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동월간지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 안건모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노동월간지 <작은책>, 1995년 5월 1일 발행… 올해 20주년 맞아
가장 보람있었던 적… “책 읽은 사람들의 인식 바뀔 때”
“비정규직 없고 상식 통하는 세상 됐으면”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바야흐로 20년 전, 이 한 문장이 노동자를 위한 책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보리출판사 윤구병 대표는 대우조선 노보 <새벽을 여는 함성>을 읽고 본격적으로 노동 잡지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작은책>은 1995년 5월 1일 노동절에 탄생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말, 윤 대표는 당시 버스 운전기사였던 안건모(57)대표에게 <작은책>을 맡겼다. <작은책>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안 대표의 노고가 컸다. 그 덕분에 이 책은 노동자를 감싸는 포근한 존재로 더욱 입지를 굳히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7월에는 <삐딱한 글쓰기>가 나왔고 올해에는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내 인생과 글쓰기>라는 책이 출간됐다.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와 시사 문제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책이다. 주부, 대학생, 장애인, 이주노동자, 해고노동자 등 많은 이들의 기고글을 모아 발행하고 있으며 구독자는 5천여 명이다. 

지난달 21일, 본지는 합정동 근처에 자리한 <작은책>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책이 내부를 가득 메웠다. 이날은 6월호가 나와 모두 책 발송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택배 포장에 여념이 없던 편집국 식구들이 두 기자를 반겨줬다. 찍찍 찢어지는 테이프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참 경쾌하게 들렸다.

유이분 편집장이 “죄송해요. 좀 시끄럽죠?”라며 미안해했다. 이내 잠시 후 안 대표가 자신의 몸보다 큰 스피커를 갖고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땀을 닦으며 물을 한잔 들이켠 후 기타를 꺼내 노래를 불렀다.

“난 글 잘 쓴다는 말보다 노래 잘 부른다는 말이 더 좋아~”

그가 아이처럼 신난 표정을 하고서는 기타 줄을 튕기며 이렇게 말했다. 택배 포장을 하던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안 대표를 바라봤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으나 듣기 좋은 노래임은 분명했다. 아울러 안 대표가 글만큼이나 노래 역시 잘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랫자락은 시원한 바람을 타고 귓가에 울려 퍼졌다.

“20년 버티고 살아남은 게 신기해”

3분여간의 노래가 끝나고 안 대표는 기자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의 방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풀고자 안 대표가 “이 매체는 기자를 인물 보고 뽑나 보죠?”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일동 박장대소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먼저 <작은책>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한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 안건모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안 대표는 “예전에 <작은책>이 창간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미쳤다’, ‘팔리겠냐’는 말이 오고 갔다더라고요. 15주년 기념 잔치를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죠(웃음). 이 잡지가 20년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합니다”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현실에 대한 씁쓸함도 내비쳤다.

“세상이 많이 바뀌지 않은 게 아쉽기도 해요.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글을 쓴 것인데 말이죠….”

허나 <작은책>이 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소외된 부분을 조명했다는 평가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1995년까지만 해도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작은책>은 이런 취지로 시작된 잡지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영향이 있겠지만 <작은책>이 일반인들의 글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네요. ‘아, 이런 글이 참 재미있네. 나도 글 써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 많아진 것 말이에요”

안 대표가 <작은책>에서 활동한 지도 어언 10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힘든 적이 없었냐고 묻자 안 대표가 머리를 긁적이며 “글쎄, 힘들었던 것은 그냥 잊어버린 것 같네요”라고 했다. 그의 표정에서 거짓이 아닌 진심이 느껴졌다. 긍정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답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운전기사가 되기 전까지 많은 노동을 하며 살았다. 신문배달을 비롯해 박스·자전거 공장, 노가다 등에서 일했다. 이 뿐만 아니라 버스 운전을 시작한 뒤에도 화장지 납품회사, 환경회사 소독차, 자가용 운전기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노동을 해본 게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를테면 집에 전기가 고장 났을 때 남들은 일꾼을 부르는데 스스로 일을 해결하는 것과 같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해요. 하수구도 뚫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것 등 자잘한 일은 나 스스로 다 해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것을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12살 때부터 노동을 했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혼자 다 합니다. 오늘도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분이 자신의 어려운 점을 막 이야기하더라고요. 다 알지만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죠. 직접 해봤기 때문에 그들의 노고를 다 알거든요”

배고파 본 자만이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던가. 치열한 노동현장에 있었던 그였기에 노동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노동현장에서의 경험은 <작은책> 발행에도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사실 안 대표는 버스 운전 일을 20년 동안 했다. 당시 월 250만원가량을 벌며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그동안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가 처음 들어왔을 때 <작은책> 정기구독자가 2천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재정 상태로 인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남의 글을 교정‧교열하거나 글을 청탁하고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펜을 잡는 손으로 바뀌었을 당시의 심정은 어땠을까. 옛날을 회상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 굉장히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정말 뭣도 모르고 엄청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우리 책으로 인식이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뿌듯했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 안건모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이어 기자가 ‘버스운전 일’에서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자 갑자기 그가 정색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 신분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여전히 노동자예요. ‘글 쓰는 노동자’. 노동자에 대한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버스 운전을 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글을 쓰고 취재를 하면서 시각이 넓어진 것이죠”

지난 1996년, 그는 <작은책>에 처음으로 시내버스 기사의 애환을 담은 글을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펜을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 대표의 말마따나 ‘무대뽀 정신’으로 한 길을 쭉 파고들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많이 사봤다.

안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히려 이 책을 만들면서 보람과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적은 이 책을 통해 ‘의식이 바뀌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독자 중에 학원 강사가 있는데 자신이 학원 원장이랑 자주 다투더래요. 원장이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할 때마다 항의했기 때문이죠. 어느 날, 자기가 왜 그런지 돌이켜보니 <작은책>을 정기구독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거예요. 참 신기하고 감사하지요”

“돈 없어 구독 끊겠다는 전화, 참 안타까워”

그는 이번 20주년 창간 기념호에 후원을 부탁하는 작은 쪽지를 하나 넣었다. 그랬더니 100명 정도가 일인당 ‘만원’(구독료 포함)씩 후원을 해주기로 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어 독자가 점차 늘어나 1만명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로 인해 정기구독 해지 전화를 받을 때 그의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구독자 수가 확 늘었던 적이 있어요. 세상을 좀 바꿔보자는 의미에서였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오고 난 뒤 독자들이 ‘에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해 힘이 빠져 책을 안 보신 것 같아요. 쌍용차 해고노동자도 재판에서 지는 등 현실이 변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죠. 무엇보다 요즘에는 해고되는 분들이 많아서 해고노동자들이 돈이 없어 책을 못 본다는 전화를 받을 때 참 안타깝죠”

<작은책> 20주년 특집호의 겉표지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아울러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관련된 기사를 크게 싣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참사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던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거의 학살 수준 아닌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홀로 살아와서 남의 아픔에 공감을 못 하거든요? 근데 세월호 참사만 떠올리면 눈물이 나네요. 너무 억울해서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의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을 겁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보세요. 강기훈 씨가 23년 만에 무죄로 밝혀졌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은 요직에 앉아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도 나중에 밝혀지면 안 돼요. 당장 밝혀져야 해요”

한참 말을 하던 안 대표가 ‘재미있는 질문 좀 해달라’며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해서, 글쓰기 모임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회비는 없고 저녁값으로 5천원만 내면 된다. 회비를 받지 않는 이유를 묻자 ‘글 쓰는데 돈 들어갈 일이 뭐가 있냐’고 반응했다. 결국, 열정과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저도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나오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1995년 말부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이 지금까지도 연결돼 있습니다. 15명 정도 모이는데 다들 재미있어하죠. 자기 남편 욕부터 시작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어해요”

특이한 점은 그에게 휴대전화와 신용카드가 없는 것이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두 가지나 없다니…. 이것 역시 <작은책> 영향을 받은 터였다.

“예전 기고글 중에서 ‘신용카드의 폐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어요. 그 글을 읽고 난 뒤 ‘내가 이 신용카드에 넘어가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해 카드를 잘라버렸죠.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좀 불편하죠(웃음). 아, 휴대전화가 없어서 불편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군요. 옛날에 고속도로에서 차 바퀴에 펑크가 난 적이 있었는데요. 요즘에 모르는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하면 누가 세워주나요. 한참 동안 손을 흔들다가 결국, 터진 바퀴를 굴리면서 가장 가까운 톨게이트로 걸어갔어요. 그때 외에는 별로 불편한 것을 느낀 적은 없네요”

“글 쓰기 공부, 모임이 최고”

이어서 기자가 안 대표만의 글 잘 쓰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조르니 ‘무슨 비법이 있겠냐’며 웃기만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바꿔 ‘글쓰기 모임에 처음 나오는 분들한테 어떤 말씀을 해주시냐’고 물으니 그가 입을 뗐다.

“일단 쓰라는 말을 많이 하죠. 남의 글을 아무리 읽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자기가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비판을 기분 나빠해선 안 돼요. 솔직히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게 부끄럽긴 하죠. 그래도 타인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기 보다는 자기 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점에서 글쓰기 공부는 모임이 최고인 것 같네요”

결국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했다. 글쓰기 관련된 책을 보면 ‘많이 써보라’는 말이 대부분이라고도 했다. 더불어 많이 읽기(다독), 많이 써보기(다작), 많이 생각하기(다상량)로 요약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글쓰기만큼 열정을 쏟는 것은 ‘학업’이다. 안 대표는 현재 방송통신대학 문화교양학과 1학년생이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했던 그는 지난해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여느 대학생처럼 곧 시험인데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큰일이라며 푸념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점이 대단해 보였다.

안 대표에게 모든 글이 소중하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글쎄…”하며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가슴 벅차거나 마음이 아팠던 글이 되게 많아요. 정말 많아서 생각이 안 나는데…. 아, 최근에 자신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 안에서 앉은 채로 돌아가셨다는 글을 봤어요. 참 슬프고 눈물이 났지요”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는 안 대표.

“제목이 ‘노브라교를 믿습니까’라는 여성주의자의 글이 생각나네요. 남동생이 누나한테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니 누나가 ‘그럼 너도 그 부위를 철사로 받쳐서 차고 다녀봐’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글을 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하며 “이렇게 재미있는 걸 물어봐야죠. 왜 자꾸 슬픈 것만 물어보시나”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현 정권의 노동정책과 우리나라의 노동실태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안 대표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특히 비정규직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제가 어릴 때는 비정규직이 없었어요. 예를 들면 한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을 하면 힘들어서 스스로 나왔죠. 그런데 지금은 공장에 가면 정규직이 없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죠. 2년 되면 자르고 하니까요. 예전보다 지금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더 심각해졌어요”

   
▲ 안건모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일한 만큼 대우받는 세상이 됐으면”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세상은 무엇일까.

“노동자는 세상을 움직여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강연에 가서 ‘너희는 커서 노동자가 될 거야’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화를 내더라고요. 그러면서 ‘난 교사가 될 건데요’라고 해요. 그럼 제가 다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교사도 노동자야’라고요. 안경, 신발, 옷…. 모두 노동자가 만들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지금은 상식이 안 통하잖아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임금을 받는 세상, 일한 만큼 대우받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끝으로 <작은책>의 목표와 계획을 물었다.

“좋은 세상이 되면 책의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정말 따뜻한 이야기만 나오지 않겠어요? 지금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혹자는 우리 책을 보면 우울하다고 하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니까 우울하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만 담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도 <작은책>에 따뜻한 이야기만 담기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담배를 문 안 대표가 ‘좋은 것’을 보여준다며 기자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사무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여니 탁 트인 옥상이 펼쳐졌다. 유 편집장과 안 대표. 그리고 기자 둘은 들어서자 맑은 공기를 힘껏 마셨다. 옥상 담이 높아 밖이 보이지 않자 안 대표가 평상에 오르며 “저는 항상 여기에 서서 밖을 보며 담배 피워요. 한번 올라와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그를 따라 평상에 오르니 평온한 서교동 일대가 눈앞에 쫙 펼쳐졌다.

문득 <작은책>이 옥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옥상에서 큰 동네를 한눈에 바라보듯, 이 책도 ‘노동’이라는 동네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넓디넓은 노동현장이 담긴 <작은책>은 결코 작지 않다. 

   
▲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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