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북콘서트에 가다

   
▲ (좌) 진은영 시인 (중) 정혜신 박사 (우) 이명수 심리기획자 ⓒ투데이신문

세월호 트라우마, 아픈만큼 삶이 파괴되는 것  
엄마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 ‘자식’ 얘기 
자녀의 죽음, 자신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지겨우니까 그만해라”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누군가는 ‘세월호 피로감’을 운운하고 이제 잊을 때도 됐다며 유가족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이 말에 상처받은 유가족은 “어떻게 자식이 지겨울 수 있나”라고 외친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2014년 4월 16일에 있다. 시간은 내 아이를 잃었던 그때에 멈춰있다. 이 때문에 눈물은 마르지 않고 그리움은 갈수록 심해진다. 그들은 허망하게 떠난 자식 생각에 매일 통곡의 밤을 보낸다. 또한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 속에서 고통을 안고 산다.

눈물 범벅인 채로 쳇바퀴에 탄 유가족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그녀의 남편 이명수 심리기획자다. 이 부부는 지난해 5월경, 안산에서 심리치유센터 <이웃>을 설립해 유가족의 심리 치유를 적극 돕고 있다. 아울러 최근 정혜신 박사는 진은영 시인과 함께 세월호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책을 냈다. 

그리고 지난 13일 오후 7시 30분,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의 북콘서트가 홍대 근처 라이브카페 벨로주에서 열렸다. 북콘서트는 정혜신 박사와 진은영 시인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사회는 이명수 심리기획자가 맡았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5.18 광주 민주화항쟁 피해자 등 여러 트라우마 현장에서 치유자 역할을 했던 정혜신 박사.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아픔을 잘 이겨낸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 치유 현장은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여느 북콘서트과는 달리 이날 현장에는 깊은 한숨과 눈물이 가득했다. 유가족에게 해줄 것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정 박사는 “눈물을 흘리고 기도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충분한 치유자”라고 말했다. 

<본지>는 북콘서트 현장에서 세월호 트라우마의 실체와 유가족 심리에 대한 정혜신 박사의 이야기를 7가지 키워드로 나눠 정리해봤다.

   
▲ 정혜신 박사 ⓒ투데이신문

● 트라우마… “아픈만큼 삶이 파괴되는 것”

: 우리는 보통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사람이 파괴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수나 실패를 하다 보면 콤플렉스가 생길 수 있다. 보통 젊었을 때의 고생은 약이 되고 문제를 극복하면 성숙해진다고 말하지 않나. 하지만 성숙해지기 위해 ‘성폭행도 당하거나 고문도 당해보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그 아픔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픔 때문에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

● 또 하나의 상처… “자식을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할 때”

: 세월호 가족 엄마들이 상처받을 때는 사람들이 내 자식을 세상에 없는 아이 취급하는 것이다. 지금 엄마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자기 아이의 이야기다. 심리치유센터 <이웃>에 온 엄마들은 “내가 우리 딸 낳을 때 이런 태몽을 꿨어”와 같이 자식 얘기를 시작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3~4시간 가량 쏟아낸 후 집을 가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오늘 정말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이다. 사실 우리는 그녀의 말을 듣기만 했을 뿐인데….

우리는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고, 배려를 한다면서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슬픔과 고통을 만난다. 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타인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일을 수학 미적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 ⓒ뉴시스

● 죽음 각인… “자식 잃은 것, 눈 감기 전 사라지지 않아”

: 우리 삶을 하나의 케이크라고 가정해보자. 개인의 인생은 직장생활, 가정, 친구 등 여러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시어머니 욕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이것은 삶의 여러 조각 중 한두 조각이 어려움에 처한 경우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다르다. 케이크 전체가 진흙에 쳐박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문이나 강간을 통해 목숨의 위협을 당하거나 죽음의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사람, 혹은 자식을 잃은 경우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을 일명 ‘죽음 각인’이라고 한다. 아울러 마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상처를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자식이 죽었다는 것은 곧 내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음 각인이 한번 일어나면 온 몸의 세포는 거의 100%, 200% 정도 극단적인 상태가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그 느낌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한 생생함으로 인해 내 일상이 다 죽음으로 덮어지는 게 ‘트라우마’다. 희생학생 엄마들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해외여행을 갔다오면 고통이 사라질까. 그것도 불가능하다. 고통에서 피할 곳은 없다. 자면 꿈 속에서도 나타난다.

● 삶의 정지…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 어제 심리치유센터 <이웃>에서 희생자 생일 모임을 했다. 그 모임에서 한 희생학생의 누나가 “저는 그냥 오늘도 4월 16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헉’했다. 이 말이 상징적인 표현같이 들리는가. 아마 그 정도로 못 잊겠다는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정말 리얼하게 4월 16일에 살고 있다. 

일부 유가족은 아침에 일어나 TV를 틀려고 하는 순간, 당시 사고 뉴스가 나올까봐 TV를 틀지 못한다. 오후가 되면 사고가 났으니 학교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진도로 내려가고…. 그 때가 생각나 괴로워한다. 마치 러닝머신 위를 계속 달리며 사는 것이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의 시간 감각은 다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의 시간과 삶의 진도는 멈춰있다. 그런데 우리가 “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그만 하자”라고 하면 유가족은 “저게 무슨 소리인가”라고 하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 유가족한테는 와닿지 않는다.

   
▲ 정혜신 박사 ⓒ투데이신문

● 진정한 치유… “마음껏 슬퍼할 수 있게 지켜보는 것”

: 어느 날, 심리치유센터 <이웃>에서 한 희생학생 엄마가 침을 맞던 중 갑자기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녀에게 다가가 왜그러는지 물으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돌아왔다. 사실 그 엄마는 저녁이 되면 아이의 신발을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아이가 자주 다녔던 편의점을 가고, 평소 아이가 앉아 놀던 편의점 옆 벤치에 간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 한의사에게 했더니 그 분이 “이해는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의사 선생님이 잘못하셨네요. 그 선생님이 경험이 없어서 잘못 이야기한 것 같아요. 아니 당연히 엄마니까 그런 것이지. 엄마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해줄까요.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게 더 이상한 거죠. 엄마 맞네! 엄마인 증거예요”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러자 엄마가 통곡을 하더라. 한참을 울던 그녀는 자신이 미쳐가는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비로소 안심했다. 그 엄마는 요즘에 “사실 내가 다른 엄마보다 좀 유난히 그래요”라고 한다. 본인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나. 그렇지만 엄마니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무의식적 건강성’이라는 게 있다. 무의식적 건강성은 모든 인간에게 작동된다. 본래 인간은 치유적인 존재다. 그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격려하거나 지지해주고 인정하면, 자기 방식대로 하다가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인간이 치유적인 존재라는 것을 신뢰해야 하는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훈계하거나 계몽질을 하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기준선을 주고 정상 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반치유적이라고 본다. 유가족이 자식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움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 그리움… “옆에 있다는 마음으로 자식과 대화해야”

: 나는 유가족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자식이 생각날 때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하라고 말이다. 예를 들면 “이걸 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너의 생각이 나네. 꼭 데려오고 싶었는데 니가 없어서 너무 슬프구나.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라고 권한다. 혹은 “오늘 목요일인데 니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나오는구나. 너 탤런트 누구 좋아하지?”라고 말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고 한다. 계속 자식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걸 막으면 오히려 병이 난다.

또 희생학생 아버지 한 분은 진상규명을 위해 1년 동안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는 거의 반 투사가 돼 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고 밤에 2~3시간만 잔다고 했다. 나는 그 아버지에게 하루 동안 돌아다니고 집에 오면 아이의 책상에 가서 꼭 아이와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오늘 아빠가 너의 자료를 갖고 국회에 갔었어. 그런데 그 놈이 문도 안 열어줬어”와 같은 얘기를 해주라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아버지가 본질을 잃지 않고 더 잘 싸울 수 있는 뿌리가 생긴다. 무엇보다 자식과의 관계를 잃지 않으면 아버지도 잘못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식과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 슬픈 가설… “내 자식,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 얼마 전, 어떤 엄마가 말하기를 화장실에 거미줄도 없는데 거미가 내려왔다고 했다. 그 엄마는 깜짝 놀라서 ‘범상한 일이다. 내 아들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거미의 모습으로 온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단다. 이후 그녀는 모기 한 마리, 바퀴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죽인다. 엄마가 보고 싶어 그 모습으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어떤 엄마는 예전에 구름이 예쁘지 않았는데 구름이 요즘에는 유난히 예쁘다며 딸이 엄마가 보고 싶은 나머지 구름이 되어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가족들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 모든 곳에 있다는 가설을 갖고 산다. 18살밖에 안 된 자식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그 부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사는 부모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그런 유가족의 모습을 비난해선 안 된다.

정혜신 박사는 “치유의 핵심은 간절함과 기도,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존재만으로 치유자다”라며 2시간가량 이어진 북콘서트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녀의 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별이 된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간절함만이 사람을 위로하고 떠난 영혼에 따스하게 가닿을 수 있으며 간절함만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산의 현장 치유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당부는 그뿐입니다. 저도 매일 그러고 있습니다. 합장”

-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맺음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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