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개인적으로 관계된 역사 강좌를 들었는데, 그 주제 중 하나가 단발령(斷髮令)이었다. 보통 이 얘기가 나오면 개화 의지나 ‘목은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는 식의 문화적 자존심 문제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 하는 게 보통이다. 근대사를 전공했던 이날 발표자인 선배 연구자의 강의 내용 역시 이런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는 ‘다시 보는 한국사’라는 개설서를 집필할 적에, 근대사에 대해 자문을 얻었던 동료에게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단발령의 이면에 있던 또 다른 교훈이었다. 행운이라면 행운일 기회를 통해 들었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단발령이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야 공인된 사실이다. 이렇게 일본이 상투 자를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유생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일어났고, 일부는 의병 항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면 일본은 조선의 풍조에서 이런 정도의 반발이 일어나리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밀어붙였을까.

이날 강의에서는 일본이 조선에 혼란을 일으켜 군사적으로 개입해 보려는 의도로 추측했다. 그렇지만 별로 설득력 있는 추측은 아닌 것 같다. 당시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의 견제를 받고 있던 일본이, 굳이 자기들만 지탄의 대상이 될 정책을 ‘강요’까지 해가며 부담을 지려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자문을 얻었던 전문가가 말해주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경제적 침략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상투 자르는 것과 경제가 무슨 상관있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조금만 설명을 듣고 나니 섬뜩할 만큼 큼직한 이권이 걸려 있는 문제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내막은 이랬다. 단발령이 단순히 상투만 잘라버리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양반들이 상투 잘라 산발을 하고 다니거나, 머리를 박박 밀어 승려처럼 하고 다니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런 취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화를 위한 조치라고 하면 이는 근대적 헤어스타일을 하라는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뭐가 필요했을까? 그게 바로 지금은 너무 흔해져 의식하지도 못하는 이발소다. 그런데 당시 상투 틀고 다니던 문화의 조선에 이발소가 있을 리 없다. 그런 나라에서 갑자기 상투를 자르라는 명이 내려지면 어찌될까? 당연히 이발소를 찾아야 하는데, 당시 조선에 있는 이발소라고는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 뿐이다. 실제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이발소에는 서 있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이 들끓었다는 신문기사를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즉 단발령은 조선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는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시장을 강제로 개방해서 안겨 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강제로 열어 일본인들에게 안겨 준 시장이 이발소뿐이었을까. 헤어스타일이 달라지면 그에 맞추어 복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양복부터 의복의 액세서리까지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들을 생산하거나 수입해서라도 공급할 능력이 있던 일본 상인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되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당시 일본 언론에서 상인들에게 조선으로 진출하라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전달한 기사도 소개되었다. 반면 상투를 틀고 다니는 시대의 상품을 생산하던 조선의 수공업자나 상인들은 급격하게 시장을 잃으면서 몰락해갔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 단발령이란, 어줍지 않은 개혁이 얼마나 국가경제를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래서 일본이 강요한다고 덜컥 단발령을 내려놓은 고종이 비판을 받는다. 이런 인물을 ‘전제개혁군주’라고 포장하는 것이 무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개혁 주체들은, 미국이 강요하건 말건 이런 일은 극력 피했다는 점이 개혁의 성패를 갈랐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차원에서 그 전문가는 단발령과 관련된 개혁에 대한 해답도 제시해 주었다. 제대로 개혁을 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상투를 자르라는 명을 내린 것부터가 문제였다. 나중에 반발이 생기자 슬쩍 물러설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알아서 하라’고 처리했어야 했다. 그리고 천천히 이발한 머리를 유행시키면서 시장을 만들어주고, 조선인 이발사와 그들이 경영하는 이발소가 생겨날 시간을 벌어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근대로의 전환기에 일어났던 하나의 해프닝에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진행시켜야 할 개혁에 주는 시사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준 전문가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개혁이라는 꽃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잡균과 벌레가 들끓는다”. 그만큼 개혁에는 엄청난 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성패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권을 조정하며 필요한 것을 갖추어갈 수 있느냐는 데에 걸려 있다고 한다.

그는 갑오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도 간단하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개혁을 한꺼번에 해치우려 했으니,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발령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개혁을 막는 세력도 문제지만, 부작용을 감안하지 않고 개혁을 서두르기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문제라고 했다. 이와 같은 내막을 알고 나면 앞으로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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