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지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여러분은 혹시 초등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시’가 있으신지? 혹은 학교에서 배운 ‘시’ 중에 여태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어릴 적에 읽은 시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은 당시 한창 인기를 얻었던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전부다. 생일 선물로 받은 그 시집에 나는 단박에 매료되었고, 류시화의 다른 시집들은 물론 그가 번역한 잠언 시집들도 꾸역꾸역 수집하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분명 그 시대의 유행이었을텐데 당시 학교 수업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고, 그의 시를 읽은 감상을 나누거나 할 만한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당시에도 책을 안 읽고 책을 안 권하기는 요즘과 매한가지였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고 남자아이들은 공차기를 해도 책을 붙들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빨 빠진 옥수수처럼 군데군데 비어 있는 교실에 덩그마니 남은 나는 한 줌도 안 되는 학급문고에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가들의 청소년 문학 따위를 붙들고 읽곤 하였다. 요새는 그런 아이들을 학급에서 왕따 시키는 ‘책따’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당시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새침하게 책을 읽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쪽지를 건네는 용기 있고 다정한 아이들이 많은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입시를 위한 공부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강압적으로 조성되었고, 또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하여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소설책을 읽는 아이는 선생님의 매질을 면치 못하였다. 당시 인기를 끌던 <오페라의 유령>을 읽으며 “음악 공부 하는 거에요”라고 너스레를 떨던 아이에게 선생님이 아무 말 없이 손바닥을 내려치던 장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책을 읽는 것은 죄악시되다시피 하였고 오로지 입시 공부만이 장려되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다 자라서 주류이든 잉여이든 한국 사회의 허리춤을 엉거주춤 차지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이들 중 태반이 1년에 소설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현재 한국 문학이 소위 ‘순문학’의 상아탑에 갇혀서 소통도 거부한 채 어렵고 재미없는 이야기들만 쏟아내고 있다고 성토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수긍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비난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내가 회고한 풍경들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순문학에 대한 비난이 문학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 외부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가?

오늘날 문학 장르의 주류를 차지하는 ‘소설’은 19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다. 그전까지 문학이라 함은 고대의 서사시와 희곡, 궁정시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인쇄술이 대중화되어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반 시민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연재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소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소설은 요즘 우리가 드라마 챙겨 보듯이 다음 회를 기다리며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오락거리의 하나였다. 그런 범속한 소설들을 오늘날에는 19세기 사실주의 소설 운운하며 강단에서 문학사의 중요한 한 꼭지로 다룬다.

19세기 사람들이 열심히 읽던 소설들은 장르문학이니 순문학이니 구분을 떠나서 ‘당대의 문학’으로 활발하게 소비되었고, 작가들은 주머니를 채워가며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레 정착되었고, 그렇게 문학은 시대와 사람들과 긴밀하게 관계하여 발전해갔다. 그러한 과거를 염두에 두면 장르문학이니 순문학이니 하는 논쟁은 사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보다 더 필요하고 시급한 논쟁은 왜 사람들이 문학을 재미없다 여기게 되었고,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되었으며, 왜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에 이를 정도로 우리 사회가 황폐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나는 위에서 회고한 나의 삶 속에서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다.

우리의 시대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매우 달라졌고 동시에 어려워졌다. 우리는 책 안 권하는 문화를 강제당하며 성장하였고, 눈 코 뜰 새 없이 가십과 유머를 쏟아내는 현란한 매체들에 둘러싸여 책에 대한 흥미를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태 단 한 번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비슷한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한국 문학이 어렵다느니 문단이 폐쇄적이라느니 비판하는 것은 어딘가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요즘 문학이 어렵다는 사람들 중 소설책 하나 제대로 붙잡고 읽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나는 궁금하다. 그들이 말하는 ‘어렵다’는 단지 ‘재미없다’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재미없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을 공격하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뒤에도 여전히 문학이 어렵고 재미없다면 그때는 정말로 문학과 문단을 사정없이 공격해도 온당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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