹어도 일품이지만 도다리쑥국, 튀김 등으로 요리해 먹어도 맛있다. 특히 뼈채 썰어 먹는 막썰이는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아침을 먹고 향한곳은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이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미륵산(해발 461m) 8부능선에 위치한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는 1,975m로서 관광용으로는 국내 최장의 길이를 자랑한다. 2008년 4월 개통된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 바이 곤돌라 자동순환식 8인승 48대를 설치했다. 친환경적인 데크를 이용해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으며, 보석같은 섬들이 수놓아진 형언할 수 없는 쪽빛 바다의 장관도 느껴볼 수 있다. 도남동 하부정류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왼쪽부터 거제대교를 시작으로 통영항이 눈앞에 나타난다. 미륵산 정상에 오르게 되면 한산도를 비롯해 통영앞바다에 위치한 대부분의 섬을 파노라마처럼 둘러 볼 수 있다. 특히 미륵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10대경관이 유명한데 △일출과 일몰 △화산 분화구에 논과 밭이 얽혀있는 모양의 야솟골 △충무공 이순신의 충절을 기리는 한산대첩승전지 △기념물 제210호인 봉수대 △전 세계에서 통영시 미륵산에서만 자라고 있는 통영병꽃나무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항구도시인 통영시의 전경과 야경 △한려수도와 대마도까지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케이블카의 이용요금은 어른 10,000원, 소인(만4세 ~ 초등학생) 6,000원이며 운행시간은 하절기 기준으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 거북선 모형

다음의 일정은 이순신광장과 중앙전통시장이다.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이순신광장은 시민의 휴식처이자 야외공연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서울시가 해군에 의뢰하여 실제 크기로 복원한 거북선이 있다. 22억원의 제작비가 든 이 거북선은 당초 한강시민공원에 정박해 있다가 2005년 11월 16일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 전승지인 통영시로 옮겨졌다. 현재 강구안에는 3척의 거북선과 1척의 판옥선이 위용있게 정박돼 있다.

▲ 통영 중앙전통시장

이순신광장을 나와 우측을 바라보면 중앙전통시장 입구가 보인다. 남해안 최대의 수산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중앙시장은 통영시 중앙동 55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통영경제의 중심역할을 하는 이곳은 통영의 정서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명물시장이다. 뒤편 언덕은 동양의 몽마르뜨라 불리는 동피랑이 자리하고 있고, 시장 바로 앞은 강구안이라 부르는 포구가 있는데, 거북선과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으며 널찍한 문화마당은 옛날 조선 통제영 시절에 군점하던 병선마당을 연상케 한다.

해안선을 끼고 있는 중앙전통시장의 싱싱한 생선과 말린 생선이 관광객의 지갑을 유혹한다. 청정해역에서 갓 잡은 활어와 온갖 해산물이 즐비해 이곳은 항상 시장을 보러온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고무 대야에 담긴 성질 급한 물고기는 탈출하려고 파닥거리고 성질이 느긋한 물고기는 눈만 껌벅이며 연신 숨만 쉬고 있다.

우리일행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남해안 최대수산시장이라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건어물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찬거리로 쓰고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기에 좋은 멸치가 흥정만 잘하면 서울보다 매우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한편 통영은 통제영 시절 12공방이 있었던 관계로 나전칠기 제품과 누비제품, 바지게 떡 등이 남아있어 역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으로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행 차편에 몸을 싣는다. 남도의 봄 내음이 오래도록 잔향으로 남을 듯하다. 다음 기회에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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