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공익재단 통한 상속세 절세 꼼수 부릴까
삼성 “투명하게 상속을 진행할 것”

【투데이신문 박나래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단 이사장 선임은 이건희 회장이 와병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1년이 넘게 병원 생활 중이다.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업무의 원활한 수행이 어려워 이재용 부회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한 것”이라며 “이재용 신임 이사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설립 취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그룹의 경영철학과 사회공헌 의지를 계승, 발전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맡아 오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상 한국의 정서로는 부친이 와병중인 상황에서 공공연히 승계를 추진하는 것은 결례로 여겨질 수 있어 일단 상징성이 큰 타이틀을 물려받아 조용한 승계를 모색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은 조용히 승계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상속을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 상속을 모색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상속 과정에서 이들 재단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의 지분을 각각 4.68%, 2.18%를 갖고 있는 3대, 4대 주주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지분 또한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은 총 9753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자산 3278억원까지 합하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1조3000억원이다. 지난해 7월 삼성생명 지분 500만 주를 2650억원에 매각해 4145억원이던 유동자산이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삼성문화재단은 지난해 말 기준 유동자산은 640억원이지만 삼성생명 936만 주(4.68%)와 제일모직 110만 주(0.81%), 삼성화재 145만 주(3.06%), 삼성SDI 40만 주(0.58%) 등으로 이들 지분의 시가는 1조6000억원으로 평가된다.

이들 재단의 이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맡고 있었다. 다시말해 이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는다는 것은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임기는 이달 30일, 삼성문화재단의 경우 내년 8월 27일까지다. 따라서 이 회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원활한 재단 운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2012년 6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로 재직했지만 지난해 5월 사임했다. 삼성문화재단은 2012년부터 이사로 재직했다.

재단 관계자는 “특수 관계인의 비중이 20%를 넘었기 때문에 물러났던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이사에서 사임해 이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 재단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1910~1987) 회장이 설립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982년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출범했으며 지난 1991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수요를 충족키 위해 1987년부터 보육사업을 시작했으며, 의료사업을 통한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1994년 삼성서울병원을 건립했다. 2001년에는 노후 보장 문제 해결을 위한 삼성노블카운티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나눔의 철학을 기반으로 1965년 설립됐다. 이를 위해 1982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내 전체면적 3만㎥ 규모의 호암미술관을 개관하고, 미술과 문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곳에는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 1만5000여점이 소장돼 있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에는 인류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1999년 로댕갤러리와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개관했다. 신진 작가의 창작 활동 지원 및 한국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헌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창립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때 당시 삼성문화재단, 삼성공제회 등 공익재단을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한 바 있어 이번 이재용 회장의 이사장 선임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다.

현재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여전히 삼성그룹 지배의 핵심 고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두 공익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로 한 것은 단순히 사회공헌 및 문화사업을 총괄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다는 것.

   
 

경제분야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는 15일 논평을 통해 “삼성그룹 3세 경영권 승계과정에 있어 공익재단을 이용한 상속세 절세에 대한 우려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공익재단의 이사장직을 맡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공익재단을 절세 수단으로 악용하는 시도를 한다면 이는 뼈아픈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개연은 “삼성그룹이 과거와 같이 편법으로 절세를 노린다면 그 이익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삼성은 공익법인을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약속을 꼭 지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개연은 “시장에서는 이미 1년 전부터 이재용 부회장을 삼성그룹의 최고의사결정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경영 전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올라있지 않다”며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미등기 부회장으로 오랜 기간 재직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룹 내에서 어떠한 등기이사직도 맡고 있지 않는 이른바 ‘숨은 실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개연은 “이재용 부회장이 여전히 삼성그룹 상장회사의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은 상태에서 두 공익재단의 이사직을 맡게 된 것은 경영능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나 주주의 평가를 회피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라는 타이틀만을 물려받으려는 일종의 ‘꼼수’”라고 주장했다.

경개연은 “권한과 책임이 괴리되는 지배구조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공익법인의 이사직을 맡는 것이 아닌 권한에 상응해 책임을 지는 방법을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의 공익재단 이사장 신규 선임은 공론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폐쇄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며 “삼성그룹의 총수 승계는 결코 ‘집안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회의 승인과 주주의 승인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지분승계 과정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무노조 경영원칙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문제제기에 대해 최고경영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이해관계자와 사회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