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협객 예양(豫讓)이 주군의 복수를 다짐하며 했던 말이다. 예양은 각각 ‘범씨’, ‘지씨’, ‘중항씨’ 이렇게 세 명을 주군으로 섬겼다. 이들 셋은 모두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임을 당했다. 예양은 마지막으로 섬겼던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로 마음먹었다.

예양은 죄수로 위장하여 조양자의 궁궐에 잠입해서 변소에 흙을 바르는 일을 하면서 조양자의 목숨을 노렸지만, 사로잡혔다. 조양자는 예양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놓아주었다.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몸에 옻칠을 해서 문둥병 환자로 위장하고, 뜨거운 숯덩이를 삼켜 목소리까지 변조했다. 그러고는 칼을 품고, 조양자가 다니는 길목의 다리 밑에서 그를 기다렸다.

역시 복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양자가 타고 있던 말이 다리에 오자 무언가를 느꼈는지 놀라서 날뛰기 시작했다. 조양자는 장탄식을 했다.

“예양이로구나.”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예양은 조양자의 부하들한테 포위됐다. 조양자가 꾸짖었다.

“범씨, 중항씨, 지백은 모두 내 손에 죽었는데 당신은 왜 유독 지씨의 원수만 갚으려 하는가.”

“범씨와 중항씨는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우했고,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 나라에서 견줄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로 대접했기 때문이오.”

예양은 조양자한테 ‘당신이 입은 옷이라도 찌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양의 충성심에 감동한 조양자는 옷을 벗어서 주었고, 예양은 그 옷을 난도질한 뒤에 자살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사기열전」에 실려 있고, 이후 어린이용 학습서인 『소학(小學)』에 실렸다. 위정자들은 교육을 통해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려 애썼다. 예양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현재에도 이 일화는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을 준다.

다만, ‘국사의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지백을 위해 복수하려 했다’는 예양의 말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예양이 지백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것은 ‘무조건적인 충성심’의 발로가 아니었고, 그 충성은 ‘자신을 대접해 준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국민한테 ‘무조건 충성하라’고 말한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으면 국민은 국가를 위해 충성할 이유가 없다. 나라를 아끼는 마음, ‘애국심’은 더더욱 일으키기 어렵다. 황교안 총리후보자가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 애국심이 고취된다’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애국가 따위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 말 안에는 총리후보가 우선 지니고 있어야 할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황 후보자의 국민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옛날에 머물러 있으며, 수평 또는 아래의 위치에서 국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 보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한숨을 쉰 것이다.

한 나라의 총리가 되려면 ‘대접을 받는 사람’보다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한테 주목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애국’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과연 이 나라의 상황이 ‘애국을 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가’부터 살펴야한다. 과연 그러한가? 국민을 섬기는 자세는 민주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공직자의 품성인데 과연 황 후보자한테 이런 품성이 갖추어져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이 나라는 국민에게 애국을 할 만큼 대접해 주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하면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다. 비정규직 문제, 부의 세습, 교육 차별……일일이 거론하기도 지겨울 지경이다. 애국가 4절을 완창하자고 말하기 전에 이 두드러기부터 어떻게 해결해 줄 수는 없겠는가. 우리나라엔 애국을 할 조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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