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젊은 세대들의 현재 고민을 듣다

▲ 협동조합 가장자리 홍세화 이사장과 대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20대, 스펙 쌓기보다 사회·정치 관심 필요
한국사회 피라미드 구조를 바꿔야

‘고체사회’서 ‘액체사회’로 변화
불안한 상황 타계, 정치만이 할 수 있어

장식품화 돼 가는 인문학
인문학, 변화의 용기 주는 학문

스펙쌓기, 우물 안에서의 경쟁일 뿐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 필요

부동산 정책이 아닌 주택 정책 돼야
보편적 복지·사회적 획득물로 모두 혜택 누려야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과거 군부독재 시절 대학생과 젊은 세대들은 길거리에서 목청껏 민주화를 외쳤다. 억압적인 시절이었기에 ‘이러한 시대에 연애는 사치가 아닐까’하는 엄정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갖다 대보며 고민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때문에 대학 강의실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취직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학은 말 그대로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기기는 없었지만 특별한 장소에 가면 그곳엔 항상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있었다.

그 뿐인가. ‘사람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며 없는 형편에 결혼도 했다. 지금같이 멋진 아파트에서 살지는 못했지만 작은 집에서 웃음소리가 멀리 퍼질 수 있을 만큼 아이도 낳고 키웠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의해 선거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선출한다. 대학생과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길바닥에서 민주화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데이트를 하려면 굳이 몇 주 전부터 사전답사를 할 필요 없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주변의 맛집과 멋진 장소를 검색해 찾을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춰 대학생과 젊은 세대들은 해외연수와 외국어 능력 하나 정도는 필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 그렇다 보니 대학 캠퍼스의 풍경도 변했다. 무엇보다 취업이 일순위다. 높은 등록금과 치솟는 물가에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필수다. 연애는 사치인지 오래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혼자 식사하고 혼자 강의를 듣고 동아리 활동은 꿈도 못 꾼다. 이렇게 캠퍼스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여기에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교에서는 기업논리에 맞춰 취업이 안 돼 인기가 없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같은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 마련을 포기한 ‘5포세대’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다. 여기에 저렴한 가격과 실용적인 디자인이지만 내구성이 약해 단기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이케아 가구’의 특징을 빗대어 스펙은 높지만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케아세대’, 현재의 생활에 욕심 없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달관세대’ 등 젊은이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계속 생기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2015년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은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우선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대학을 다녔고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꼽히는 협동조합 ‘가장자리’의 홍세화(68) 이사장과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도원수(27), 김정훈(24) 학생과의 대담을 통해 현재 젊은 세대들이 고민하고 포기하는 것들에 대해 세대를 뛰어넘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민주주의와 취업의 관계 그리고 미래

임이랑: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주장했는데 오히려 청년을 비롯한 서민들에게 복지는커녕 연말소득 공제가 세금폭탄이 되어 돌아왔고 담뱃값은 인상됐습니다. 이르면 6월부터는 교통요금 인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민이 갈수록 힘들어진 이유에 대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이 존재합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홍세화 선생님과 현재 민주주의 아래에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먼저 홍세화 선생님께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홍세화: 민주주의에서 민주(民主)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는 백성의 주체적 의식, 달리 표현하면 시민의식의 성숙정도에 따라서 민주주의가 규정됩니다. 민(民)이 주체적이지 않을 때에 민주주의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의식 자체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는 이유는 젊은 세대들이 안타깝게도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가 혐오스럽거나 정치로부터 멀어질 때 정치는 정치인들이 독점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이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국민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는 없다’. 곧 박근혜 정부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라는 겁니다. 정치적인 의식과 주체 인식을 통해 국민들의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젊은이들은 정치가 혐오스럽다고 개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가 바뀝니다.

도원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선배들의 헌신 덕분에 저희들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선배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정치나 민주주의는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 같은 경우에는 시대적으로 정치나 사회문제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저희가 정치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면 어느 정도 사회와 정치가 변화할 것이고 변화를 일궈 냈기에 후세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해줄 겁니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열 명 중에 한 명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제 생각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자주 이야기합니다. ‘자기가 열 명 중에 한 명이 아니라 아홉 명’이라 생각하라고. 열 명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와 정치에 대해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러한 것에 대한 관심은 사치인 것 같습니다.

김정훈: 중·고등학교 때 배운 민주주의 개념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민주주의를 제 나름대로 표현해본다면 ‘국민에 의한, 국민이 주인인 것이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 전제되고 우리 국민들의 존엄성이 보장받는 게 목적인데 지금 사회를 돌아봤을 때 ‘자유와 평등이 얼마만큼 보장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 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차라리 내 앞길 생각하고 취업과 관련된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참여도 안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 홍세화 이사장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 사회문제와 정치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임이랑: 두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과 공부하랴, 취직 공부하랴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으니 어쩌면 정치나 사회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만…

홍세화: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두 학생에게 제기하고 싶은 질문 중에 도원수 학생이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나서면 그 한 사람은 위험한 인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김정훈 학생이 자유와 평등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겠느냐. 그것보다는 내 갈길 가는 것이 낫겠다’ 고 했는데 이게 바로 도원수 학생이 말한 열 중 아홉이 택하는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한번 던져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를 피라미드 구조라고 생각해 봅시다. 피라미드 구조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지금 상황에서 내가 낙오하지 않고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 갈 수 있을까, 그리고 피라미드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피라미드 아래로 떨어질까를 따졌을 때 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피라미드 구조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계층이동은 불가능합니다. 김정훈 학생이 말한 현재 대한민국 내의 피라미드에는 자유와 평등이 없는 상황입니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내가 열중에 아홉에 속한다거나 내 앞길을 내가 개척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과거 우리 세대만 해도 3포, 5포 이런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피라미드는 작은 피라미드였고 점점 피라미드가 확장 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불평등 구조는 있었습니다만, 피라미드가 점점 확장되면서 아래쪽에 있던 사람이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 때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피라미드 구조는 확장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거나 오히려 축소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계층이동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강력하게 기득권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이 피라미드를 그대로 둔다면 쳇바퀴 도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라미드 구조 자체를 변화 시키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겁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피라미드 구조가 더욱더 단단해져 계층의 이동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본 대학생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정훈: 만약에 피라미드 구조내의 계층이동을 위해 제도적인 측면을 강화해서 강제적으로 이동시킨다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미국처럼 기부문화와 같은 상위계층의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방식을 통해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도원수: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 중에 피라미드 구조가 축소되고 정체돼 가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과학기술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데 사회구조의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피라미드 구조가 변화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 가까워지고 정글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불안하지 않습니까?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있겠지만 일단 자연 상태에서라도 안정감을 한번 맛 본 인간은 정글을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구조가 점점 축소되고 정체돼 있지만 오랫동안 유지된 이러한 피라미드 구조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면 변화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시키고 다시 쌓으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축소되고 있는 피라미드 구조 내에서 나름대로 적응해오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 저희에게는 피라미드 구조자체를 바꿔야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라미드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홍세화: 지금 도원수 학생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간은 애당초 시공간적 안정성을 요구하는데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불안하지 않습니까? 시공간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현재의 현실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액체사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만 놓고 보더라도 얼마나 유동적입니까. 잘되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안 되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여기에 비해 저희 세대는 ‘고체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직장으로 보장이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젊은이들이 이러한 시공간적 안정성 때문에 교사나 공무원 같은 직업을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직업들도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이들이 불안한 것입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것이냐, 바로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나만 어떻게 해보겠다고 한들 결국 불안함 속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정치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되고 정치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하는 겁니다.

도원수: 저희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재에 대한 모호함이 고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저희 세대의 고민을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변화로 또 다른 불안함이 생길까 걱정이 됩니다. 제가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는 선거 때에는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고 변할 것 같지만 이후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현재와 똑같은 상황의 연속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턴의 반복이 정치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게 만들고 지겹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가 정치적인 변화를 통한 해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정훈: 원수 형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정치가 저희 세대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저부터가 정치에 참여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내가 왜 투표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우리 세대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우리의 고민들을 해결해 준다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던 친구들도 ‘투표를 하면 되는 구나’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홍세화: ‘사회적 획득물’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로 들면 무상급식을 ‘사회적 획득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두 학생도 아이를 갖게 되면 학교에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경상남도에서는 홍준표 지사와 새누리당에 의해 무상급식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정치적으로 획득했던 ‘사회적 획득물’들을 다시 뺏기고 있습니다. 여기에 두 학생은 가만히 있을 건지 혹은 이를테면 ‘그건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인문학 위기, 결국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들어

임이랑: 대화 주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셨고 도원수 학생과 김정훈 학생은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재학 중입니다. 모두 큰 틀에서 인문사회학과 출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취업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인문학보다는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학생들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먼저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현재 인문학은 위기와 열풍 사이에 있습니다. 참 모순적인 상황인데 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열풍이라고 부를 때에는 인문학이 ‘장식품화’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난 이 책 읽었어’ 라며 인문학을 일종의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열풍을 갖고 있다고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인문학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탐색이자 학습입니다. 인간에 대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성찰하고 삶의 궤도를 수정하게 해줍니다. 심지어 자신의 삶에 있어 기존 목표에서 이탈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학문이 인문학인데 현재 젊은이들에게 있어 안정이라는 삶의 문제와 인문학이 주는 이탈의 용기는 모순적입니다. 그 점에 있어 인문학의 위기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원수: 저도 인문학이 위기에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한문학과 졸업해서 ‘뭐할래?’라고 물었을 때 추상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문학은 사실 본질적인 것을 파고드는 학문인데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구체적인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사회가 인문학적 성과를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당장 경제적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김정훈: 갈수록 사회가 돈과 이익이 되는 것들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인문학 같은 경우에는 ‘돈 안 되는 학문’, ‘뜬구름 잡는 학문’이라고 주변에서 말하는데 이러한 주변의 여론을 살펴보면 인문학은 분명히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임이랑: 대학에서도 인문학의 위기 증후가 상당히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앙대의 학사구조 개편안을 들 수 있겠습니다. 취업에 유리한 학사구조 개편과 인문학과 폐지 같은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을 직업소개소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김정훈: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은 기초학문입니다. 기초학문들이 지금 당장 돈이 안 된다고 해서 폐지시키고 구조조정에 있어 1순위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과연 학문의 산실인 대학교가 ‘어떠한 학문으로 지탱하고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원수: 저도 인문학과가 계속 대학 내에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있더라도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기술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를 망친 수많은 무기들이 그런 예였고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인문학의 역할은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역할로서 계속 활용돼야 합니다.

홍세화: 인문학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을 인식하는 학문입니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도 알아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신자유주의 흐름에 의해 개편이니 폐지니 하는 식으로 없애버린다면 인간을 경제동물로 축소시키는 행위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맺는 관계로 사회가 이뤄지는 것인데 이제는 온통 경제 관계로만 남아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은행잔고다’라고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은행잔고만 확인하는 사회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고 탐구하는 것은 정말 기초에 속하는 겁니다. 이러한 것까지 완전히 소거해 버리는 신자유주의와 그 추종자들은 인간에 대한 인식자체가 있는 집단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임이랑: 우울한 질문이지만 두 학생은 자신들이 졸업한 학과가 10년 후에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도원수: 아까 정훈이가 말했듯이 한문학과나 인문학 혹은 자연과학은 기초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남아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만약에 학교가 한문학과를 폐지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우리는 돈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격이기 때문에 학교로서 자격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김정훈: 제 개인적인 생각은 고려대 한문학과가 1987년에 생겼는데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속해서 교수님들이 학과를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이 눈에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번에 듣는 강의 중에 <한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강의를 듣는데 한문학과 자연과학은 언뜻 보기엔 매치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하시는 교수님께서도 ‘이건 굉장히 실험적인 강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교수님들의 노력과 학생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10년이 지나도 한문학과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이랑: 인문학이 위기에 빠져있고 기업들은 인문학과 학생들을 많이 선발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도원수: 상대가 인문학의 성과에 대해 경제적 논리로 다가온다면 마찬가지로 인문학도 경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인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드라마와 같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성과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합니다.

김정훈: ‘있을 때 잘해’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중앙대학교의 학사구조 개편을 한번 해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인문학의 가치를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홍세화: 인문학이 이 지경이 돼버린 것 자체가 학교 교육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교육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인문학의 위기를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자꾸 경제논리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학생이 직면해 있는 문제와 맞닿습니다. 삶을 설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인문학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제와 같은 제도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환경자체를 변화시켜 제도와 정책의 효과를 통해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해야 합니다.

▲ 도원수(왼쪽),김정훈(오른쪽)학생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스펙! 스펙! 스펙!

임이랑: 이번에는 취업과 스펙에 대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현재 대학생이라면 취업을 위해 자신의 스펙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 대학생은 지금 스펙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도원수: 저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 제대 이후에 호주의 철광석 광산에서 일했습니다. 솔직히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에 복학해서 친구들도 만나고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활비나 학비가 제 주머니에 없는데다 부모님께서도 저를 도와주실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왕 호주에 가는 거 좀 다르게 가자고 생각습니다. 웬만한 대학생이 다 가는 어학연수 갈 형편이 안 되니 호주에 가면 ‘일만 하지 말고 영어도 배우자’ 이렇게 생각하고 호주에 갔습니다. 거기서 영어도 배우고 사회적 경험도 쌓았습니다. 비록 광산이지만 나름대로 회사이기에 다른 학생들이 가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반대로 어학연수나 심지어 외국에서 인턴을 하려는 경우에 캐나다나 미국에 약 500만원을 내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호주에 다녀와서 어학점수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고 학점관리도 계속 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지방이다 보니 학교 주변에 방을 구하고 생활비를 하고나니까 호주에서 번 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호주에서 주는 5분의 1도 안 되는 시급을 받고 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부족하게 되고 공부도 계속 미뤘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부탁드리고 생활비를 받았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드디어 제가 원하는 어학점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은 자취하는 저의 입장에서 한 달에 밥만 먹어도 빠듯합니다. 학교에서는 후배들을 챙겨야 할 위치에 있지만 그럴 금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여기에 취업을 하는데도 돈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제가 살고 있어 씁쓸합니다.

김정훈: 제가 한문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저의 미래를 넓게 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교류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문학과 더불어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어학원이 너무 비싸 인터넷 강의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7개월에 25만원 정도이지만 제 주머니 사정상 부담이 큽니다. 그래도 다음 학기에 중국 교환학생으로 가기 때문에 부담이 되더라도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젊은이들이 세계를 좀 더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으면 합니다. 물론 스펙도 필요하겠지만 스펙 쌓기에만 너무 몰입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정체 혹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부모세대들처럼 경제가 확장되고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는 부모의 경제력과 능력에 의해 삶 전체가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스펙 쌓기를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부모세대가 갖고 있는 경제력에 비하면 정말 작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펙 쌓기가 갖는 한계는 뚜렷합니다. 여기에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세속자본주의’라고 규정했습니다. 자본이 계속 세속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젊은 세대들은 상속세 같은 조세제도에 대한 문제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스펙도 쌓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 없이 스펙 쌓기에만 몰두한다면 우물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임이랑: 스펙을 쌓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취업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정훈: 취업의 문이 좁아졌다는 것에 대해 ‘대기업이 힘들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대기업이라면 대한민국의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데도 그들조차 힘들다고 인력을 감소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원수: 제가 09학번인데 과거 06,07학번 선배들에게 취업 성공기를 들어보면 저는 선배들보다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넣어야 할 항목이 많아지고 스펙을 쌓아야할 속도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일자리는 계속 줄고 후배들은 더 많은 스펙을 쌓고 하다보면 가운데 껴 있는 저는 어쩌면 사회에서 낙오자로 남아있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래도 작은 희망을 가져보는 게 기업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이 낭비라는 인식을 점점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세화: 지금 일자리 자체가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대학생들이 인식해야 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자본의 설비투자는 엄청나게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동화·정보화 돼있는데다 기계에 인공두뇌까지 장착돼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인간의 노동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자리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디서 일자리가 보입니까? 열악한 서비스업 즉, 3차 산업에서만 일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기업의 소수 일자리를 놓고 다수가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열악한 일자리로 몰릴 수밖에 없는 다수는 결국은 루저(패배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소수 일자리는 부유한 자식들이 많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시야를 키워야 합니다.

   
 

연애 감정도 사치인 사회

임이랑: 취업도 그렇고 스펙 때문에 대학생활의 로망이라는 연애를 포기하는 대학생 혹은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연애를 포기하는 현 세대들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김정훈: 제가 연애를 포기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연애를 하면 첫 번째 돈이 듭니다. 여자친구와 식사를 할 때도 학교 식당에 있는 몇 천원짜리를 먹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돈을 벌기도 힘들고 내 앞길 가기도 바쁜데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원수: 학생들이 자의적으로 연애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회계사 공부를 한다면 ‘2년 동안 회계사 공부만 해서 목표를 성취 하겠다’는 이유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연애를 포기하는 이유가 금전적 부담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 그리고 감정적 에너지를 연애에 다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끔 연애를 하다보면 은연중에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 아닌 여자친구 만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는 생각을 해서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따져볼 때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연애를 좀 멀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 두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대학생이 아닌 말 그대로 취업준비생이군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연애를 하는 것이 이러한 억압적인 상황에서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와 후배 동기들이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하는 시절에 ‘연애를 한다는 게 도덕적으로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연애는 했습니다(웃음). 현재의 대학생들은 저희 때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기해야 하는 결혼

임이랑: 연애의 종착점인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도 최근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에 두 대학생이 원하는 배우자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도원수: 저는 결혼에 대해서 사실 회의적입니다. 과연 내가 결혼을 하면 ‘이런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부인이 서로를 물질 보듯이 하고, 아버지를 평가할 때도 직업과 벌이로 평가한다더군요. 만약 아버지가 직장을 잃게 된다면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있겠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과연 결혼을 하면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원하는 배우자를 말하라면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아홉 번 괴롭고 한 번이 즐겁다는데 함께 괴로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여덟 번의 고통에서 멈추지 않고 아홉 번 고통까지 갈 수 있는 사람, 한 번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저의 배우자가 됐으면 합니다.

김정훈: 저는 원수 형이랑 다르게 시골에 같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여자만 있다면 빨리 결혼하고 싶습니다. 결혼을 통해 애를 낳고 시골집 마당에 아이가 뛰어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결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조금 미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젊으셨을 때로 돌아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배우자의 조건으로 어떤 것을 보실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그때로 돌아간다면 제가 원하는 여성은 자기 생각에 겸손한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생각을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그런 여성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살림을 해나가는 것 그리고 계급적으로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나로 모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생각이 다르면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을 모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흐지부지 덮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면 배우자는 다른 이야기로 서로를 설득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결국 싸우게 됩니다. 배우자만 생각이 겸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도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겸손해야 합니다.

임이랑: 결혼을 포기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도원수: 정부는 결혼문제를 너무 출산문제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결혼을 포기하니 출산휴가를 주자’ 이런 식의 접근은 잘못 됐다고 생각합니다. ‘애를 낳기 싫어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자기 유전자를 남기고 자신을 닮은 2세를 낳는 것은 동물적인 욕구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사회·경제적 여건이 남녀를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닌 경제적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김정훈: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평범한 20대가 집 살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적 여건이나 이런 것을 따지면 내 탓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젠 내 탓하는 것도 질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도 취직도 못하는 것이 ‘내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이랑: 두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지 홍세화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홍세화: 인간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있어서 불안을 주는 요인들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할까?’ 라고 생각해봤을 때 첫째는 자식 교육입니다. 둘째는 집에 대한 고민, 셋째는 건강을 유지해야한다는 불안감, 넷째는 안정된 일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덴마크 같은 경우에는 국민들이 사회적 획득물과 보편적 복지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정부에서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국가의 지원 위에서 경쟁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정치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무상급식이 시작 됐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하나씩 모여 매듭을 짓는다면 무상급식이 확장돼 무상교육이 될 겁니다. 대학생들 등록금 얼마나 비쌉니까? 프랑스에서는 공부를 하는데 있어 등록금이란 것이 없습니다. 다 이게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요즘 세대가 결혼을 할 수 없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습니다. 집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제가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 월세를 낼 형편이 안 되니까 프랑스 정부에서는 주거수당을 통해 저의 월세를 해결해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월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전세를 구해야하는데 전세를 구하는 것도 부모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생존 조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고 이제 막 시작한 무상급식도 후퇴해버렸습니다. 반값 등록금도 말만 요란하지 않습니까. 이미 반세기 전 유럽에서는 국민 소득 1만불이 되기 전에 모두 해결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획득물을 통해 불안요인을 줄여나가야 하는데 모두 일자리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일자리 하나에 건강과 노후, 주거, 교육을 다 짊어져야 하니 일자리를 향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겠습니까. 여기에 일자리를 통해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는 것은 ‘개인이 해결해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획득물, 사회안전망,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도 못 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가질 수 없는 ‘집’

임이랑: 결혼을 포기하면서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집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정훈: 집은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제가 힘들 때 쉴 수 있고 개인공간을 가질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원수: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집은 굉장히 가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님의 경제력이 된다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겠지만 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직장인 월급을 계산해 본다면 매일 라면을 먹고 결혼도 안하고 차도 안사고 그래야만 집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거나 부동산이 폭락한다면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만 현재로서 집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세화: 집을 가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부모의 경제력이 얼마만큼 자식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임이랑: 집은 마음의 안식처이지만 가질 수 없는 거라고 대학생들이 말하는데 홍세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집은 어떤 의미이고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홍세화: 집은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전진기지 같은 곳입니다. 또 사람을 충전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이렇듯 집이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이고 공간적 안전성을 주는 것이 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는 월세살고 형편 조금 나은 사람은 전세살고, 전세에 살아도 2년이 지나면 전세금을 올려줘야 합니다. 여기에 자가 주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50%도 안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집에 대한 정책이 김정훈 학생이 말한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주택 정책이 아닌 재산개념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 문제에 접근합니다. 잘못된 접근입니다. 삶의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주택정책이 새로 정립돼야 합니다.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정책, 저임대료 공공주택을 확장하는 정책으로 정책 방향이 잡혀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부동산은 거품이 심합니다. 거품을 점차 걷어가는 정책을 해야 하는데 거품을 지키기 위한 DTI(총부채상환비율)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주택정책은 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줄어드는 출산율

임이랑: 문제는 여기에 집도 없지만 아기들의 울음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이에 따라 전국의 산부인과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정훈: 젊은 세대가 애를 안 낳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인식이 애를 키우려면 돈은 이 정도 있어야 하고 유모차와 옷도 어느 정도 해줘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을 다 따지니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애를 많이 낳고 싶습니다. 과거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분식점 같은 곳에서 떡볶이로 끼니를 때우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를 키우는 것에 대해 경제적 요인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원수: 저에겐 누나가 둘이 있는데 큰 누나가 4~5년 전쯤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4살짜리 조카가 생겼습니다. 누나 말에 의하면 조카를 키우는데 있어 들어가는 돈이 많다고 토로합니다. 누나를 보면서 저희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문화가 육아까지 파고들어 간 것 같습니다. 다른 애들은 이 정도는 하고 다니는데 우리 애한테는 안 해주면 안 되는 경쟁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빠듯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정훈이가 ‘꼭 돈이 있어야 애를 키우나’는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애를 키울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저의 2세이자, 자식이기도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봤을 때에는 타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시켜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아이한테 해주는 것을 자기 자식에게 해줄 수 없다면 타인에 대한 기회를 부모가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봅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젊은 세대가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세화: 젊은 세대들의 출산파업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피라미드 사회 구조가 점점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계층 상승의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만약 가난한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사회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어떠한 논리로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 인문학적 토대는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라면 도원수 학생이 말한 것처럼 계층 상승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임이랑: 출산이 저조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단기적이라는 여론이 많습니다. 출산을 장려할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홍세화: 결국 불안요인을 줄이고 아이가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여기에 주택정책과 교육정책의 변화도 필요하고 보편적 복지와 사회적 획득물들도 마련돼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 없이 ‘스펙 열심히 쌓고 취직해서 너희들이 해결해라’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옳지 못합니다. 부조리한 환경을 놔두고 ‘출산하면 얼마씩 주겠다’는 방식으로 저출산 문제를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 정말 지구를 위해서라도 아이를 덜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웃음).

혼자인 게 편한 ‘자발적 아웃사이더’

임이랑: 요즘은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대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하는데 두 대학생이 재학 중인 학과에도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많은지 궁금합니다.

도원수: 네. 아웃사이더가 있기는 합니다. 요즘 대학생활을 하면 대부분이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라고 봐야 합니다. 학과 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친하게 지내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꼭 대학교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된 것도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생기는 이유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교외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못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김정훈: 아웃사이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원래 성격자체가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 같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자발적 아웃사이더, 자기 스스로가 아웃사이더가 되려고 자처하는 것인데 첫 번째 같은 경우에는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그 집단이나 조직에 들어가기 싫은데 억지로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같은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자발적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리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임이랑: 그렇다면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홍세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전망 불투명’이라는 불안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동료 학생들은 더불어 살아갈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 경쟁자가 됐습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이랑: 이렇게 자발적 아웃사이더처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도원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대부분이 공부나 일에 치여서 사람 만날 시간도 부족합니다. 여기에 아르바이트도 하니 학과생활이나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을 하는 게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김정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인관관계는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며 이루어지는 인간 관계였지만 지금은 굳이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통신수단이 점점 발달하면서 얕고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욕구도 이러한 통신수단이 채워주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포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이랑: 인간관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두 대학생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도원수: 인간관계의 포기를 막으려고 조직 문화를 더 강하게 키워가는 것은 잘못이지만 과거의 조직중심적문화가 인간관계 포기를 불러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직문화에서의 낙오자는 개인주의적 사회의 낙오자보다 훨씬 더 고통 받는 것 같습니다. 조직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정의하고 만들어가기보다는 좀 더 평등한 공동체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훈: 사회적인 문제는 해결보다는 예방책이 더 효율적 방법인 것 같은데 교육 체계의 변화로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 이처럼 젊은 세대들과 대학생들이 인간관계를 포기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따라서 심리적 여유가 없으니 더욱 외로운 섬이 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상대를 경쟁자로 보는 시각은 씁쓸하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경쟁을 하는 것보다 상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으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만드는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5포세대’, 도피인가 포기인가

임이랑: 이젠 사회적 문제가 돼버린 ‘5포세대’에 대해 두 대학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원수: 과거 세대에 비해서 저희가 누리는 건 많아졌지만 세상의 변화가 빨라진 만큼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저희한테는 오히려 박탈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이런다고 포기 할 순 없으니 지금껏 서로가 서로를 밟으며 경쟁의 사다리에 좀 더 높게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저희 세대들이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젠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김정훈: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비해 목표가 너무 높으면 포기를 하게 됩니다. 지금 저희 세대에게 연애와 결혼, 취직, 출산, 집은 성취하기엔 너무나 높은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저 다섯 가지를 성취하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다섯 가지를 포기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해서 얻은 결론은 마음의 편함인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의 5포 세대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대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니 어떤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정말 마음이 편할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저는 차라리 도피 또는 외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정훈 학생이 다섯 가지를 획득하려면 너무 높은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현재 젊은이들의 상황을 뚜렷이 드러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 그 다섯 가지를 획득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가능한데 그런 일자리가 줄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바꿔 사회공공성, 보편적 복지를 통해 일정 정도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포기 하지 말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께 올림

임이랑: 인생의 여러 가지를 포기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은 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김정훈: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이랑: 잘하고 있다는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정훈: 저는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나름대로 열심히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데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싫습니다.

도원수: 제가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자리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농담입니다. 방금 정훈이는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데 ‘왜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 비판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3년 동안 경제정책과 외교정책, 대북정책에 있어서 뚜렷한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제시한 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금리가 많이 떨어져서 경제적 상황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년 정도 호황이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호황이 오는 그 기간 동안이라도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좀 성과를 내줬으면 합니다.

임이랑: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평소 정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3년간의 성과에 대해 평가해 주신다면.

홍세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경제민주화와 복지였습니다. 현재는 그걸 다 팽겨 쳤습니다. 그래서 대선시절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공약은 지켜야합니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관계에 변화를 가져왔으면 합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과 일본하고 수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분단은 이념적 분단보다는 지정학적 분단입니다. 남한은 미국과 일본을 배후에 갖고 있는 해양세력이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을 배후에 갖고 있는 대륙세력입니다. 하지만 남한은 지금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하고 수교를 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특히 남한은 중국과의 교역량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거기에 비해 북한은 지금 미국, 일본과 같은 해양세력과의 수교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그 만큼 고립돼있고 지정학적으로도 분단돼 있다고 봅니다.
미국과 일본의 수교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안정과 경제개발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심중을 알고 남한이 수교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면 남북관계의 주도권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열심히 한다고 하셨는데 열심히 잘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잘못하면 안하는 것만도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대로 한다면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을 주문하고 싶습니다(웃음).

뜻 깊었던 대화의 자리

임이랑: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만남을 통해 여러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각자의 소감을 한마디씩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원수: 우선 홍세화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접한 사회문제들이 많지만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결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답안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저부터가 숲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여태껏 나무만을 보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숲을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오늘 대화를 통해 사회문제와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김정훈: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에 대해 가끔은 자랑처럼 여겼는데 홍세화 선생님과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대학생들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모든 문제가 곧 정치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의 이 자리가 저에게 큰 발전을 준 것 같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홍세화: 지금 두 학생들의 소감을 들으니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갖겠다는 말이 저에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대칭성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인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사회문제는 정치와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사회과목이 강화됐으면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인데 자본주의 사회가 구성되는 작동방식과 현재의 자본이 국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러한 상황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과목이 얼마나 부실한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직접 대학생들과 사회문제에 대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왼쪽부터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 홍세화 이사장, 김재욱 작가, 김정훈 학생, 도원수 학생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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