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격의 대학교> 저자 오찬호 사회학 박사

 ▲오찬호 박사 ⓒ투데이신문

취업만을 위해 한 방향으로 진격하는 대학교
먹고 사는 문제 앞세우다 공동체 파괴 우려

중앙대 학사구조 개편…현재 대학 모습 정확히 대변
사회에 쓴소리 할 사람 필요하지만…인문학 사라져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사색하는 법 배워야
본인과 생각이 다르다고 밀어내지 말아야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마치 취업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취업행 열차’를 탄다. 취업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마음껏 생각하고 꿈꿨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자신이 취업행 열차를 탄 것을 깨닫는다.

대한민국은 현재 취업 열풍이다. 취업률은 오르지 않는데 매년 취업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늘어나 ‘취업 9종 세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의 9종으로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을 일컫는다.

대학교 역시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최근에는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대학 학과가 취업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폐과되거나 전혀 상관없는 학과와 통합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중앙대는 지난 2월 학과제 폐지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인기 학과의 통폐합을 우려한 교수와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신입생 모집 단위만 크게 하는 것으로 추진 방향을 바꿨다. 중앙대는 두산그룹의 인수 후 학과 통폐합 등 대기업식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반발을 산 대학교는 중앙대뿐 만이 아니다. 안양대학교 작곡과, 서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청주대학교 사회학과 등에서도 해당학과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학과 통폐합을 해 논란이 일었으며 인천대학교 디자인학부는 갑작스레 도시과학대로 편제 개편됐다.

대학은 오랫동안 형성돼 형태를 갖춘 고등교육기관이다. 현재 대학이 취업만을 목적으로 진격하려고 할지라도 대학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취업만을 위해 한 방향으로 진격하는 대학의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있다. 바로 <진격의 대학교> 의 저자 오찬호 사회학 박사다.

오찬호 박사는 현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암울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으며 대학 및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앞서 2013년에 출간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는 20대가 무한경쟁 시대 희생양으로 괴물이 된 뼈아픈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구조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이어서 이번에는 <진격의 대학교>를 통해 기업이 원하는 대로 학생들을 따르게 하려는 현 대학을 비판한다.

<투데이신문>은 5월 12일 암울한 대학교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오찬호 박사를 여의도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 한국 대학이 처한 현실과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3년의 준비기간… 암울한 시대를 말하다

Q. <진격의 대학교>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요즘 20대들은 경쟁사회에 완전히 적응해 일상에서 굉장히 까칠하며 패자를 향한 관용이 없다. 사회가 변하더라도 대학까지 사회를 따라 변할 필요는 없는데 대학이 변하고 있다. 사회가 늘 옳게 변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대학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학자로서 시대를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다. 사회의 밝은 면만 보며 희망을 갖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다. 사회의 암울한 부분을 줄여 많은 사람들이 덜 힘들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중 <진격의 대학교>를 집필하게 됐다.

Q. 이번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 등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다

- 대학교가 취업을 위해 과연 진격하고 있는지 연구하고자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토론도 해보고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이용해 진실하게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 3주 정도 수업을 진행했다. 이후 학생들에게 대학의 기업화에 관한 과제를 냈는데, 과제물 중 일부는 정말 의미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겪는 사례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 개인적으로 수집한 자료와 학생들의 사례를 수집한 뒤 본격적으로 책을 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사례를 겪은 친구들을 만나서 좀 더 깊은 내용을 나눴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는 사람을 소개받기도 했다. 책을 집필한 기간은 1년 6개월, 그 전에 자료 수집을 하는 기간이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총 3년 정도 시간을 들여서 집필했다.

Q. 박사님은 프롤로그에서 2045년에 예상되는 일들을 담았다. 대학에서 사회학과는 완전 폐지되고, 청와대 회의실에서는 ‘자살’이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고 모두가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 청와대 회의실에서 ‘자살’을 안건으로 놓고 사회적 책임의 여부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가상으로 프롤로그에 제시했다. 결국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는데 회의 중 이견이 없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80%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학, 인문학 전공자의 조언을 얻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대학에서 사회학, 인문학은 취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기업에 해 끼치는 학문이라며 대학에서 사라지게 된 후다. 결국엔 자살이 급증한 한국은 개인의 의지부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집필 초에는 앞으로 벌어질 아이러니한 일을 예상해 가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책을 다 집필하고 보니 우려했던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 2015년 대학교, 기업이 원하는 인재 만들기가 목표

Q. 현재 대학생들은 대학이 취업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여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대학의 예전 모습은 어땠나

- 예전 대학이든 현재 대학이든 뚜렷하게 특징을 잡아서 얘기할 수는 없다. 예전에도 대학에는 기업적 인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가 존재했다. 그런데 현 대학은 취업을 위해 필요한 가치들이 과잉되고 있다. 지금은 대학의 전반적인 부분이 기업의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만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부분에서 과잉이 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대학 진학률이 낮은 만큼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은 스스로가 사회적 엘리트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으로 정치적 독재가 심했을 뿐 아니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이니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 취업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취업을 위해서 예전에도 여러 가지 준비를 했지만 지금은 일찍부터 취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잘 못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게 예전과 다른 점이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취업에 지금만큼 관심이 없고 일단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면 졸업 이후 취업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학과 공부와 동시에 다양한 스펙을 쌓지 않으면 취업이 안 될 것이라고 단정을 지어 스펙을 쌓는데 바쁘다. 문제는 과잉이다.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드는 것이 모든 대학의 목표가 되면 대학생들의 다양한 꿈은 사라지게 된다.

Q. 박사님의 대학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나는 97학번이다. 대학을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IMF가 터져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운동권에 있는 선배들도 있었다. 90년대 초반에는 문화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다가 IMF가 터지면서 문화에는 무관심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또한 그때는 스펙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다. 스펙이란 단어는 2004년 신조어인데 2006년에 보편화됐다. 당시에는 지금의 대학생들에 비해 취업 경쟁률이 적었고 그만큼 스스로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탐구할 기회가 많았던 때였다. 지금은 토익 공부,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나를 포함해서 지금보다 자유롭게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Q.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드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언급하셨는데, 대학은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하다 보니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 10년 전부터 취업난이 시작되면서 ‘취업 3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취업 9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 봉사활동, 성형수술)’를 이루었다. 대학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채워 놓으면 유리할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취업난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만약에 해결이 됐다면 ‘취업 3종 세트’가 ‘취업 9종 세트’로 변하면 안 되지 않는가. 오히려 기업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늘어나고 전반적인 노동 환경은 훨씬 더 나빠졌다. 마치 대학교에서는 취업을 위해 학교의 전반적인 부분을 바꿔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취업의 결과는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책에 경영학과의 눈물을 인용했는데 최근 경영학과조차 취업난에 시름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5,6년 전까지 경영학과의 취업률은 70% 내외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영학과 졸업자의 취업률이 60%가 되지 않는다. 경영학계열 전공자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기업이 바늘구멍을 넓혀주지는 않는다. 인문학, 사회학 등 비인기 학과를 없애면 이러한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도 사라지게 된다. 지금처럼 대학이 취업을 위해 전반적으로 기업에 맞게 제도를 변화시킨다면 기업은 파죽지세로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갈 것이며 취업난은 계속해서 해결될 수 없다.

Q. 대학의 기업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앙대 사태’가 아닐까 싶다. 중앙대는 학과제를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학사구조 개편안을 발표해 기업의 경영논리에 따라 대학을 재편해 학문의 균형발전을 저해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한 박사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 중앙대 이사장 사퇴 이후에 중앙대학 내부 구성원들의 절반은 오히려 ‘이사장님 돌아오세요’라고 응원했고 이사장님을 몰아낸 비례대표위원회 교수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학교 망신을 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의 흐름과 맞는 일이 벌어졌으니 있을 만한 일이 생겼다고 여겼다. 대학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대학교 입장에서 경제적인 효율성을 따졌을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씁쓸하다. 중앙대 사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일부의 실수라고 이해하는 풍토가 확인된 사례다. 중앙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절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며 현재 대학의 모습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Q.  결국엔 ‘5포 세대’의 탄생에 대학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데

- ‘취업 3종 세트’는 이제 ‘취업 9종 세트’가 됐다. 앞으로는 ‘취업 10종 세트’가 나올지도 모른다. 마지막 항목이 DNA가 될 수도 있다. 3포 세대부터 포기하는 것이 하나씩 더 늘어가고 있다는 건 대학의 변화로 인해 계속 증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에 원하는 바를 강력하게 요구하면 스스로가 포기하는 게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대학에서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풍토가 없어지면서 분명 사회에 문제가 있는 부분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사회를 통해 억울함이 개선되는 것은 낯간지러우며 불가능한 일이고, 억울하면 내가 이겨내든가 포기해야 하니 그 이후의 증거물이 ‘루저(loser), 잉여’라는 단어까지 탄생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 오찬호 박사 ⓒ투데이신문

◆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사회

Q. 대학이 어느 순간부터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것 같다

- 얼마 전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소개된 바 있는 포드 사의 자동차 ‘핀토’ 이야기를 두고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토론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가게 됐다. 포드 사의 자동차가 충돌하면 연료탱크의 결함으로 폭발할 수도 있음을 경영진은 알게 되지만 리콜 및 교체에 드는 비용이 사고 발생 후 드는 소송비용보다 더 많이 든다는 이유로 결함에 침묵을 택한 기업의 태도에 대해 대학생들은 토론했다. 토론은 경제를 옹호하며 효율성을 따지는 식으로 이어졌다. 경영학을 접한 학생들은 토론에서 스와트(SWOT) 분석을 즐겨 사용한다. 이것은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할 때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등으로 주변 환경을 분석하는 것이다. 강점이 약점보다 두드러질 때, 기회가 위협보다 클 때 당연히 이윤을 증가시킬 확률도 높아진다. 스와트 분석은 상대평가로 진행하는 토론수업에서 상대를 제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강사로서 정당한 논의는 경청을 해야 되고 오해를 하는 것이 있다면 설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회학과 교양 수업에서 사회학적 토론을 할 때 경영학과 학생들이 기업 경영 전략인 스와트 분석을 끌어와 사회학과 학생들의 주장에 반박을 하며 이해시킨다. 어떻게든 토론이 마무리는 되지만 원활한 토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정의라는 가치에 대해 논할 때에도 효율성이라는 잣대가 가장 중요하게 된 것이다.

Q. 사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가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효율성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인데

- ‘세월호’ 침몰 사건이 대학교 중간고사 전 주에 일어났다. 중간고사 기간 내내 시험이 끝나고 하루는 내가 이 사건에 대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야 하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어떤 성장을 추구 해왔고 IMF 등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 경제를 발전시키는 단계에서 얼마나 성장만을 추구해 왔는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배가 침몰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은 거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도무지 그 인과관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고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을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우리에게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누군가의 죽음 자체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있고 불과 몇 개월이 지나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려고 하니 지금이 경제를 살리는 골든타임인데 민생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경제 제일주의 패러다임으로 최악의 결과물에 대해서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의 발목 잡는 일은 하지 말자고 하니 놀랍다. 세상이 경제 제일주의 패러다임으로 움직이더라도 대학 강의실에서만큼은 객기를 부릴 수 있는데 학생들에게 ‘세월호’ 침몰 사건이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한 문제라는 사실이 낯설다는 게 속상하다.

Q. 인문학이 사라지고 있다.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가

-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나와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비록 나와 주장은 다르지만 나는 그 친구들이 쓴 책과 그들의 의견이 반영된 영화를 볼 수 있다. 결국 내 삶과 연결돼 있다고 봐야 된다.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자신과는 관련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사회에 대응할 쓴소리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소홀히 다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소수가 인문학을 하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는 게 문제다. 많지 않더라도 학교 내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 오찬호 박사 ⓒ투데이신문

◆ 한 방향으로 진격하는 대학, 완벽하게 ‘맥도날드화’

Q. 대학의 기업화가 어떤 문제까지 낳을까

-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독보적인 이유는 우리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왜 노인이 돼서 빈곤하고 외로워지겠는가. 사회적 원인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객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자살률이 10년 째 1등인 원인을 찾아 이를 줄이고자 하는 사회적 노력이 없다. 바로 현재 이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태초부터 자본주의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태초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들춰내는 역할이 학계에서는 인문학, 사회학, 다른 제도로는 언론이다. 그런데 그 기능이 점점 상실해 사라질 것 같으니 정말 심각한 문제다.

Q. 20년 후의 대학 모습은 과연 어떨까

- 생태계가 무너지면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20년 후에도 대학은 존재하겠지만 과연 지금 이런 식의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의 기능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대학이 기업에 맞게 취업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모두가 생각해 대학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95년도에 대학 진학률이 50%가 넘어갈 때 사회가 전전긍긍했어야 한다. 대학 진학률이 이렇게 높으면 지금과 같이 아주 끔찍한 미래가 야기될 것을 예상했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에서 더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오려고만 하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20년 후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Q. 책에서 대학은 전혀 ‘컬러풀’하지 않다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은 유형의 스펙을 쌓느라 바쁘다. 이를 볼 때 교수님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 대학은 완벽하게 ‘맥도날드화’ 돼버렸다. ‘맥도날드화’는 효율성이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설명하는 사회학자 조지 리처의 개념이며 ‘호모 맥도날드’란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는 기업형 인재’를 뜻한다. 오스카 와일드 말처럼 대학은 전혀 ‘컬러풀’하지 않다. 불필요다고 생각되는 학과는 사라지고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가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을 따른다. 패티 위에 치즈, 치즈 위에 피클을 올리듯이 1학년을 마치면 토익에 승부를 걸고 2학년을 마치면 어학연수를 다녀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맥도날드 대학의 가맹점들은 ‘호모 맥도날드’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대학이 한 가지 색만을 원한다는 나의 주장에 요즘 20대들이 상당히 개성이 있다고 반론을 한다. 옷 입는 것만 봐도 과거에 비해 버전이 다양해졌고 수위도 높아졌고 패셔너블해졌는데 어떻게 균질해졌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양해진 것 같지만 절대로 입어서는 안 되는 옷 수칙 같은 것은 덩달아 늘어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괜찮아야 개성을 인정하는 것인데 오히려 패션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졌다. 한국에는 오직 취업만을 목표로 하는 ‘맥도날드’ 대학만 존재할 것이다.

Q.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 대학을 통해 사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색은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점이다. 인간은 사색을 하게 되면 의심, 비판을 하게 되면서 이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을 이뤘으며 과거에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어린이, 여성들이 현재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교육적으로 대학이란 기간에 사색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 사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더 잘 먹고 더 잘 사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을 우선시 해 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내 자아를 괴롭히는 것이나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단계까지 기다리니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색과 돈을 연결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사색은 사색 그 자체로 즐겁고 의미가 있다. 사색을 하려면 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대학이 해야 한다.

Q. 앞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있나

-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와 관련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친구들의 상처만 들춰봐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암울한지 알 수 있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왜 공무원을 준비하는지 물어보면 왠지 모르게 공무원을 준비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대답한다. 취업 9종 세트도 안 되고 대기업이 원하는 활발한 성격도 아니라서 공무원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공무원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학생 한 명이 어느 날 찾아와서 나의 강의를 못 듣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좁은 시각으로 공부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내가 사회 곳곳을 다 보고 사색하라고 하니 내 수업을 못 듣겠다는 것이다. 사색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현장에 가면 분명 이는 결국 모두의 손해다.

Q.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본인과 생각이 같지 않다고 해서 사람을 은연중에 조롱하거나, 밀어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주변에 현실을 비판하며 사회에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이 하지 못하는 걸 한다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이로 인해 힘을 얻어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사람이 모여 여론이 형성되면 더 좋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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