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주총 결의 금지·자사주 관련 가처분 소송 제기
소액주주·네덜란드연기금 등 반대 목소리 높아
합병 목적, 승계 작업 본격화?
우호 지분 확충에 따라 결과 달라져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됐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예상치 못한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히며 난항을 겪고 있다.

외국계 펀드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하며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가운데 삼성물산 소액주주들도 합세해 카페를 개설하고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

이에 삼성물산은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상황 타파에 나섰으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목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번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차원의 연장선에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난처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오는 9월 완료하겠다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예상치 못한 합병 난항 ‘엘리엇’

12일 삼성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 5월 26일 이사회를 통해 합병을 결의했다. 양사는 오는 7월 17일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자로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반대파가 많아 합병이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 방법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합병 목적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다양한 사업영역 및 운영 노하우와 삼성물산이 보유한 건설부문의 차별화된 경쟁력 및 해외인프라를 결합함으로써 매출과 이익 증대 등 외형성장과 신규 유망사업 발굴을 통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합병 비율은 두 회사 모두 유가증권시장 주권상장법인으로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 제1호에 따라 합병가액을 산정한 후 이를 기초로 합병 비율인 1:0.35(제일모직:삼성물산)로 산출됐다.

그러나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지난 9일 삼성물산 주주총의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제동이 걸렸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이 날 보도자료를 통해 “엘리엇은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다”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엘리엇은 합병 안이 진행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4일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 기존 지분 4.95%에 지분 2.17%를 추가로 취득해 지분율이 7.12%로 확대됐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엘리엇이 다음 달 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7.12%인 상태다.

이처럼 의결권 7.12%를 가진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는 이유는 ‘합병 비율’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기준에 의해 산출됐다.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기준 시가는 합병 결의일(2015년 5월 26일) 전날을 기점으로 최근 1개월간의 거래량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의 거래량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 이 세 가지를 산술평균한 가액이다.

이 방식으로 산출된 기준 시가는 15만9294원, 삼성물산은 5만5767원으로 이에 따라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1:0.35로 정해졌다.

그러나 엘리엇은 이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비율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 다른 나라는 합병·피합병 법인이 자율적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엇은 두 회사 간의 합병비율이 1:0.35로 결정된 것에 대해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다며 합병에 반대하고 나선 것.

즉, 엘리엇은 삼성 측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발표한 당일인 5월 26일은 제일모직 주가는 극도로 과대평가 되고 삼성물산 주가는 과소평가된 시점으로 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 역시 주가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개연에 따르면 당시 제일모직의 PBR(주가순자산비율=시가총액/순자산)은 3.48로 삼성물산의 0.58보다 6배 높았다. 보통 PBR이 1이하인 것은 주가가 기업 재무구조상 부채를 갚고도 남는 순자산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해 결국 기업의 자산가치가 증시에서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이 일부러 삼성물산 주가가 낮은 시점을 택해 삼성물산 주가가 증시에서 저평가되도록 해 제일모직에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 비율을 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소액주주 등도 ‘엘리엇’에 가세

이 외에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불만을 표하는 세력이 많다.

2013년 2월에 개설된 네이버 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며 엘리엇 측에 가세했다.

11일 오전 9시 기준, 이 카페의 회원 수는 19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합병에 반대하기 위해 위임을 결의한 주식은 총 75만1730주로 이는 삼성물산 지분율 약 0.4%에 해당한다.

해당 카페 매니저는 5일 공지를 통해 “계란으로도 바위가 깨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합병에 대한 강한 반대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주주총회 안건 분석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에 반대 권고라는 입장을 내놓아 양사 합병에 반(反)하는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서스틴베스트는 9일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를 포함한 회원사 8곳에 합병반대 서한을 전송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서한을 통해 “제일모직 1, 삼성물산 0.35라는 합병 비율을 산정한 시점이 삼성물산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최저였을 때 이뤄져 일반 주주의 지분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는 제일모직 주주입장에선 최적의 상황이지만 삼성물산 주주입장에서 볼 땐 주주가치 훼손이 극대화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룹 차원의 지배력 확보라는 점을 감안해도 근시일 내로 합병해야 할 만한 시급한 경영환경 변화나 시너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 지분 0.35%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깃발을 들었다.

네덜란드연기금 측은 지금의 불공정한 합병비율이 조정되지 않는 이상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삼성 측에서는 합병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삼성의 묘수는? KCC에 지분매각

삼성물산이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선택한 묘수는 제일모직 지분 10.18%를 보유한 2대 주주인 KCC에게 자사주를 전량 매각하는 것이었다.

임시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명부는 11일 폐쇄됐다. 삼성물산은 그 보다 하루 전인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전량인 899만주(5.76%)를 장외거래 방식을 통해 KCC에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처분가액은 10일 종가 기준 6743억원이다.

그렇다면 삼성물산이 ‘자사주 매각’이라는 칼을 꺼내든 무엇일까. 원칙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이 그대로 자사주를 보유할 경우 다음 달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과 관련해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우호지분화하는 경우에는 의결권이 되살아나면서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은 KCC에 자사주를 매각함으로써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

KCC는 8일 장내에서 매수한 삼성물산 지분 0.23%와 자사주 매각을 통해 얻은 지분 5.76%를 합치면 삼성물산 지분율이 총 5.99%가 된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 의결권에 대한 삼성 측 지분은 삼성SDI 7.39%, 삼성화재 4.79%,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41%, 기타 0.4%를 합한 13.99%에 KCC 지분율 5.99%를 합해 19.98%로 20%에 육박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삼성물산 합병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달 열리는 주총에서 출석 주주 3분의 2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 그렇기에 삼성 측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무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 지분인 33.4%(발행 주식 3분의 1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에 대해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다시 한 번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가 합병이 수세에 몰리자 의결권을 늘리기 위해 자사주를 처분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엘리엇은 “두 회사 이사회가 강압적으로 약 7조8500억원에 이르는 삼성물산 순자산을 제일모직 주주에게 우회 이전하기 위해 불법적인 합병을 추진한다”며 “삼성물산 자사주가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긴급히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합병 추진 목적, 3세 승계 작업?

삼성은 이번 합병 목적을 양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의 주장과 달리 이번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추진됐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경개연은 5월 26일 논평을 통해 “사실상 지주회사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것은 삼성 3세 승계 작업의 본격화”라고 비판했다.

이어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결여돼 있다”며 “합병이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삼성물산의 기존 주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명확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개연은 11일 또 다른 논평을 통해 “삼성의 목표는 이재용 부회장 승계”라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승계를 마무리 짓는 최종작업이 아니라 사실상 그 시작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삼성의 ‘자사주 매각을 통한 의결권 부활’ 카드는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총수일가의 지배권 유지와 승계만을 우선시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스스로 폭로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서울 양천갑 위원장)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11일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합병 상대방인 제일모직 2대주주에게 자사주를 매각하는 행위는 문제가 많다”며 “2세가 순환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했다면 3세는 자사주를 통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삼성 계열사 합병은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가 목적”이라며 “합병 시점과 비율 관련해 삼성물산 이사진에 배임 의혹이 없는지, 합병비율 문제로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는 않았는지 면밀히 따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호 지분 확충 총력 다해야 勝

갈수록 합병을 이루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간의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호 지분을 확충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삼성은 엘리엇과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외국인 주주들의 표를 잡기 위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접촉할 계획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인 ISS는 세계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전 세계 1700여개 대형 기관투자가에게 찬·반 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해준다. 이 때문에 관련업계에서는 ISS의 의견이 외국인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삼성은 합병에 반대하는 세력과의 총력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외국인 주주들의 표심을 잡으려 직접 나선 것.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은 33.97%에 달한다. 이 중 합병에 반대하고 있는 엘리엇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7.12%, 네덜란드연기금의 지분은 0.35%다.

따라서 이 외 아직 입장을 알 수 없는 26.5%의 외국인 주주들을 누가 먼저 자신의 편으로 설득하느냐에 따라 주총의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의 선택 또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운용사들 중 유일하게 10%를 넘는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과 관련해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주총의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

국민연금은 크게 기업의 절차성 적법성과 연금 수익률 이 두 가지를 검토한 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합병과 관련한 주총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게 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과연 삼성이 곱지 않은 시선을 물리치고 원래의 계획대로 합병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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